[Review] 성찰로써 성장하는 여성 화자의 힘, 4분 12초 [연극]

글 입력 2021.12.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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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12초 최종 포스터.jpg

 

 

디지털 성범죄라는 단어 하나는 수많은 사건을 연상시킨다. 영상 혹은 이미지 속에서 주로 여성은 인간성을 잃은 피사체로 존재하며 신체가 보여지는 쪽이고, 그를 제안하거나 혹은 동의 없이 촬영하는 쪽은 거의 남성인 경우가 많다.

 

제안하여 상대가 동의를 했더라도 결과물을 인터넷상에 무작위로 배포하는 것은 범죄이며,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당연히 그러하며 링크를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거나 돌려보는 것 또한 당연히 범법행위이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신체를 불법 촬영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상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는 경우는 허다하다.


불법 촬영이라는 단어는 고쳐 부른지도 채 몇년이 되지 않았다. 무엇이 왜 죄가 되고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해치고 깨뜨려 본질을 파악하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아는 것은 많아질수록 괴로워지지만, 결국 그 혼돈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


스마트폰이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21세기,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가?!


[4분 12초]는 십대 아들을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 질문의 시급함과 무게를 놓치지 않고 무대에 풀어놓는다. 또한 단순히 디지털 성범죄의 단죄만이 아니라 사회계급과 그 계급이 교육에 대해 가지는 환상과 기대, 그리고 청소년들이 받는 억압까지 함께 보여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추구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연관된 여성의 자각을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되는 성찰의 과정으로 그려낸 작품. 오이디푸스의 진실을 향한 추구가 '파멸'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수작.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무고함을 밝히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엄마, 다이.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아들 잭. 다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잭은 순수한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

 

누구나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디지털 시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섬뜩한 진리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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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깨진 어머니



다이는 아들 잭을 둔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무척 강하다. 자신의 아들은 부족함없이 자랐고 본인이 그렇게 되도록 성심껏 서포트 해왔기에 당연히 큰 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아들의 성공을 바라볼 차례가 곧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잭의 피묻은 옷이 불러온 파장은 매우 컸다.

 

처음에 다이는 남편 데이빗의 말대로 동네 별볼일 없는 아이들에게 잭이 맞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캐물을 수록 시원찮은 남편의 답은 다이를 불안하게 했고 결국 잭이 카라와의 성관계 영상을 찍어 퍼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다이에게 들었던 생각은 오직 잭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럴리 없는 내 아들이 어이없는 의심을 받고 있어, 범죄자 취급에서 벗어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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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안에 떨다 찾아간 잭의 친구 닉과 여자친구였던 카라는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닉은 자신이 절대 영상을 올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카라를 좋아했고 카라의 사진을 잭이 찍어서 공유하기까지 했다는 것, 영상 속의 자신이 어떤지 아느냐 묻는 카라를 만나고 나자 잭이 영상을 퍼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 영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이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한 잭은 언제까지나 순수한 아홉 살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여전히 거짓을 말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균열과 혼란으로 성장하는 다이



알을 깨고 나와 다른 세상을 맞이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 다이는 극중에서 알을 깨려는 시도를 대화와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잭을 어디까지 알고 몰랐던 것인지,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진실인지 되짚어 보며 다이는 잭을 보호하려던 어머니에서 카라의 상처에 공감하는 한 여성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성찰을 통해 진실을 바라보고 내가 알단 사람과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천천히 깨닫는다.


소중하고 올바르게 키워낸 줄 알았던 아들에 대한 실망감과, 천성이 착하고 여려 자신을 잘 이해해준다 생각했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은 다이에게로 쏟아진다. 하지만 다이는 감정에 그저 휩쓸리지는 않고 오히려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 일은 일어났고,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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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말하려는 것은 진실을 바라보고 옳고 그름을 구분짓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몰랐거나 방치되었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한 여성의 성찰의 과정과 힘이었다.

 

그 심리적 갈등의 계기가 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저변에는 성별 고정관념과 계급 의식도 일부 녹아있음을 예리하게 잡아내었다.

 

주요 화자를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설정하여 심리적 역할 변화와 함께 혼돈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극의 입체성을 높여주었다.

 

어떻게 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극복하느냐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이와 같이 대담함과 상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결국 문제를 분명히 하고 해결해줄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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