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하는 법, 기록의 아이디어, 기록의 유용함, 기록의 모든 감성: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도서]

글 입력 2021.11.2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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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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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정말 얼마 없는 페스티벌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남는 게 사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저는 아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 카메라로 눈 앞을 가리고, 지금의 풍경을 온전히 담기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노력을 저는 우습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에 집중하려면 기록에 쓰이는 감각은 사치이죠!

 

제가 저의 생각을 후회하기 시작한 건 유럽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였어요. 교환학생 중에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요. 가보고 싶었던 나라도 가보고, 미술관도 많이 다녔고요. 먹어보고 싶었던 것들, 보고 싶었던 것들을 잔뜩 보았습니다. 그때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을 정도로 그리운 기억이에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자 노력했던 저의 노력 덕분에 저는 여행의 굵직한 순간들은 기억을 잘합니다. 영국에서 본 뮤지컬이 얼마나 재밌었고, 베를린의 어떤 뮤지엄이 제일 인상 깊었는지 같은 것 말이죠.

 

그런데 애석하게도 저에게는 여행의 디테일에 대한 기억이 부족합니다. 그걸 알아챘던 게 친구에게 여행 갔던 곳을 설명할 때였어요. 이탈리아에서 정말 맛있는 젤라또를 먹었거든요. 마음에 드는 곳이라 간판도 사진을 찍어놨죠. (이것까지만 해도 운이 좋았어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맛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뭐였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죠. 복숭아였나? 꿀이었나?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젤라또가 한두 개는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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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젤라또 가게 사진. 약간 흔들렸습니다.

 

 

여행도 그런데 하물며 학교에 다니던 일상은 말할 것도 없죠. 교환학생이 끝나고 나니까 지겹도록 보았던 등하굣길의 모습, 귀여운 노란색 버스와 트램, 시내 나가는 길의 길거리 같은 게 무척 그립더라고요. 근데 그런 모습을 기록해둔 사진은 별로 없어요. 그때야 카메라를 꺼내는 데 인색해져서는 안 되겠다, 일상을 디테일하게 기록하는 걸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 책은 거창한 기록이 아닌 이런 일상적인 것에 대한 기록을 말하는 책이에요. 소중한 것들, 그러나 너무 일상적이어서 잊어버리고 마는 것들을 왜 기록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어요.

 

 

 

별거 아닌 게 아닌 것들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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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심지어 아직 끝나지도 않은 하루를 두고, 오늘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하루였다, 아무 날도 아니었다,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럼 오늘 내가 걸은 걸음과 내가 한 말들과 내가 본 풍경은 뭐가 되는 걸까요. 시간을 어째서 그리도 쉽게 지워버리고 마는 걸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었습니다. 저는 일기 쓰기를 그렇게 어려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매일 매일에 서로 다른 소재들이 있었어요. 그걸 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어려운 것 없었죠.

 

아주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일기장에 쓰이는 것이 일기가 아닌 게 되더라고요. 이건 사실 최근까지의 일기에도 적용되는 말인데, 저의 일기장은 격렬한 감정들을 버리는 쓰레기통 같은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일기장을 찾게 됩니다. 일기장 속에는 매번 화를 내는, 감격하는, 우울한, 지나치게 즐거운 제가 있습니다. 감정을 글로 해소하는 것은 아주 건전한 일이잖아요. 대신에 그걸 보고 있으면, 평상시의 제가 어떤 사람인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또 무엇보다도 나중에 읽기 위해서 남기는 기록은 아닌 거죠.

 

그러니까 기록을 남기는 일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오늘 하루에는 소재가 없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를 휘어잡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아니고서야 무언가를 써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거든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앞에서 말했듯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입니다. 격렬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의 저에 관한 이야기는, 저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좀 부담스럽지 않으신가요?

 

이걸 타파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저는 이 책에서 두 가지를 찾았습니다. 첫 번째는 말이죠, 의식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특별한 하루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기록을 하려다 보니 특별한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앞서 남긴 사진 속 글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에게 가장 와 닿았던 문장 중 하나입니다. 오늘이 아무리 평범한 날이어도 그 속에 빛나는 순간이 한두 순간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잠시 뒤에 잊어버리고 말아서 문제죠. 오늘이 아무리 평범한 날이어도, 미래의 나에게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말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져요. 대신에 하고픈 말을 한두 개쯤 챙겨왔을 때는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마주할 수 있겠죠.

 

쓰기 위한 하루를 보내는 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에 남는 순간을 자꾸자꾸 찾게 될 테니까요.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마음을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주머니를 지닌 채 집을 나서는 셈’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듣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감정인 것 같아요.

 

 

 

쓰기 위한 아이디어들을 모으고 공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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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에서 찾은 또 다른 기록의 길은요, 여러 가지 소재에 있었어요. 저는 최근에 제가 ‘일상적인’이라는 말을 아주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요. 그런데 그게 저의 부족함을 좀 드러내는 것 같아요. ‘일상적’이라는 말은 너무 모호하잖아요. 저에게 비슷한 감정을 주는 것들을 ‘일상적이다’라는 말로 묶어버린 거더라고요.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은 너무 무책임합니다. 무얼 기록하라는 건지 지시가 명확하지 않은 주장이니까요. 대신에 일상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범주화하면, 기록을 위해 필요한 행동들이 명확해집니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계절’을 기록해보자. ‘내게 닿은 좋은 말들’을 기록해보자. ‘소중한 사람의 손글씨’를 기록해보자. 이런 말들처럼 말이죠. (모두 이 책의 목차에서 따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사람들 앞에서 고장 난 형광등처럼 떨어대고, 나 자신을 어떤 식으로 아껴야 할지 몰라 남의 눈치부터 보던 지난날의 나를 키운 건 좋은 말들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말을 믿고 싶어지던 순간이 나를 키웠다고 해야겠죠.

 

 

이 구절은 ‘내게 닿은 좋은 말들을 기록’하는 것에 대해 작가가 설명하면서 남긴 문장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너무나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나의 마음을 깨워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요. 그 사람은 때로 깊은 생각 없이 던진 말인데, 나에게는 겨우 나는 눈물을 삼키게 할 정도로 감동적인 말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고 나면 나를 감동하게 한 그 ‘좋은 사람’의 이름 석 자는 마음속 에 기록되죠. 그때의 감동도 마찬가지고요. (운이 나쁘면 그조차도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 사람의 입을 떠난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도 자꾸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경험이 여러 번 있어요. 누군가의 말로 깊은 위로를 받고, 나중에 다른 순간에 필요해 그 말을 떠올려보려고 할 때 생각이 가물가물해지던 순간이요. 언뜻 비슷한 말들이 입안에 맴돌긴 하는데, 왜 그때와 같은 울림이 없는 표현으로 느껴지는지. 그 말들이 어딘가에 기록으로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나도 선물을 줄 수도 있고, 무언가에 마음이 실망하려고 할 때 다시 저를 다잡아줄 수 있는 기록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지나가 버린 가치 있는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던 기록 거리에 대해 많은 후회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어요. 후회가 꼭 나쁜 건 아닌 게, 제 마음을 열심히 보채서 당장 저도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삶을 온통 기록해도 좋은 알찬 것들로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둥글둥글한 태도가 기분 좋게 해주었어요. 우리에게 새로운 기록을 영업하는, 혹은 기록의 실수담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따뜻한 수다 시간 같은 책이었습니다. 똑같은 매일 매일에 따뜻함이 조금 더 필요하신 분들, 저처럼 요즘 유난히 공허함을 느끼셨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날씨가 자꾸자꾸 추워지잖아요. 마음에도 따뜻한 코트 단추를 채워줄 책이 필요한 계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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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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