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아니스트 이나우의 NOW [음악]

그리고 다시 만개할, NAU
글 입력 2021.11.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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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_이나우 공식 트위터

 

 

피아니스트 이나우의 어린 시절은 독일에서 시작된다. 유년기, 독일의 유수한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고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독일뮌스터국립음악대학을 거친 그가 더 많은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은 2019년 JTBC 프로그램 '슈퍼밴드'였다.

 

지금은 초대 우승팀 호피폴라의 첼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홍진호, 준우승팀 루시의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과 더불어 클래식 피아니스트 이나우는 많지 않은 클래식 전공 출연자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그는 예선 대기실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더니, 예선 장소에 들어선 뒤에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OST 'First Step'을 선보여 유려한 연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밴드 멤버로서의 새로운 변화를 꾀해 관심을 끌었지만, 변신의 귀재 이나우의 진면모가 드러난 곳은 바로 'Stop Crying Your Heart Out' 무대였다. 당시 밴드 용어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이나우였지만 록 보컬 채보훈에 의해 팀에 영입되었고, 그랜드피아노 위에 신시사이저를 놓아 둘 모두를 연주하는 놀라운 모습을 통해 흔들림 없는 실력을 재증명했다. 결국 그는 해당 팀이었던 채보훈, 정광현이 포함된 팀 '퍼플레인'으로서 슈퍼밴드 시즌1 TOP3를 기록한다.

 

내가 피아니스트 이나우의 연주를 직접 듣게 된 것은 지난 4일, '2021 SOMEDAY THEATRE LAST CANTABILE 5악장'에서였다. 당일 함께 출연한 첼리스트 홍진호, 바이올리니스트 신예찬의 연주는 이전에 호피폴라와 루시 콘서트에서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피아니스트 이나우의 연주는 내게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비교적 기대가 되지 않는 무대였다.

 

그러나 첫 무대로 그가 등장해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자, 그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른 곳에서 들었다면 분명히 CF의 한 장면만이 생각났을 곡인데, 나는 금방 그가 연주하는 건반 하나하나에 빠져들었고 대극장을 가득 채운 울림에 가뿐히 몸을 맡기게 되었다. 그날 그는 'Lake Louise', '쇼팽 발라드 1번 G minor OP. 23' 등의 곡으로 날 울렸지만, 오늘 나는 그가 작곡한 'Bloom Again'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Bloom Again'은 이나우가 2021년 2월 발표한 첫 번째 디지털 싱글이다. 얼었던 것들이 녹기 시작하고, 다시 만개하는 세상을 그린 이 곡은 이나우의 섬세한 감성과 부드러운 터치가 돋보인다. 음원과 달리 공연에서는 스트링 앙상블과 함께해 곡의 강약이 더욱 풍부해졌다.

 

조심스럽게 건반을 누르면서 곡이 시작되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게 된다. 그리고 얼어버린 것들과 새로 피어날 것들을 생각한다. 연주가 속도를 더하면 그것들은 하나둘씩 눈을 뜬다. 점점 강해지는 음은 각각 따로 피어난 것들이 서로 만나 함께 만개한 정원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곡은 절정으로 치닫고, 피어난 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여유를 즐긴다. 조용히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그 움직임은 춤과 같고, 이는 겨울에서 봄이 되어 피어나는 새싹의 기대를 담은 춤뿐만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여름의 빛을 잃은 가을의 차분하고 다정한 빛깔의 휴식 같기도 하다.

 

그날 공연, 이나우가 꾸민 40여 분간의 오프닝 공연은 온갖 일상의 소음으로 지쳐 꽉 막혀 있던 내 몸에 내린 한 방울의 이슬이었고, 그 시간은 축복이었다. 마지막 곡으로 긴 호흡의 쇼팽 발라드를 연주하기까지 멈추지 않는 감동, 전율 그리고 눈물에 놀란 나는 무대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끊임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쉽게도 그의 입대로 인해 우리는 당분간 이나우의 새로운 선율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감정의 기록은 여전히 청중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가 국방의 의무를 모두 마치고 돌아왔을 때, 지금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실은 시간 너머로 져 있기를. 피아니스트 이나우와 그의 청중들이 함께 호흡하고, 어떤 가림막도 없이 다시 만개한 세상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이 꼭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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