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놈의 MBTI [사람]

MBTI는 과학이 아니래요.
글 입력 2021.11.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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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는 MBTI별 옷차림 이미지

 

 

 

MBTI 과몰입 그 시작


 

MBTI 유형은 필자의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 시작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특강으로 MBTI 성격 유형 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MBTI를 만났다. 그 강의 중에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은 딱 한 장면이다. 강사분이 ‘사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를 포스트잇에 적어 칠판에 붙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포스트잇들을 마법처럼 유형별로 분류하셨다.


'백설 공주'라고 적어 낸 내 포스트잇을 나만 알고 있는 나의 검사 결과와 딱 맞게 분류하셨다. 난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상대가 들고 있는 카드를 눈을 감은 채로 정확하게 맞추는 마술사 같았다.

 

강의의 후반부에는 유형에 따라 성격에 맞는 삶의 방식이나 직업들을 이야기해주셨다. 내 유형은 한국에서 가장 적은 유형이라 외국에서 사는 게 더 잘 맞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죽을 때까지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니며 살 것이라고 모험을 향한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던 나에게 '역시나!' 하고 확신을 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MBTI 검사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을 때였다. 정보를 찾아서 구글링하고 블로그에서 많지 않은 정보들을 꼼꼼히 찾아보며 공감했다. 그러다가 슬금슬금 MBTI가 이슈가 되었을 때, 성격 유형이 무조건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다시 검사했는데, 고등학생 때와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MBTI 과몰입러가 된 것이.

 

 

  

MBTI는 정말 믿으면 안되는 거야?


 

MBTI유형을 섬세하게 나눠서 표현한 만화.

그 중 가장 재미있게 봤던 에피소드.

 

 

운명을 굳게 믿는 필자는 어디에나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MBTI는 늘 좋아해 온 심리테스트의 연장선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별자리나 이름 궁합, 혈액형에 과몰입했고, 부모님 몰래 컴퓨터를 할 때는 게임으로 나온 심리테스트를 하며 즐거워했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반적인 문구들로 쓰인 결과지일지라도 이를 읽는 게 재미있는 데다가 신비롭게 와닿았다.

 

한정된 경험만을 가지고 나를 파악해야 하는 때에 내가 이런 유형과 성격이기에 이런 점은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나도 모르는 나를 그 결과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 속이 편해지기도 했다.


하루는 부모님이 당신도 그 유명한 MBTI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날 가족들의 검사 결과를 가지고 2시간 동안 떠들었다. 처음엔 흥미진진하게 들으시던 부모님이 점점 흥미를 잃고 다른 일을 하시는 바람에 그만 해야 했지만, 밤새고도 떠들 수 있을 정도로 결과가 흥미로웠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결과지였다. 처음 본 사람의 MBTI 유형을 짧은 대화만으로 맞추거나, 유난히 잘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과 유형이 같았던 적도 더러 있다.

 

심리학 수업에서 배웠던 단어 중에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단어가 있다. 인지적 구두쇠는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해서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것을 일컫는다. 사람은 누구나 인지적 구두쇠라고 했다. 어떤 판단을 할 때,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MBTI는 인지적 구두쇠인 우리에게 너무도 잘 맞는 분류표이지 않은가? '너 MBTI가 뭐였지?' 묻는 한 마디와 돌아오는 대답 한마디면, 굳이 깊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도 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능하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MBTI 결과면 굳이 내가 나에 대해 많은 정보를 늘어뜨리지 않아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깊게 설명이 가능하다. '내 엠비티아이 유형은 이거야.' 라고 말하는 속내에는 '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말에 상처받고, 이런 사람이랑 잘 맞고 저런 상황을 즐겨.'라는 어마어마한 정보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같은 MBTI 유형끼리 다양한 플랫폼에서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는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에서 소속감을 얻는다. 누군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줬으면,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Don't stop 과몰입


 

MBTI만을 맹신하여서 인간관계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같은 유형임에도 성격이 꽤 다른 이들이 주변에 많이 있고, 상극 유형이라 파국 관계라는 성격 유형의 친구와는 오히려 아주 잘 맞는 경우도 있다.

 

MBTI가 고작 16가지로 인간을 나누기 때문에 지구인 80억여명을 모두 그 기준에 넣을 수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성격 유형 검사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당연한 개념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하고 다름을 쿨하게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는 데에 분명 큰 역할을 했다.

 

네이버 지식인에 특정 MBTI 유형과 친해지는 법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 답변이 너무나 명쾌해서 과몰입러인 필자도 속이 뻥 뚫렸다. '인간관계에 그 놈의 MBTI 좀 대입하지 마세요. 같이 지내다 보면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되겠죠.'

 

사람은 가장 어렵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 것 같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든 최대한 표현을 하고 싶을 때, 그래도 MBTI만한 대답이 아직 없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람을 나름대로 잘 분류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다.

 

MBTI에 그만 과몰입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도 너무 재밌다. 아마 새로운 성격유형 분류가 나오기 전까지, 혹은 심리테스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대화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은 같이 지내봐야 알 수 있다는 저 명쾌한 답변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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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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