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 - 연극 슈미

욕망, 자유, 그리고 아름다움
글 입력 2021.11.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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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건조함이 서린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었다.

 

연극을 보러 가는 길, 익숙하게 혜화로 향할 뻔했지만 정신을 다잡고 목적지를 국립극장으로 수정했다. 국립극장은 처음이었는데 그 규모감에 기분 좋게 압도됐다.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등 극장 건물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고 건물 사이로는 차들이 지나다녔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이 보였다. 역시, 대학로와는 달랐다.

 

 

국립극장.jpg

 

 

관람할 연극은 <슈미>. 원작 <헤다 가블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소개된 줄거리를 보고도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에 더 궁금했다.

 

 

“다섯 인물의 다섯 욕망”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민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감상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고대의 주술의식을 엿본 듯 기이했다. 공간과 소품이 풍기는 분위기, 배우들의 눈빛에 서린 감정에 홀려버린 2시간이었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보고 들은 각종 이야기를 저장해 놓은 내 경험 서랍에도 없는 이야기였다.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한참을 망설였다.

 

한눈에 보기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신혼부부 슈미와 경만.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면 이상함과 불편함이 감지된다. 슈미가 감정 없는 로봇처럼 지시하면 경만은 애교를 부리며 따른다. 일어나자마자 물을 대령하고, 슈미가 눈에 거슬려하는 자신의 책들을 치운다.

 

경만의 세계는 슈미에 의해 돌아간다. 슈미가 호화로운 집을 원하자 그 집에 살게 해주기 위해 빚을 지기까지 했다.

 

 

 

아름다움



슈미는 감정이 메마르고 권태로워 보인다. 경만을 사랑하긴 하나 싶을 정도로 삶에 목적성이 없어 보인다. 드물게 광기 서린 집착을 드러내는데, 그 광기와 집착은 타인에 의해, 다른 네 친구에 의해 발굴된다. 위의 줄거리에 애경은 신혼부부를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한국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따뜻한 친구처럼 소개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애경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다. 한국으로 떠난 유완을 찾는 것.

 

관계는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경만은 슈미를 사랑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려 한다. 경만의 친구이자 검사인 도규는 슈미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이다. 거리낌 없이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만, 칼같이 확실한 부분도 있다. 애경은 유완을 사랑해서 그의 책 집필까지 손수 도왔지만, 유완은 슈미를 사랑한다. 슈미는 한 때 유완과 사랑 없는 관계를 유지했을 뿐,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일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능력을 지닌 슈미. 통제에 능하지만, 오히려 통제에 약하기도 하다. 자신이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 축적되면, 자기파멸이 행해질 테니까. 슈미는 추악한 말을 달콤함으로 포장해 속삭이는 악마와도 비슷해 보인다. 슈미는 다른 인물들을 통제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도 표현한다. “난 스스로 빛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느껴”

 

 

 

주체성


 

유완은 포도잎사귀로 두른 관, 와인 등으로 디오니소스에 대입되는 인물이다. 디오니소스는 술과 축제, 황홀경의 신이며, ‘경계’를 넘나드는 신이기도 하다.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 경험이 있어 슈미의 집에서도 술을 거부했지만, 슈미는 그에게 반복해서 술을 권한다.

 

유완은 이성과 광기, 삶과 죽음을 넘나든다. 그 경계선에 서서 그를 한 방향(광기, 죽음)으로 떠미는 인물은 슈미다. 유완과 슈미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유완은 슈미에게 사랑을 구하고, 슈미는 유완에게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자살할) 용기를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요청은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완은 슈미의 바람대로 죽었다. 하지만 과정을 뜯어보자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슈미가 쥐여 준 총으로 그가 죽긴 했으나, 우발적인 사고였을 뿐이다. 슈미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행위’하지 못한 죽음은 실패다. 그렇다면 유완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자살함으로써 슈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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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다섯 인물은 각기 다른 욕망을 지니고 있다. 슈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고, 다른 친구들도 그러하길 바랐다. 순수하게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들이 욕망을 충족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슈미의 욕망이었으니까.

 

자신의 존재 의식과 존재 목적이 내면이 아니라, 바깥을 향해 있는 사람, 슈미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들을 손안에 쥐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자신을 향해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연극이 끝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부호를 지우기 위해 산책로를 걸었다. 지도를 제대로 보지 않고 무작정 걷다 보니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돌고 돌아서야 원래 목적지에 다다랐다. 시간을 낭비해 후회했냐고? 전혀 아니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들이 좋았고, 마음껏 활개 친 내 발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모든 해석이 정답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연극 <슈미>에서 강조한 것은 주체성이 아닐까 싶다. 방향키를 움켜잡고 책임도 온전히 자신이 질 수 있는 것.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에서 풍파를 맞닥뜨리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하더라도 감내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과정이 아닐까.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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