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이 지구 행성은 절망뿐이다 [도서/문학]

<천 개의 파랑>이 주목하는 세계의 모습
글 입력 2021.11.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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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은 현실을 고발한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 박사가 우주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순간처럼, 나도 소설을 읽는 도중 미지의 시공간에 갇힐 때가 있다. 바늘로 콕 찌르면 터져 버릴 듯 일시적이지만 그 안에 갇혀 있는 동안만은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온몸에 힘을 뺀다.

 

천선란 작가의 두 번째 SF 장편 소설 <천 개의 파랑> 또한 처음에는 그런 소설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그려내는 미지의 시공간에서 막막한 현실을 읽어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바늘을 양손에 쥔 채 내 뒤에 밭게 붙어 지금, 여기를 잊지 말라고 외쳤다. 나는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됐고, 종내에는 갇힌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어졌다. 나에게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쾌감을 선사했다.

 

SF 소설은 우리들의 잘못을 가장 정면으로 고발하고 있는 장르가 아닐까, 처음으로 생각하게 했다.

 

 

 

모든 존재를 포용하는 따뜻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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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은 구체적 연도가 정해지지 않은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거리에서는 쓰레기 청소 로봇 ‘스트린’과 로봇 들개 ‘카본’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고, ‘베티’라는 서비스 로봇이 인간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대체한다. 누구나 사이보그 시술을 받고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

 

SF 창작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여기서 더 뻗어 나간 작가의 세계관을 듣기 위해 기다린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은 꼭 미래로 가는 횡단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남겨진 존재들처럼 보인다.

 

돈이 없어 사이보그 시술을 받지 못해 여전히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은혜’, 자유를 잃고 경마만을 위해 길러지는 말 ‘투데이’, 하반신이 망가져 폐기처분을 앞둔 기마 휴머노이드 ‘콜리’,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노동자 ‘보경’.

 

이들 인간과 비인간은 부상당한 ‘투데이’의 안락사를 유예하기 위해 힘을 합한다. 그 과정에서 절대적 악인이나 영웅이 등장하지 않고, 놀라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싸움은 작지만, 결코 하찮지 않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준비. 땅. 소리와 함께 미래를 향한 달리기 도중인 지금, 레일 중간에 쓰러져 있는 이들은 없는지,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 이들은 없는지, 반칙을 쓰고 있는 이들은 없는지 말이다. 모두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는 달리기는 처음부터 시작해선 안 된다.

 

우리 손을 잡고,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천 개의 파랑>은 예의 SF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침울한 미래의 단면


 

다리에 장애가 있는 은혜는 전동 휠체어가 조금 더 편리하게 개조된다면, 휠체어 전용 도로가 만들어지고, 건널목의 보행자 신호가 여유롭다면 사이보그 시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계에도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한 환경의 변화는 없다. 사이보그 시술 또한 돈 많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사람들의 인식은 또 어떠한가.

 

 

나를 조금만 더 남들처럼 대해준다면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돼 (97p)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 대해준다면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97)는 은혜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나와 다른 인종, 신체, 문화를 가진 대상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급기야 혐오하는 사회. 현재와 다를 바 없는 사회다. 물리적인 것들은 급진적으로 변화하지만, 공고한 고정관념에는 변화가 없는 사회는 침울한 미래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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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전작 중 단편 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성 소수자며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인물을 등장시켜 미래사회에도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현재와 다를 바 없는 막막한 폐허였다.

 

 

 

누구를 위한 '좋은 세상'인가?


 

은혜의 아버지를 통해서는 노동의 문제를 드러낸다.

 

소방장비를 새것으로 교체한 뒤 구조 현장에 나갔다면 소방관이던 그는 죽지 않았을지 몰랐다. 소방당국은 구조용 로봇을 연구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와중에도 소방대원들 개개인의 노동 환경에 대한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 고통받는 인간들은 미래에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현재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이다. 이대로 간다면 수치에 변화가 없을 것이 잠정적 진실이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창한 ‘20대 80’ 사회는 단순히 기술 발전으로 끊을 수 있는 고리가 아니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그래서 ‘더 좋은 세상’으로 가자고 모두가 고함을 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을 떠올리면 누구를 위한 좋은 세상인가가 명확해진다오직 인간, 인간 중에서도 20의 인간만을 위해서다.

 

현재를 끌어안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건 당연하게도 불가능하다. 엉망진창인 지구, 지금, 여기의 문제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절망뿐이라고, 소설 속 미래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비인간 동물을 조명하다


 

<천 개의 파랑>은 인간뿐 아니라 기계와 동물 또한 소외된 존재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플라스틱이 몸에 박힌 채 죽어가는 물고기, 과하게 좁은 면적의 빙하 위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북극곰의 이미지는 잔인한 인간 존재의 표상이다. COVID-19의 원인 중 하나가 기후변화로 거론되며 육식 소비와 일회용품 소비에 조심하고 있다지만 동물의 자원화, 무분별한 자연 파괴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적 현상이다.

 

소설 속 미래 세계에도 여전히 그러한 풍경이 이어진다. 경마장의 철창에 갇혀 생활하는 경주마 투데이는 1년 정도 경주마로 달린 뒤 안락사당한다. 관절의 연골이 다 갈려 더는 달릴 수 없는 경주마는 가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의사 복희는 경마장의 말들을 정기검진하기 위해 경마장에 방문하곤 한다. 그때마다 케냐에서 만났던 동물들을 떠올린다. 밀렵꾼에게 상아를 빼앗긴 코끼리, 얼룩말의 집단 자살, 그리고 굶어 죽은 동물의 사체.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 이 땅을 밟고 사는 모든 것들이 (158p)

 

 

복희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 이 땅을 밟고 사는 모든 것들이(158)라고 읊조린다.

 

그녀의 말이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인간들이 경주마를 가둬놓고 훈련하고, 기수 로봇까지 만들어 경마 경기를 활성화한 이유는 재미있으니까(23)였다. 고작 인간의 재미를 위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자원화하는 행태가 시대를 뛰어넘어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인간은 동물에게 행하는 폭력이 언젠가 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폭력의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소설 속 풍경은 이젠 정말 바뀔 때라고 우리를 재촉한다.

 

 

 

비인간 기계를 조명하다


 

콜리는 자신을 인간처럼 대해주는 민주에게 인간이 되고 싶은 건 아니(344)라고 말한다. 콜리는 실제하는 존재(344)로 대우받는 것은 좋지만, 인간 옆에 오래 있는 기계(344)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의 시선에 의해 기계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현재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할 때 인간 신체를 모방하고, 인간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상상력은 생각해보면 기괴하다. 인간을 지구의 어떤 존재보다도 우위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실상 인간의 감정은 로봇이라는 새로운 존재에게 능력처럼 심어줘야 할 정도로 위대하지 않다. 감정이 촉발한 방대한 인간 범죄의 역사를 보라.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인간적인’의 기준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으로 더 공고해진다는 점이다. 고정된 인간의 신체, 인간의 감정, 인간의 언어는 비인간을 지구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더 나아가 인간조차도 정상과 비정상으로 이분화한다. 은혜와 같은 장애인, 가난한 홈리스, 성소수자 등은 ‘정상 사회’ 안에 포섭될 수 없는 ‘비정상인’으로 규정되고, 망가진 로봇 콜리처럼 폐기되거나 없는 존재로 치부된다.

 

로봇 콜리는 기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마주하려 했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은혜는 장애가 있을 뿐이듯이 말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폭력적으로 변모한 ‘인간적’ 시선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이 지구 행성에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느리게 달리는 연습


 

투데이의 마지막 달리기를 위하여 은혜, 연재, 보경, 콜리 등 소설 속 등장하는 대부분의 존재들이 서로 손을 맞잡는다.

 

투데이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349)을 해야 했다. 이미 연골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빨리 달리면 다리에 크게 무리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이후로 줄곧 경마 경기를 위해 빨리 달리는 훈련만 받았던 투데이는 느리게 달리는 게 가장 어려웠다.

 

투데이는 느리게 움직일 때 비로소 하늘의 색깔을 표현할 단어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고, 등에 타 있는 콜리의 호흡을 느낀다. 우리도 투데이처럼 느리게 달리는 훈련을 해야 할 때이다. 그때 비로소 무언가 다른 것들, 계획적이지 않은 것들, 어긋날 것들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하다. (21p)

 

 

콜리는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21)하다고 말한다. 파란 하늘을 천 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듯 우리는 각자를 천 개의 서로 다른 아름다움으로 마주할 수 있다. 개별적 존재들이 하나하나 서로 다른 빛을 발할 때 우리의 호흡(348)은 한데 어우러진다. 손을 잡고, 비로소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책을 덮고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오늘의 하늘은 점멸하는 도시의 야경과 닮은 파랑이다. 천 개의 파랑을 고유한 언어로 셀 수 있다면, 내가 너와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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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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