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와 내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 - 너에게 가는 길 [영화]

글 입력 2021.11.20 22: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등이 또다시 미뤄졌다. 성차별적인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한 여성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발의했고 청원인 수는 10만 명을 채우며 기준을 달성했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9일 해당 법안의 심사 기한을 2024년으로 미루며 또다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기약 없는 나중으로 밀어냈다. 민주주의적 정당성과 충분히 증명된 필요성에서 출발한 목소리가 차별주의자를 고려한 표 계산 앞에 어처구니없이 무시되었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각종 분야의 논쟁에서 사회적 약자는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어떤 국민의 주권은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은 오늘도 누군가는 빼놓고 겉모습만 진보인 헛걸음을 거듭한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꺼지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날 국회의 후퇴는 분명한 과오로 기록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평등에 관한 법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할 국회에서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회 바깥에서 더욱 요란하고 활발하게 확장되는 각종 형태의 담론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세상이 실현할 역동적인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두 엄마가 자녀의 세상에 다가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비성소수자 엄마가 성소수자 자녀의 현실과 만나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며 멈추지 않는 평등의 담론을 이어나간다.

 

 

메인 포스터.jpg

 

 

나비의 자녀 한결은 FTM 트랜스젠더 남성, 비비안의 자녀 예준은 동성애자 남성이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인식해왔으며 오랜 고민 끝에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이 영화는 아들의 커밍아웃을 들은 두 여성의 혼란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모양과는 어딘가 달랐던 자녀가 어느 날 홀로 감내했을 고통과 외로움의 경험을 고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을 때 엄마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녀가 소수자라는 사실 그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수자에게 녹록지 않은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을 자식의 삶 또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나비는 치마를 입기 싫어했던 한결이 감췄을 마음을, 비비안은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을 때 예준이 느꼈을 벽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태연한 듯 행동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 가득했던 두 엄마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참석하고 같은 부모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현재 맞닥뜨린 것이 자신의 자녀만이 처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몰랐던 세상을 접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나비와 비비안은 비슷한 상황에서 울고 웃는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녀를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갈피를 잡는다. 생소한 외국어로 이루어진 자녀의 정체성도 점차 자연스럽게 입에 붙고, 눈물과 함께 이야기했던 일들을 이젠 웃으면서 꺼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나비와 비비안, 한결과 예준의 삶을 둘러싼 사회를 함께 관찰하며 아직 나아갈 길이 남은 현실의 모습 또한 전달한다.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예준은 공공연하게 커밍아웃을 해도 사회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준과 비비안이 자신이 성소수자, 성소수자의 엄마임을 나타내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면 행인들이 환호를 아끼지 않는 캐나다의 퀴어 축제와 달리, 나비가 목격한 인천의 퀴어 축제에서는 반동성애 집회의 광기 어린 혐오와 여전히 성소수자에게 위협적인 한국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나비와 비비안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피부로 느끼며 자신이 품었고 또 풀어야 할 고민이 마냥 개인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6.jpg


 

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나비는 퀴어 축제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보통 자녀가 혐오의 시선에 부딪히는 현장을 목격한다면 그런 곳에 가지 말라고 만류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오히려 자신이 투사가 된다며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비안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지 못하고 홀로 남아있을 것이 염려된다며 동성혼 법제화 기자회견에서 목소리를 낸다. 홀로 고민을 떠안던 엄마들은 다른 부모들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이젠 사회와 맞서 싸우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택한다. 퀴어 축제에서 ‘프리 허그’ 이벤트에 나선 나비와 비비안이 처음 보는 축제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은 내 아이의 행복과 안전을 바라는 부모의 당연한 마음에서 출발한 용기가 사회로 뻗어 나가 그 자체로 커다란 연대의 힘을 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는 이들이 깨닫는 흐름과 함께 개인의 삶을 사회적 문제와 연결 지어 현실의 담론까지 폭넓게 다룬다. 한결이 성별 정정 심문을 받으러 나비와 함께 간 법원에서는 성인에게도 양친의 동의를 받아올 것을 요구하는 등 과도하고 불필요한 입증을 수많은 서류와 함께 요구한다. 현재 상태의 고통을 갖가지 형태로 증명할 것을 유도하며 존중 없이 심문자를 대하는 법원의 모습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공감이 여실히 부족하다는 것과 그것이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얼마나 무참히 훼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 트랜스젠더는 성별 정정 과정에서 이 모든 후진적 관념에 부딪힌 후에야 국가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가 당면한 현실은 성소수자만의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에게 후진적인 사회는 비성소수자에게도 후진적이다. 차별금지법이 수면 위로 오를 때마다 사회적 합의를 선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불처럼 등장하지만, 성소수자 역시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형용모순의 주장이며 사실상 기존의 지배적인 통념에 굴복하기를 원하는 기득권과 차별주의자의 변명에 불과하다. 이토록 무지한 세상에서 한결은 용기로 하나의 사례를 더하며 새로운 사회로 나아간다. 비비안은 동성혼 법제화를 외치며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미래를 향한다. 이들은 개인의 지평에서 머물지 않고 너머의 세상을 가리키며 자신과 사회를 더 나은 위치로 주저 없이 이끌어나간다. 성장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퀴어 영화이면서도 가족 영화, 여성 영화이자 한 사람의 인생 영화가 될 것이라는 비비안의 소개처럼 이들의 움직임은 곧 다양한 자아로서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8.jpg


 

나비는 영화의 코멘터리에서 한결이 성별 정정 심문을 받는 날, 자신이 직장 외출 사유로 ‘자녀성별정정 법원 심문 참석’이라는 내용을 적는 장면을 보며 공적 문서에 꼭 한 번 해당 이유를 적시하고 싶었다고 언급한다. 성소수자의 발걸음을 기록하여 가시화하는 과정이 지니는 가치를 시사하는 대목으로, 이는 곧 영화가 갖는 의의이기도 하다. 자녀가 부모 등 가까운 어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비율이 높지 않은 한국에서,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 이후 부모가 자녀의 세상으로 가는 길과 그 안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이 영화는 같은 고민을 품고 있을 부모 및 자녀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공감을 나누며 서로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는 길이면서도,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 나비와 비비안처럼 자녀의 행복을 위해 투사를 자처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지 묻는 관객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그러한 어른이 없는 아이들에게도 사회가 불신을 회복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이 영화가 남긴 최종적인 과제일 것이다. 오랜 시간 혼란스러워하며 아들이 ‘돌아오길’ 바랐던 예준의 애인 성준의 엄마가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경험을 나누고, 끝내 영화에도 참여하여 자랑스럽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엔딩 장면은 연대는 언제나 존재하며 움츠러들지 않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전히 이상적인 어른이 부족한 세상이지만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약속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걸으며 사랑과 용기를 지피는 이들이 있어, 모두에게 따뜻한 세상은 오늘도 한 발 더 가까워진다.

 

 

 

컬쳐리스트.jpg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45958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12.08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