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슈미, Sue me : 마음대로 해봐! - 연극 슈미

글 입력 2021.11.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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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슈미>는 헨릭 입센의 <헤다 가블러>를 한국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인간의 정신 탐구극이자 사회 고발극이다. ‘슈미’라는 인물을 통해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에서 인간이 이상이라 여기는 것의 허위와 그 이상마저도 이용하려는 지금의 시대를 고발한다. 이 시대의 현대인들은 나르시시즘, 긍정, 피로, 혼란, 분열, 파괴 등 다양한 자아들이 과장된 채 혼재되어 살아가고 있다. 슈미는 <헤다 가블러> 속 인물과 관계를 즉각 반응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지금, 이 시대’의 인간의 삶을 날서 시선으로 재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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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시작되고 슈미는 긴 테이블에서 잠을 자다가 천천히 일어난다. 그녀의 모든 동작은 간결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르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딱딱한 말투를 사용하며 간결하면서도 강하게 말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정리되어 놓인 꽃을 보고 남편 경민에게 보고 싶지 않다고 치워달라고 한다. 동시에 자신의 뒤에 매달다 만 조명을 보고는 ‘좋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정형화된 것과 비정형화된 것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녀는 비정형화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것에 자신을 투영한다. 처음에는 슈미가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서 생각하고 싶지 않기에 비정화된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그녀가 비정형화된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 정돈되어 있어 그녀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정형화된 것과 달리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어 그녀의 손길이나 지배가 통할 수 있는 것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난 스스로 아름다워”, “난 스스로 빛나”, “나 자체로 유토피아야” 등과 같은 그녀의 대사와 이어지며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자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이 원하는 상태(환경)에서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순적인 측면을 보인다. 그녀가 사치스러운 생활, 그리고 직업을 가지지 않고 단순히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기 스스로 있기 위해서 그녀는 부모님이 남기고 간 유산이 필요했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경민과 결혼했다.


슈미는 애경, 유완, 도규, 경민 이들을 모두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은 슈미의 지시를 따르는 듯 보인다. 이들은 각자 어떤 행동을 하거나 슈미에게 제안을 하다가도 슈미의 ‘짧은’ 말 한마디 하나로 그들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준다. 이 순간 슈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행동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이런 행위가 슈미는 퍽 만족스럽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애경에게 정서적으로 공격을 가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도규를 말 한마디로 개처럼 행동하게 하기도 한다. 자신의 남편인 경민의 모든 행위를 통제하고, 경민은 어떤 일을 할 때 모두 슈미의 허락을 받고 한다. 유완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슈미의 통제 하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나, 술을 계속해서 권하는 슈미의 태도에 못 이겨 결국 힘들게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된다.

 

슈미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원한다. 그리고 그 축제가 유완을 통해 이뤄지길 바란다. 그래서 유완이 포도나무 잎을 머리에 쓰길 원한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인간은 자신이 누군인지를 망각하며 사회를 떠나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상태는 슈미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상태이지만,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자신 스스로 빛나고 있다. 직업, 재산 이런 외부적인 것으로 인해 빛나는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느끼면서 말이다. 동시에 그는 완전히 원초적인 상태로 들어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그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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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극 마지막, 슈미가 다른 4명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유완의 죽음이 슈미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순간이 슈미가 가장 폭발하는 순간이며, 그녀를 죽음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슈미는 유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원고를 아무렇지 않게 파쇄해 버린다. 그에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녀의 일말의 가책이나 갈등, 표정의 변화가 없다. 원고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망가져버린 유완의 모습을 보며 슈미는 희열을 느끼고, 그에게 실탄이 들어있는 권총을 건넨다. 슈미는 유완이 스스로 파멸하길 원했다. 천재라 불리는 그의 자살이 처음으로 그에게 있어 용기 있는 행동이며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유완이 자살을 시도해서 응급실로 갔다는 도규에 소식에 슈미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유완은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여관 주인과 실랑이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발사된 총에 맞은 사실이 도규를 통해 밝혀진다. 그 순간 슈미는 좌절한다.

 

원고의 발표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애경 또한 원고의 부재와 유완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상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원고를 복구하려고 노력한다. 슈미의 완벽한 통제 하에 있다고 보였던 경민 또한 그렇지 않았다. 슈미는 경민을 정교수로 만들기 위해 원고를 파쇄했다고 말하지만, 경민은 자신이 정교수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하지만, 경민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장 소극적으로 슈미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존재인 만큼,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슈미의 통제 하에 움직이기는 한다. 마지막으로 검사인 도규는 슈미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좌지우지되는 존재인 듯 보였다. 슈미는 사회적 권력을 대표하는 도규를 자신이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회적 권력은 그녀를 궁극적으로 옥죄는 존재가 되고 자신이 그것을 컨트롤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이 자신에게 맞춰주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모든 사실을 직면한 순간 슈미는 갑자기 (허구의 몸짓을 통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 숨겨놓았던 또 다른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다.

 

이러한 극의 전개는 상징적으로 무대 위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직사각형의 물체의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배우들은 절대 이 물체를 가운데서 한 번에 밀지 않는다. 한 명이 이 물체의 한 쪽 끝을 밀고 나서 다른 한쪽 끝을 밀거나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한 쪽씩을 민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직사각형 물체는 한 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직선으로 균형을 맞춰나간다. 이 물체의 움직임처럼 슈미와 그녀의 친구들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슈미가 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녀에게 온전히 지배권이 넘어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지배하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의 관계의 균형이 다시 수평을 향해 간다.

 

극 전반에서 슈미는 총에 유독 집착하는 태도를 보이며, 꽃을 던지거나 꽃으로 사람을 때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본 극에서 총과 꽃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걸까? 화병에 꽂혀 있는 꽃은 이미 한차례 죽은 것이다. 왜냐하면 대지 위에서 살다가 인간의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 한 번 잘렸고, 인간의 의도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미는 자신의 화풀이 도구로 꽃을 던질 수도 있고, 꽃을 이용해서 다른 친구들을 치거나 때릴 수도 있는 것이다. 즉, 꽃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채 슈미의 손에 쥐어져 있을 뿐이다.

 

총은 일반적으로 3가지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키는 수단, 전쟁, 죽음이 그것이다. 여기서 총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자 죽음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슈미가 왜 이렇게 총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추측하건데 총을 통해 언제든지 자신의 삶을 쉽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친구들에게 총구를 반복적으로 들이대는데 이러한 행위를 통해 예상해보건대, 총을 쥐고 있는 슈미는 다른 사람들의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즉,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하길 원하는 슈미의 욕망과 자신이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이 투영된 도구가 총이기 때문에 슈미는 총에 집착하는 것이다.

 

왜 ‘슈미’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슈미를 인터넷 창에 치면 ‘sue me’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의 의미는 ‘마음대로 해봐’이다. 지금까지 슈미의 행동을 살펴보았을 때 이 표현의 의미는 퍽 그녀의 이름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누군가가 슈미에게 “너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너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것은 가장 앞서 말했던 포스트모더디즘의 허상을 고발하려는 이 극의 의도와도 상통한다. 포스터모더니즘의 핵심 개념은 ‘해체’이다. 해체를 통해 모든 것은 개별성, 다양성, 독자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에서 인간은 서로를 각 개체로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 개인에게 자신과 타자, 그리고 세계에 대한 선택권까지 넘겨준 듯 보이지만 각 개인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욕망이나 선택을 행하고 그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게 벌어진다.

 

슈미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독자적이며 개별적이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간섭받거나 영향받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를 유지해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모두 거짓이었고 환상이었다. 결국, 이 극은 슈미의 절망과 자살을 통해 현시대의 이상을 비판하며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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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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