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체이용가 그림책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도서]

글 입력 2021.11.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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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했을 때, 어른이 되어 그림책을 읽어본 게 언제인지, 읽어보긴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적으로 돌아가 보면, 그림책을 좋아해서 수십 번을 읽고 보았던 기억과 내가 유치원을 다녀온 동안, 엄마가 몰래 책을 사 와서 선물해주었을 때 그 기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글을 읽진 못했지만, 마냥 좋아했던 책을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하나하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도 떠오른다.

 

이렇게 각자 어른들에게도 그림책을 읽었던 시절의 기억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림책 작가에 관한 책이면서도, 작가가 그림책으로 담고자 했던, 어른들을 위한 위로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인터뷰집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릴 때 기억 속 그림책을 이젠 어른이 된 현재로 꺼내 전체이용가 그림책을 만나보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이 책과의 만남


 

이것저것 할 일과 생각들이 많아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책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잘 읽지 않았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데 오히려 책과 더 멀어졌다. 지금은 책을 읽고 마음의 양식을 쌓을 때가 아니라, 전공 서적과 함께 하며 공부해야 삶의 양식을 갖출 수 있는 미래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조바심을 떤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니었고 마음만 더 복잡해져서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보기 시작할 즈음, 이 책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접하게 되었다.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들을 모아 오랜 시간 필요 없이 일이 없을 때 잠깐씩 작가별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을 그리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이 책을 찬찬히 만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해보면서 정말 "웃는 자가 일류다"라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때도 있고, 세상에는 착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론 세상이 나를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현실에 치이면서 속세적인 어른이 되어 간다는데, 어른인 그림책 작가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가져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현실이 힘들지 않아서 순정을 지키면서 그런 아름다운 상상력이 풍부한 동화를 그릴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어디서 모티브를 따오는지, 글감을 구성할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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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탈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면서 그 동심을 지키며 모두에게 웃어줄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어야 모두를 위한 그림책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각박한 사회에서 쓴맛을 많이 보고 힘들어하고 있던 터라, 그림 속 해맑은 아이의 웃음을 그려내는 작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웃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태도를 본받고 싶었다.

 

 

 

과정으로만 존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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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가 한국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처음으로 떠올랐다던 권윤덕 작가님은 커다란 시대적 아픔을 그림책으로 담아온 작가이시다. 위안부 피해자, 제주 4.3 사건, 5.18민주화운동, 베트남전 참전군인 이야기 등 충돌이 일어났던,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야기를 다루셨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점은 그런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탄생시키기까지 적게는 3년, 오래는 13년을 매달리셨다는 점이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그 중압감을 가지고 붓 터치 하나하나, 이야기 구성 하나하나를 진행한다는 게 절로 실감이 났다.

 

 

작가님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험악한 폭력을 다룰 때 적나라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선한 의지와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요.

 

- p.32

 

 

아무리 아픈 이야기여도 사건의 배경과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질문을 이어가고 확장해나가다 보면 인간의 선한 의지와 희망을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주로 맡았던 작품들의 사건들이 비극적인,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지만, 그곳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선한 의지를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작가님이 얼마나 굳센 태도로 삶을 살아오셨는지 지레짐작해볼 수 있었다.


 

나를 지키고 키워가는 힘은 이미 내 몸이 지니고 있어요. 그 믿음을 잃지 말았으면 해요. 생명은 과정이지만, 미래의 어떤 것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합니다.

 

- p.45

 

 

내가 유독 2021년 가을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이유가 비로소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임을 권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 깨달았다.

 

결과를 중요시하며 지난날의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고 후회하기 바빴고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는 무관심 속 차별을 확증 편향하기 십상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슬퍼했고, 나를 지키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서 나를 지킬 힘이 나올지 원망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를 지키고 키우는 힘은 이미 내 안에 숨 쉬고 있었다니. 지금 이렇게 밤마다 울적해지는 순간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힘이 발휘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커서 넘지 못해 속상해하는 나를 자책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감싸 안는 노력을 바라볼 순간인 것 같다.

 

 

 

의문문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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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경 작가님의 인터뷰엔 공감할 수 있는 말과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 꾹꾹 눌러져 함축되어 있었다. 책 <레스토랑 sal>과 <호텔 파라다이스>에는 표면의 현실과 이면의 진실을 함께 담았고, 그 진실을 보는 어린 소녀가 등장한다.

 

세상의 양면을 두루 예민하게 감지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계속해서 인생을 살아가며 입장과 처지가 바뀌는 우리의 모습을 담고자 하셨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을이었던 사람이 식당에 가면 갑이 되고 비교에 따라 우위가 나누어지는 그 양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읽으면서 그 소녀가 꼭 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릴 때 행복하고 항상 밝게 끝나는 동화책만 봤던 것과 달리 소 작가님의 책들은 그 이면의 진실을 확실히 인지하도록 이야기가 구성되어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당당하게 어린아이들도 이런 면을 구분할 줄 알고, 모른다면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어쩌면 더 좋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삶의 여러 어려움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 p.79

 

 

부정적인 고난이나 힘든 일들이 없었더라면, 마찰 없이 사회로부터 늘 환영을 받았다면 대처 능력이 약했을 거라고 말하는 소 작가님의 말에 지금까지 내가 겪은 모든 힘듦이 용서되고 위로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소윤경 작가는 자기 안에서 피어오른 여러 의문형 문장들을 사소히 여기지 않고 물음표를 모아 맞설 수 있는 용기로 빚어낸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킨다.

 

- p.81

 

 

그림책은 당연히 '어린이용'이라고만 대하고 깊이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고전 두꺼운 책이나 비문학 작품의 경우 더 세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해보고 싶은 흥미를 느꼈는데, 그림책은 단순한 그림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림책 작가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셨다. 그림책은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쉽지 않게 삶을 살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따끔하면서도, 따스하게 토닥토닥 건네는 말들이 다른 어떤 책보다 깊이 함축되어있음을 이 인터뷰집을 통해 깨달았다.

 

기쁨과 슬픔, 고난과 극복, 모든 것을 돌파하는 힘을 가진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만나며 나도 어려움이 찾아올 때, 이에 혼자 힘들어 버거워하기보다 사건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 힘들다는 감정에 매몰되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돌파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그 자신감을 찾게 되었다.

 

작가님들처럼 남녀노소 모두에게 돌파하는 힘을 선사하는 그림책을 만들지 못할언정, 나라도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하고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웃음을 내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자. 그러다 보면, 내 주변도 그런 사람들과 기운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먼저 여기 나온 작가님들의 전체이용가인 그림책을 만나야겠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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