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계에 관한 가장 진심어린 탐구, '보더라인'

이들이라면 경계가 만들어낸 난민의 진실된 대변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글 입력 2021.11.1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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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라는 단어는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가. 나에게 가장 처음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리아와 같은 국가의 사람들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타국으로 도피해온 모습이다. '난민'이라는 이름 하에 최근의 미디어에서 상당수 소비되며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리잡은 그런 이미지 말이다. '난민'은 이토록 멀고 낯선 단어, 혹은 그저 관념 정도로만 다가온다.


그렇다면 '경계'라는 말은 어떨까. 훨씬 익숙하다. 한국인이라면 당장 거대한 경계를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때로는 국경이라는 말로 둔갑하는 휴전선 말이다. 뿐만 아니다. '융복합 인재'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다양한 스킬을 갖추어야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청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매일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다.


'보더라인'은 이 모든 경계들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경계가 무너지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은 모든 이들이 어떻게 그 경계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은 무너졌지만 베를린을 두 개로 가르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던 독일과, 여전히 휴전선을 경계로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진 한국의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국경이 되어버린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이탈주민, 갖가지 이유로 모국의 경계를 넘어 유럽에 도달한 난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과 그 후를 모두 겪은 독일인. '경계'라는 단어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는 그들은, 여전히 그 영향이 잔재한다고 말한다. 주로, 차별의 이름으로.


결국 경계와 난민은 하나로 묶여 있는 단어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난민이란 단어에는 왜 이토록 공감이 되지 않는 걸까. 앞서 말했듯, 미디어의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특수한 상황으로 비춰지니 말이다. 그러나 '보더라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모두가 난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경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기 때문이겠지.

 

 

보더라인.jpeg

 

 

'보더라인'은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수많은 경계들을 무대로 가져온다. 동시에 바닥에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낸다. 한국 곳곳의 바닥에 그어지는 선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공연의 막바지에 이르러 공연이 이루어지는 극장을 비춘다. 선을 긋는 이는 극장 안으로 들어와, 무대 위에 둥근 선을 긋고 다시금 극장 밖으로 걸어나가며 그 선을 이어나간다. '난민'을 만들어내고, 차별의 기반이 되는 그 '경계'가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보더라인'이 제시하는 것은 원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해결책, 중재안, 극복 방안을 극에 녹여내고 있다. 우선, '기술'이 있다. 독일과 한국, 극장 안과 극장 밖 배우들은 화상 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연결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기술로 넘는 셈이다. 줌으로 연결된 배우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하기도 하고, 독일의 맥주를 한국으로 '직접' 전해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장면 중 하나는 커튼콜이었다. 한국의 밤 9시 반, 커튼콜이 벌어지는 '보더라인'의 무대 위에서는 한낮의 독일 거리와 평범한 집의 부엌, 도심의 야경을 뒤로 한 서울의 한 옥상에서 동시에 관객에게 인사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경계와 그가 만들어내는 차이, 차별, 거리감 등을 다루는 공연이어서인지 더 뭉클하게 느껴졌던 장면이었다.


또한, 공연에는 '언어'가 등장한다. 창작자이자 극중 캐릭터로 등장하는 '소현'은 공연을 함께하는 독일 출신 동료들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경계'에 관한 독일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운다. '소현'이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은 극 중간중간 상세히 묘사된다. 단순한 발음 연습과 단어 암기에서 시작한 독일어 학습은, '소현'이 독일 난민들의 말을 직접 자신의 말소리로 전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흔히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언어의 '장벽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보더라인'은 언어가 장벽을 세울 수 있다면, 허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를 통해 보여주었다.


'보더라인'은 이처럼 '경계'라는 관념에 대한 탐구의 총집합체와도 같은 공연이었다. 경계가 무엇인지, 우리의 일상에 어디까지 침투해 있는지, 경계에 관한 인식이 난민을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창작진 전반의 집요하고 진심어린 연구가 와닿는 110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연의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는 것인데,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특히 더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경계를 '이해'하고 최대한 그 장벽을 넘어보려 노력하는 진실된 '태도' 만큼은 무대에 가득한 에너지를 통해 여실히 느껴볼 수 있었다. 기술과 언어라는 방법이 있더라도 개인의 노력이 없더라면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보더라인'은 그에 관한 가장 훌륭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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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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