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로맨스 소설이라는 표피를 벗겨낸 역사 - 도서 '라스트 듀얼'

글 입력 2021.11.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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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맨스 소설이라는 표피를 벗겨낸 역사



책 `라스트 듀얼`은 두 기사의 결투를 상세히 묘사한 역사소설이다. 그 이름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책은 목숨을 걸고 싸운 카루주와 르그리의 이야기를 대주제로 삼는다. 하지만 결투에 매달린 것이 두 남자의 목숨뿐만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카루주 부인 마르그리트에게는 창에 찔려 죽는 것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결투에서 패배하면, 그녀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두 기사가 결투를 벌이게 된 이유는 로맨스 소설의 그것과 같다. 평소에 호색한으로 알려진 르그리는 카루주 부인의 아름다움에 끌려 카루주 가의 감시가 느슨해진 사이 그녀를 강간한다. 르글리는 마르그리트가 가문과 귀부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라 이야기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카루주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카루주는 르그리가 아내를 탐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카루주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위에 있는 르그리를 이기는 방법이 결투재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대가로 르그리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로맨스 소설이라면, 카루주는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건 로맨티시스트다. 하지만 `라스트 듀얼`에서 묘사되는 상세한 결투의 배경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책을 읽고 난 후 마주한 `마지막 결투재판`은 당대 사회의 혼란과 아이러니를 한 사건으로서 응축해놓은 것과 같다. 두 남자의 결투재판은 강간당한 여인을 중심으로 맞부딪쳤기에 성사된 것은 아니다.


당시 두 사람 사이에 결투재판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신앙 체계와 권력 체계의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의 이름을 빌렸지만, 결투재판의 결과는 결코 신의 보살핌을 받지 않는다. 결투는 신이 지켜보는 신성한 제단이 아니라 잔혹하고 야만적인 콜로세움에서 일어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던 끔찍한 전쟁은 이 야만적인 전투와 잘 맞아떨어진다. 허울뿐인 기사직, 철저한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권력 체계 역시 이 결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하나라도 맞물리지 않았다면, 결투재판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스트 듀얼`의 위대한 점은 이 점에 있다. 두 남자의 결투는 얼마든지 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질 힘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철저한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당시 상황을 놀라운 방식으로 재현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카루주 가문과 르그리 가문의 배경, 두 인물의 성격과 야망, 철저한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에서 야심가 카루주가 느끼는 분노를 재현한다. 이처럼 책은 메인 소재인 결투재판뿐만 아니라 중세 프랑스의 다양한 면모를 비춘다. 샤를 왕, 전쟁, 관습, 건축, 법은 하나의 사건-라스트 듀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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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벽한 고증, 생생한 장면


 

1386년, 크리스마스에서 며칠이 지난 마지막 `결투재판`이 이루어졌다. 결투가 이루어질 때는 전쟁의 광기가 프랑스 궁정을 휩쓸고 이슬람 군대가 기독교를 위협하면서 교회를 분열시킨 때였다. 스코틀랜드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노르망디의 기사 카루주는 그의 오랜 친구인 르그리가 자기 아내를 강간했음을 고발한다. 르그리는 그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카루주는 당대 최고의 결정권을 가진 샤를 6세 앞에서 자신이 결투재판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을 모욕한 상대와의 다툼을 해결하는 명예 결투와 달리, 사법 결투는 결투 당사자가 거짓 선서했는지를 결정하게 위한 정식적인 법절차였다. 결투재판은 judicium dei, 즉 신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결투재판은 거짓 증언을 한 이에게는 신이 마땅한 벌을 내릴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재판이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 결투재판은 상고의 한 형태로서, 판결에 불만을 가진 소송 당사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선서증인에게 결투를 신청함으로써 그 증언을 몸소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결투재판은 신의 권능을 시험하는 행위라는 비판과 왕의 사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회와 왕으로부터 탐탁지 않은 형태의 재판이었다.


르그리에게 결투재판은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르그리는 결투재판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재판을 유도할 수 있었지만, 결투를 응해온 상대를 거절하는 것이 귀족으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어쩌면 카루주보다 거대한 몸집과 힘, 더 좋은 종마와 무기를 살 수 있는 재력을 어렴풋이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카루주는 결투 날까지 지독한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결투재판을 요구한 카르주에게도 결투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결투재판은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진행되며, 항복을 선언해도 신의 앞에서 거짓을 고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결투에서 패배하면 그는 자기의 목숨과 명예를 잃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 산 채로 화형에 처하게 된다. 신앙이 중요했던 당시 시대에, 결투에서 진자는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저주를 들은 것도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래도 카르주는 결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르주와 르그리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르주와 르그리는 본래 절친한 사이였다. 카르주는 르그리에게 아들의 대부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새로운 군주 아래에 르그리와 경쟁하면서 이러한 우정에는 금이가기 시작한다.


카르주는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더 많은 땅을 얻고자 한다. 프랑스 왕정을 배신한 가문의 여식인 마르그리트와 결혼한 이유는, 그녀가 좋은 토지-오누르포콩-를 상속받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젊었기에 그의 자손을 이어줄 만큼 건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오누르포콩은 그의 군주의 손에 들어가 그의 가장 총애하는 르그리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 승승장구하는 르그리를 보면서 카루주는 질투에 시달렸다.


카루주는 르그리가 자신을 파멸시키려 한다고 생각했고, 전쟁에 돌아와서는 르그리를 조롱했던 것으로 보인다(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르그리가 카루주에게 어떤 악의를 가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젊고 아름다운 마르그리트에 대한 욕정이 끓었는지 알 수 없다. 무엇이 되었건 그는 마르그리트를 강간했다. 카루주는 그것을 아주 치욕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이제 완전한 갑옷을 입은 카르주와 르그리는 왕과 귀족, 그들의 결투를 구경하려는 수많은 관중 앞에 섰다. 책은 전투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여 완성한다. 큰 상처를 입고도 포기하지 않은 카르주의 승리였고, 그는 자기의 아내와 함께 살아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였다. 르그리의 시체는 참혹한 모습으로 불태워 들쥐들에게 뜯어먹혔다. 하지만 결투재판은 그 잔혹성을 이유로 폐지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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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거된 여성의 이야기



책을 덮으면서 카루주가 르그리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이 온전히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복합적인 결과였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예상되는 이득, 르그리에 대한 복수심과 그의 명예를 위해 움직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처음 사랑하기를 `선택`한 것처럼 그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 것도 자신의 명예의 연장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르그리 역시 사랑을 위해 결투에 임하지 않았다.


이 장대한 역사적 사료에서 하나의 관점은 무시된다. 바로 마르그리트의 입장이다. 물론 그녀는 르그리의 핍박과 알 수 없는 카루주 반응을 감내하고 그녀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녀는 이후에도 일관되고 논리적인 말로 그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전달하였다. 당시 처참한 여성인권을 생각했을 때, 그녀의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당시에는 용감한 그녀의 진술보다 명예로운 두 남자의 결투가 기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책은 카루주와 리그리라는 두 기사의 배경을 자세히 기술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르그리트의 입장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소설이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된 것은, 이 작품이 단순한 작가적 상상력이 아닌 역사적 사료를 중심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역사는 herstory가 아니라 history였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책에서 반복하여 노출한다. 마르그리트는 두 가문의 계약 증거로 교환되는 하나의 상품이었고, 그녀의 목숨이 걸린 전투에서조차 창백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들의 결투에는 그녀가 중심에 있었지만, 중세시대는 정작 피해 당사자인 그녀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신의 이름을 쓴 모순덩어리인 `결투재판`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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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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