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재와 과거, 동양과 서양 막론하는 '수집'을 향한 열망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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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계의 핫이슈 중 하나는 바로 ‘컬렉팅’이다. 요즘만큼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미술품을 수집에 열성스럽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예술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관람 뿐 아니라 수집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처럼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런 수집 문화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문과 문화의 부흥을 이루어낸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이라면 지성을 쌓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연구와 탐구의 시간을 가졌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했다.
그런 그들에게 연구와 탐구를 위한 공간이자 세계를 누비며 모은 진귀한 물건들을 전시할 공간이 자연히 생겨났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호기심의 방’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스투디올로(Studiolo)’, 독일에서는 ‘분더카머(Wunderkammer ⋅ 경이의 방)’ 혹은 ‘쿤스트카머(Kunstkammer ⋅ 예술의 방)’,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캐비넷 오브 큐리오시티(Cabinet de curiosités / Cabinet of curiosities)’로 불리는 이 공간이 바로 프라이빗 컬렉션의 시초이자 미술관⋅박물관의 시초가 되었다.
도메니코 렘프스, 호기심의 방, 17세기
프란스 프랑켄, 'Chamber of Art and Curiosities'
, 1636, 나무에 유채, 74 x 78 cm, 빈 미술사 박물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갖가지 물건들은 수납장에 진열되기도 하고 방 하나를 꽉 채우기도 했다. 친구나 지인이 집을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동물 화석을 두고 연구도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가지고 온 진귀한 물건을 보여주며 자랑도 했을 것이다.
프란스 프랑켄의 그림을 보면 회화와 조각 등 ‘예술작품’은 물론 조개 껍데기, 동물 박제, 보석, 도자기, 동전, 화석 등 희귀하고 이국적인 자연물과 인공물이 전시되었는데, 지금의 박물관처럼 제작 시기나 종류 등 특정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고 공간이 되는 대로 진열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벽에는 그림들이 동물 박제, 구슬 장식과 함께 빼곡히 걸려있다.
이처럼 '호기심의 방'은 현재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아마 기록의 용도인 동시에 과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캐비넷을 채우는 물건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기 때문에 사진 찍듯이 그림으로 남겨두면서 마치 인스타그램에 새로 산 명품백 사진과 여행지에서 머물렀던 특급 호텔 사진을 게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남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그려두지 않았을까 한다.
‘호기심의 방’은 자신의 학식, 지성, 재산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남들이 쉽게 접하거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의 귀족 정체성을 단단히하고 그들끼리는 유대감을 형성했을 것이다.
남들은 가지지 못한 신기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자랑하고 싶은 열망은 당연히 서양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호기심의 방’ 그림과 닮은 조선의 ‘책가도’, ‘책거리’로 불리는 그림은 조선시대 선비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책과 기물이 책장에 잘 정돈되어 있는 그림은 ‘책가도’, 책장 없이 책과 문방사우, 과일과 꽃 등이 나열되어 있는 그림은 ‘책거리’로 주로 불린다. 책은 학식, 권력, 부의 상징이기도 했기에 책가도는 주로 선비들을 위한 그림이었다. 책으로만 가득 찬 책가도가 있고 청나라 도자기, 화병, 향로 등 값비싼 물건과 함께 그려진 그림도 있다. 조선 지식인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엿보인다.
장한종, 책가도 8폭 병풍, 지본채색, 195 x 361 cm, 경기도 박물관 소장
이형록, 책가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53 x 352 cm
서양의 그림과 다른 점이라면 책가도와 책거리는 기록보다는 그런 열망을 담아낸 상징적인 그림이라는 점이다. 책가도는 정조가 사랑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정조는 책을 읽을 수 없을 때 이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세워놓게 하는 파격적인 행적을 남기기도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보는 것만으로 풍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남에게 보여주며 만족감과 자부심을 얻는 것도 본능이 아닐까 생각한다.
르네상스 시대 ‘호기심의 방’의 바탕에는 예술에 대한 애정,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조선시대 ‘책가도’의 바탕에는 지성과 학문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애정과 열망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퇴색해 이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이는 요즘의 컬렉팅에 대해 아쉬운 점과 상통한다.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서 시작된 미술품 수집이 투자, 심지어는 투기의 일환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컬렉팅에 발을 들인 이들 중 일부는 피상적인 것, 금전적인 이익만 좇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수집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신호다. 새로운 트렌드가 된 미술품 수집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참고한 글
“Cabinets of Curiosities and The Origin of Collecting,” Sotheby’s Institute of Art 웹사이트
이주헌, “지적 호기심의 아카이브,” 「한겨레」, 2009년 1월 19일
[이서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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