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AFE: 향기 품은 뜰 [공간]

마담 프루스트집의 집
글 입력 2021.10.26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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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향기 품은 뜰'은 소개를 받아 간 곳이었다. 소개를 받지 않고서는 내 키만큼 높이 자란 풀 때문에 혼자였다면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키보다 높은 빽빽한 풀들이 가득하고, 밑에 깔린 돌을 더듬어 길을 들어가자 테이블과 의자가 한 쌍 있었다. 하얀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철제 의자와 철제 테이블. 주위로 둘러싼 꽃들. 밑에 깔린 잔디들. 담장 너머의 빌딩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문득 카페가 아닌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듯했다.

 

앨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풀이 큰 게 아니라, 내가 작아진 기분. 그 이상한 기분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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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찾지 못해 문 앞을 조금 서성였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문을 열어 주셨다.

 

카페 내부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연상시켰다. 그래서인지 아주머니가 마담 프루스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나에게 마들렌 대신 그녀가 아끼는 찻잔들로 안정감과 추억을 선사했다.

 

카페 내부는 그녀의 물건들로 빈 공간이 없었다. 그녀의 물건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가방, 모자, 찻잔, 잡지, 책, 그리고 온갖 여행지에서 온 기념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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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반은 통유리였기 때문에 어딜 앉아도 밖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가 한창일 때는 창밖 보기를 주의해야 한다. 울창한 숲 사이로 무언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유심히 보다가 귀여운 고양이에게 문득 집중해버리기 십상이다. 항상 딱딱한 아스팔트 위나 축축한 골목길에서 척박한 야생을 사는 고양이들이 안타까웠는데 이곳은 고양이에게 좋은 쉼터인 듯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두 번의 모임을 가졌었다. 첫 번째는 소개해 준 사람과 같이 왔었고 두 번째는 새로 만든 모임의 첫 만남이었다.

 

첫 번째로 왔을 때 나는 꿈을 이야기했었다. 이런 모임을 만들고 싶고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 카페를 영화 촬영 덕분에 알았기 때문에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그래 우리는 그 촬영 때문에 이곳에 모였었지.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내가 원하던 모임이 만들어진 날이었다. 소원을 이야기하고 소원을 이룬 곳이어서.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중요한 모임을 두 번이나 할 만큼 이 카페는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예술에 대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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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점은, 이 카페가 곧 사라진다는 점이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나는 그렇게나 서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에게 서운한지는 모를 일이다. 이런 따뜻하고 역사가 오래된 장소를 개발이라는 한없이 차가운 자본주의의 단어가 덮어버릴 예정이라니.

 

사장님에게 투정을 부리니 자신의 작은 아들이 카페를 이어받는다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이 카페가 아니라 새로 건물을 지어서. 그 카페는 아마 이만큼의 역사는 없을 테지. 고양이도 살 수 없을 테지. 풀도 저만큼 자라지는 못하겠지.

 

향기 품은 뜰은 과거를 가득 담은 곳이었다. 길을 걷다 문득 개미의 행렬을 지켜봤던 어릴 때처럼. 차를 한잔 시키고 하염없이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쫓을 수 있는 곳. 요즘은 그런 곳이 많이 없다.

 

이 카페가 아직은 조금 더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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