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금발이 너무해'

핑크색은 멋있다
글 입력 2021.10.2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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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우즈'는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 부자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또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인 퀸카에, 잘생기고 잘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으며 본인 전공 패션학과에서 완벽한 학점을 가지고 있는, 반짝이는 인생을 살고 있는 여자이다. 그러나 그녀의 파라다이스 같은 인생에 어느 날 남자친구가 본인이 정계에 30살 전에 진출하려면 그에 걸맞은 집안 출신의 '급에 맞는' 여자와 사귀어야 한다며 어이없게 그녀를 차버린다.

 

그가 그녀를 차버린 날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할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여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엘은 남자친구 형이 그가 다니던 같은 명문대 법대 출신의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우연히 잡지에서 보고, 그녀를 찬 남친이 다니는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 그를 다시 쟁취하기로 결심하는데..! 그녀는 과연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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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이 너무해>는 우리 사회에 은연중에 깊게 뿌리박힌 '여성스러움'에 대한 시각에 신선한 반전을 단순하면서도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해낸 영화이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적인 서사를 표방하며 시작하지만, 엘이 자신의 중심과 자신의 인생을 찾아나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 많고, 화장에 관심 많고, 핑크색을 좋아하며 꾸미기를 좋아하는' 것이 은연중 '가볍다'라는 인식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 같다. 주로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은 성은 여자들이며, 그런 걸 너무 좋아하는 여성들은 가볍다,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당연하게 여기며 내 안에 있는 그런 '여성성'(femininity)를 부정하며 컸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심각하게 봐주길 바랬고, 논리적이고 의미 있는 사람으로 봐주길 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한 여성성은 나를 약하고 하찮게 보일 것 같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예쁜 옷을 사고 싶어 사고, 화려한 구두와 가방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내 욕구들이 너무 과하면 남들이 나를 사치스럽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같은 여자이면서도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치스럽고, 가벼우며, 멍청하다' 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이 영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 주는 영화이다.

 

엘은 자신의 여성성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하버드 법대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판단하고 부정적으로 내리깔아도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화려하고 핑크핑크하고 외모에 관심 많은 자신을 당당하게 표출하며 다닌다. 다들 그녀의 겉모습과 관심사로 인해 그녀를 가볍고 촐랑거리는 사람으로 판단하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얼마나 편견인지에 대해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가 잘 다루지 않는 여성들 간의 의리 또한 잘 표현하고 있다. 여성 인물을 다른 여성이 폄하하는 내용의 스토리는 많지만, 결국 스토리 내내 대척점에 있는 여성이 주인공과 화해하게 되는 영화는 특히 2000년대에 개봉된 영화에서는 잘 없는 편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같은 여성들 중에서도 엘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여성들도 결국 그녀와 화해를 하고 친구가 되어 그녀를 지지해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의 우애와 의리도 남성 간의 우애와 의리만큼 멋있고 강하다는 것도 표현해냈다. 또한, 여성을 이용하려는 남성들도 보여주는 반면, 엘의 학교 선배 에멧을 통해 정말 멋있는 남성도 보여주며 이성애자 남성들이 어떻게 여성성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표현해준다. 이처럼 성별 간 편견에 있어서는 이전에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빌려 재미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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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단순한 영화의 구조와 인물 간 관계에 비해,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 중 하나인 재판 씬은 조금 더 조사를 해서 멋있게 표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코믹하고 단순하지만 톡 쏘는 대사들과, 주인공의 매력, 그리고 특히 주인공 엘을 연기한 리스 위더스푼 분이 너무 연기를 사랑스럽게 해 주셔서 개연성 부족의 구멍을 메꿔주었던 것 같다. 정말 이분이 아니었으면 누가 엘의 캐릭터를 이렇게 멋있으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울하고 기분이 처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것 같을 때 한 번씩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잊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추천합니다!



[이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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