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그 주변 어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해서
글 입력 2021.10.22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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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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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넥스트 투 노멀’의 색깔이라고 하면 보라색이 떠오른다. 포스터에서도 보라색을 확인할 수 있다. 기억으로는 무대에서도 보라색 조명을 자주 사용했던 것 같다. 보라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여 나오는 색이다. 흔히 파란색은 우울함, 우울증을 상징하는데, 그렇다면 반대인 빨간색은 조증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보라색은 다이애나의 조울증을 암시하는 색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가족

 

극은 다이애나가 ‘완벽한 가족’을 노래하며 시작된다. ‘골칫거리 아들과 따분한 남편, 딸은 천재지만 완전 또라이.’ 대충 어떤 가족의 모습인지 눈에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극은 각자 가족 구성원이 자신이 그리는 가족을 노래하며 다이애나가 말했던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이애나가 ‘완벽한 가족’을 노래하며 샌드위치를 만들다 바닥에 주저앉아 ‘방이 돈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의미없는 치료를 계속해나가는 의사

 

다이애나는 조울증에 과대망상증으로 16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다. 그녀의 주치의인 파인박사는 다이애나에게 약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이 어딘가 이상하다. 약의 주의사항을 읊는가 하더니 ‘달려오는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병을 고쳐주는 것처럼 구는 의사가 정작 약만 처방해줄 뿐 환자의 차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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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구조의 무대

 

제일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3층 구조의 무대였는데, 배우들은 1층과 2층을 열심히 오간다. 그리고 3층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다이애나의 환영인 게이브 뿐이다. 따라서 이 3층 구조는 다이애나의 의식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대를 보면 2층에 여성의 눈이 그려져 있는데, 무대가 다이애나의 머리라면 맨 꼭대기인 3층은 다이애나의 무의식, 뇌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게이브밖에는 그곳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두 남자

 

댄과 다이애나, 그리고 헨리와 나탈리와의 관계는 굉장히 닮아있다. ‘약속’이라는 넘버에서는 두 남자가 같은 음으로 유사한 가사를 노래하며 같은 행동을 하는 장면이 있다. 두 남자 모두 자신의 배우자, 애인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댄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맞추려 애를 쓰지만 2막의 다이애나의 대사에서처럼 ‘그의 방식대로만’ 헌신한다는 점이고, 헨리는 ‘모서린 깎아내며 맞추면 돼’라고 말하며, ‘네가 미쳐가면 같이 미쳐줄게’라는 말을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어떻게 다른 점이 될 수 있냐고 한다면, 댄은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헨리의 경우에는 ‘광기와 엉망이 낭만일 수 있어’라는 말처럼 나탈리의 광기와 엉망 또한 받아들이는 강인함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함 그 주변 어디

 

다이애나는 그동안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들 중 누구도 그녀 자신을 돌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약물과 각종 치료법등을 사용하여 증상을 억누르는 데에만 집중했지 결과에 대해서는 회피하기만 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매든 박사에게 안녕을 고하고는 밖에서 기다리던 나탈리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다. 그동안의 거리감을 한번에 없애지는 못했지만 나탈리 역시도 엄마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평범 같은 건 안 바래.’라고 말한다. 그저 ‘평범함 그 주변 어디 거긴 가보고 싶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탈리는 엄마의 응원을 받으며 헨리가 기다리는 무도회로 간다.

 


게이브(가브리엘)

 

이 극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게이브인데, 그는 환영이면서도 나탈리에게 엄마의 약이 든 가방을 건네주고 인사를 건네는 등 진짜로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게이브가 환영이라고 느끼게 된 계기는, 다이애나가 게이브의 죽음을 받아들인 순간 게이브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게이브는 댄에게 다시 나타난다. 게이브는 ‘내 죽음을 지켜본 건 아빠’, ‘늘 거부하며 고갤 돌렸지만 늘 알았잖아 나란 걸.’이라고 하며 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댄은 결국 게이브의 존재를 인정하며 ‘가브리엘, 내 아들.’하고 말한다. 처음으로 댄이 게이브의 이름을, 그것도 애칭이 아닌 진짜 이름을 말한다는 데에 있어서 이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게이브는 어릴 때의 애칭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름 대신 애칭을 부르는 일이 흔하고, 어릴 때는 더더욱 그러니까. 어릴 때의 애칭으로만 남아있던 존재를 직시한다는 것은 게이브가 다이애나와 살아왔던 16년의 그 모든 시간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인정하고 직시하면서 댄은 자신 또한 아들을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였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극의 마지막 결국 다이애나는 댄을 떠난다. ‘모든 시련 이겨낼 거야’라고 약속하던 과거의 소년을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 것이다. 나탈리와 댄 역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불을 밝힐 것을 약속하며 극이 끝난다.

 

나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싫어하는 편이다. 어찌됐건 삶은 이어져나갈 것이고 그 삶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넥스트 투 노멀’의 결말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이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앞으로도 ‘평범함 그 주변 어디’에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헨리와 나탈리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기보다는 그걸 해결해가는 과정이 계속 될 것임을 암시해준다.

 

 

[정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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