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이 흐르는 슈만의 거실로의 초대 [공연/클래식]

글 입력 2021.10.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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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콘서트.jpg

 

 

 

낭만을 찾아서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테마콘서트>는 2002년부터 매년 꾸준히 이어진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이 클래식 음악을 더욱더 쉽고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된 이 공연은 올해도 지난 10월 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상연되며 관객들과 16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올해 공연은 '슈만의 거실에서'라는 테마로 낭만주의 대표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곡으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하우스 콘서트'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 연주자와 관객이 더욱 친밀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콘서트를 말하며 실제로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관객과 음악으로 가깝게 소통하고자 하는 연주자의 바람이 잘 드러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망(Roman)'은 꿈, 소망, 공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이 아름다운 단어를 품고 있는 '낭만주의(Romanticism)는 원래 18세기 말~19세기 중엽까지 유럽에 나타난 문예사조를 뜻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이성을 중시했던 고전주의에 반대하고 주관적, 개성적, 공상적, 상징적 등의 특성을 보이는 모든 예술을 일컫는다.

 

당시 사람들은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불안과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바람을 꿈과 이상이 있는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여 지친 마음을 해소하고자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낭만파의 음악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색채의 음악을 추구했으며 시적, 회화적, 설화적, 극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감정의 모양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공연은 이런 낭만주의의 핵심인 상상과 감동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다양하고 섬세하게 펼쳐졌다. 우선 연주를 시작하기 전, 내래이션을 통해 슈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해설을 관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슈만의 음악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왔고 특히 프로젝션 맵핑 기법을 사용해 영상의 힘을 빌린 무대는 연주자의 연주에 따라 잔잔한 물결을 품은 호숫가가 되기도 하고, 창밖에 내리는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거실이 되기도 하고, 풍경화 그림 속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데려가기도 하면서 연주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인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등이 '슈만의 거실에서' 모여 자신들의 개성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쳤던 그때 그 공간을 그대로 무대에 재현해냄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슈만의 거실에서'라는 테마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한편,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직접 하우스 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마지막 앵콜곡으로는 '트로이메라이'가 연주됐다. '트로이메라이'의 뜻은 '꿈꾸는 일', '공상'이라는 뜻인데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가 '당신은 때로는 어린아이 같아요'라고 한 말을 곡으로 그린 것이다. 슈만은 이런 아내의 말에 영감을 얻어 이 곡 외에도 30여 개의 곡을 작곡했으며 그중 12곡을 골라 만든 피아노곡집에 <어린이의 정경(情景)>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낭만을 찾아서 떠난 100분간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곡이 어린아이 같은 슈만의 꿈을 노래한 '트로이메라이'라는 게 내게는 더없이 완벽한 낭만이었다.



슈만클라라.jpg

 

 


낭만의 발견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를 물으면 언제나 '슈만(Schumann)'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클래식에 별다른 조예도 없고 지식도 없지만, 살아오면서 들어본 클래식 곡 중 내 귀를 사로잡았던 곡들은 항상 슈만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연주회를 통해 한 번 더 그 취향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사실 이번 공연을 꼭 관람하고 싶었던 단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바로 2번째 연주곡인 '헌정(Widmug)'이 듣고 싶어서였음을 고백한다.


'헌정(Widmug)'.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조금은 특별하다. 정말 우연히 시청하게 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피아니스트 '지용'이 연주한 '헌정(Widmug)'을 듣게 됐는데, 마치 첫눈에 반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 것처럼 이 곡을 사랑하게 됐다. 연주가 끝나고 멍하니 오랜 여운에서 빠져나올 수 없던 그 시간마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용'이 연주한 곡은 작곡가 리스트가 슈만의 가곡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한 것이지만 원곡 못지않은 부드러움과 다이나이믹함이 돋보이며 지용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연주가 큰 울림을 준다.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인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는 슈만이 25살 때, 스승인 비크의 딸이자 9살이나 어린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비크는 둘의 사랑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슈만과 클라라는 1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결국 사랑을 지켜냈다. 마침내 클라라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슈만은 결혼식 전날 프러포즈로 <미르테의 꽃>이라는 가곡집을 클라라에게 선물하는데 <미르테의 꽃>은 은매화를 뜻하고 독일에선 신부의 꽃으로 '순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헌정(Widmug)'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당신은 나의 환희, 나의 고통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

당신은 나의 천국, 나 그 안에서 날으리

당신은 나의 무덤, 나 그 안에 내 근심을 영원히 잠재우리


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

당신은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고귀하게 하네

당신의 시선이 나를 맑게하고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어 올리네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며,

보다 나은 내 자신이네

 

낭만파 음악가 중에서 가장 '낭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 '슈만'이라고 한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헌정(Widmug)'의 부드럽고 풍성한 음들을 따라가다 보면 슈만이 클라라를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나에게 낭만이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곡들을 하염없이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말랑말랑해진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되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렇게 낭만이란 단어조차도 어색해하는 나에게 슈만의 음악이 낭만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낭만 중 슈만이 노래한 '헌신적인 사랑'이 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낭만이기 때문은 아닐까.

 

 

[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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