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1세기의 오페라는 어떤 모습인가 -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오페라는 서양 고전 음악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 입력 2021.10.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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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을 관람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도전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나름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오페라’라는 장르는 내게서 가장 먼 좌표축에 위치하고 있다고 선을 그어 놓았다. 내게 오페라의 이미지는 웅장하고 화려한, 어쩐지 샹들리에가 꼭 달려 있을 것만 같은 극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 온갖 장식이 달린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배우들이 나와 조금은 낡고 고리타분한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접하기 '무서웠다'라는 표현이 어쩌면 더 정확하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오페라의 이미지만으로 나는 오페라를 '값비싸고 어려운 그들만의 전유물'로 구분 짓고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언젠가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여유가 더 생기면' 이라는 안일한 조건을 붙여놓고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자주 접하던 익숙한 문화예술들이 더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한 달에 두번 이상씩은 접할 정도로 애정하는 뮤지컬과의 첫만남도 그러했다. 대극장 기준 10만원이 넘어가는 무시무시한 가격이 무대와 객석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공연에 부합하는 가격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시절이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친구를 따라 접한 첫 뮤지컬은 내게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불꽃 놀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감동을 주고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공연예술의 매력은 저항 없이 넋을 잃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번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포문이 열리고, 여태껏 지나쳤던 것과 달리 관람의 기회를 붙잡았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어쩌면 내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을 새로운 문화예술과의 만남에 더이상 두려워 하고 싶지 않았다. 뮤지컬을 접하지 못한채 사는 나를 상상할 수 없듯, 오페라만이 가진 매력과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나를 상상하고 싶었고 그 바램은 오페라 <배비장전>이었기에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말그대로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뮤지컬



뮤지컬 <배비장전>을 오페라에 대한 지식이 단 하나도 없던 나조차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배비장전>이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새롭게 구성된 창작 오페라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인지 <배비장전>은 평소 즐겨보던 뮤지컬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대 위에 마련된 세트와 배경도 재치 있었고, 무엇보다 노래만 부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배우들은 연기를 겸하며 <배비장전> 속의 스토리를 흥미진진한 호흡으로 이끌고 갔다.


오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얄팍한 편견이 말그대로 ‘낭패’ 수준으로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TPO를 갖춰 정장을 입고 모여들 관객들을 남몰래 예상했지만 모두가 지하철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편한 옷을 입고 공연을 즐기고 있었고, 심지어 그중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 아이들은 <배비장전>을 보며 박수치고 웃으며 즐기고 있었다.


이번 <배비장전> 관람을 통해 나는 일부 고전 음악 애호가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이 순수예술을 대중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재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을 기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오페라 <배비장전>은 재치 넘치고 친숙했으며 중간 중간 오케스트라, 관객과 소통하는 부분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능숙함마저 갖추고 있었다.


이번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의 목표는 ‘친근하고 쉽게 오페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또한 나이와 성별 등 모든 조건을 떠나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중 일부인 창작 오페라 <배비장전>만을 관람하긴 했지만 이 축제의 기획의도와 배려가 너무나 잘 느껴졌고, 나는 공연장을 나서는 길에 축제의 목표가 실현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서양의 전유물에 동양의 색을 끼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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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라 중부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오페라는 서양 음악의 전유물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오페라 <배비장전>이 인상깊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창작 오페라가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복을 입은 배우들이 조선시대를 연상케 하는 배경 속에서 ‘오페라’ 장르를 선보이는 진풍경은 그야말로 모든 고정관념을 깨부수기에 충분했다,


평소 여색을 밝히지만 양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리라’는 신념을 내세워 짐짓 위엄을 보이려는 ‘배비장’과 그런 배비장의 굳은 다짐을 흔들어 보기 위해 배비장을 유혹하는 제주 최고의 미색 ‘애랑’의 이야기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다. 앞서 한껏 잡았던 폼과 위엄은 어디 가고 애랑의 손짓 한번에 무너지며 우스운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배비장의 모습은 양반의 체면과 위선의 양면성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동양적인 품이 진하게 묻어나는 무대 위에서 한복을 차려 입고 마치 조선 시대 캐릭터 그 자체가 된 것만 같은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우러진 <배비장전>은 보고 있는 이로 하여금 ‘오페라’ 장르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배비장전>을 통해 나는 오페라에 가지고 있던 나의 또 다른 편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오페라는 서양 고전 음악 애호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와 나라를 떠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의 한 장르였을 뿐이라는 것을 이번 관람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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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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