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흑과 백, 빛과 어둠 (1) [영화]

영화 <콜드 워>(파벨 파블리코프스키, 2018)
글 입력 2021.10.1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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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질곡이 낳은 슬픈 사랑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연인들은 원치 않는 이별을 겪고,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기약하며 눈물과 함께 돌아선다. 멀어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생각한다. 우리가 평화의 시대를 살았더라면, 전쟁의 열기가 번지지 않는 머나먼 이국에서 태어났다면, 차라리 서로를 모르고 살았더라면... 수많은 만약을 뒤로하고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간다.

 

붉은 바람이 불던 1940년대의 폴란드, 민속 음악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악단에서 처음 만난 남녀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남자는 공산주의 체제의 억압을 견디지 못해 조국을 떠나고, 여자는 생계를 위해 조국에 남는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한파 속에서 두 사람은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결국 10년 만에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 폴란드에서 다시 만난다. 시놉시스로 먼저 접한 <콜드 워>는 그 제목처럼 어디서 많이 본 시대극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은 시대의 한파가 아니었다. 이념과 체제는 분명 두 사람을 물리적으로 떨어뜨려 놓은 외부의 힘이지만, 두 주인공 사이에는 처음부터 커다란 균열이 있었다. 이는 시대극에서 <콜드 워>가 굉장히 독특한 위상을 갖는 이유다. 요컨대 시대가 만들어 낸 절망은 그들의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은 끝없이 어긋나며 뒤틀리는 둘의 사랑이 결국 서로를 집어삼키게 했다.

 


[포맷변환]콜드워 1.jpg


 

영화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4:3의 화면비와 흑백의 화면이다. 이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자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요소다. 정사각형의 화면은 답답한 느낌을 극대화하여 냉전이라는 시대상을 형상화하고, 두 주인공을 프레임에 잡을 때 인물 이외의 요소는 되도록 잡히지 않게 하며 영화의 초점이 온전히 두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영화는 인물을 안정적인 구도로 담지 않고 화면 끝에 걸치게 하여 여백을 남기는데, 이는 인물이 느끼는 답답함과 공허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흑백의 화면은 시각적인 정보를 다소 제한하는 대신, 빛과 사물이 잃어버린 물성을 돌려준다. 감독은 전작 <이다>(2015)에서처럼 흑백의 화면이 지니는 특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강조하려는 요소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흑백의 미학은 세계를 탈색하여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빛과 물이다.

 

작중에서 빛과 어둠은 두 주인공의 ‘다름’을 시각화하는 중요한 영화적 요소다. 작품의 두 주인공 빅토르(토마스 콧)와 줄라(요안나 쿨리크)는 연인이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 영화는 두 사람의 차이를 시각화하는 영화적 요소와 연출로 가득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빛과 어둠의 대비다. 무대 위에서 줄라가 쏟아지는 조명을 받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비추다가, 지휘자로서 무대 아래의 어둠에 모습을 감춘 빅토르를 이어서 보여주는 첫 공연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시종일관 빛과 어둠을 활용한 연출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와 상황을 형상화한다. 예컨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줄라는 빛을 받고, 빅토르는 그림자에 가려지는 장면은 두 사람의 어긋남을 시각화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빅토르가, 밝은 곳에서는 줄라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양상도 흥미롭다. 이처럼 빛과 어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콜드 워>에서 흑백의 화면은 빛의 경로와 형태를 물화(物化)함으로써 심미적이고 짜임새 있는 화면을 구성하는 동시에 장면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물 역시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을 만드는 요소인데, 이 영화에서 물은 빛의 이형태다. 흑백의 세상에서 물은 그저 무형의 흐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물질이다.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금속성을 얻은 물은 물화한 빛을 닮았다. 빅토르와 줄라가 밀회를 즐기는 부분에서 물에 빠진 채 빛에 안겨 있는 줄라의 모습은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를 가장 아름답게 시각화하는 장면인데, 이 한순간을 위해 감독이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흑백의 화면에서 뒤엉키는 빛과 어둠을 통해 이 영화를 읽다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는데, 이는 쏟아지는 빛 아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이 세 번 뿐이며, 그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에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사람이 빅토르인 탓에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주로 줄라가 어두운 곳을 향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그 반대의 상황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빅토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양상은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포맷변환]콜드워 2.jpg


 

- 2편에서 이어집니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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