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코끝에 겨울이 닿는다면,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 [패션]

글 입력 2021.10.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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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향수를 즐겨 쓰는 편이 아니다. 20대 초반에 두어 개 정도는 시도해보긴 했으나 스스로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쓰고 방치해두었다. 평소에는 바디로션을 바르는 것으로 향수를 대신하고 종종 기분 전환을 위해 선물 받은 바디 스프레이 정도를 뿌리는 게 다였다.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던 나였기에 선호하는 향수를 하나라도 선뜻 입에 올리지 않는 나를 보면 주변 이들이 의아해하는 경우가 잦았다.


향수는 개인의 취향이 깊숙이 반영되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후각이 예민하지 않아 향에 한에서는 호불호가 향이 딱히 없었던 나는, 주위에 취향이 확실한 친구들의 향수 이야기만 듣다보니 어느 새 ‘향수 = 취향’ 이라는 어떠한 공식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나만의 향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고, 이것은 꽤 중대한 일이라는 막중한 부담감이 모락모락 피어났기 때문인지 선뜻 특정 향수를 선호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는 향에 한에서 취향이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향수를 뿌린 나를 제외하고도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는 그 향을 맡기 마련이고, 나는 그들이 딱히 호불호를 느끼지 않을만한 향을 사용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다수에게 인정받은 증명된 향이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선택한 게 유명 브랜드들의 향이었다.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힘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협한 시각으로 나의 세계를 축소시키거나 제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존재했다. 나만의 취향을 고수하며 계속해서 비슷한 느낌의 것들만 즐긴다면 내 취향만이 고귀하고 신성하다고 느끼는 고루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불안감은 향수 선택에도 일조했다. 자신만의 향은 그런 시도를 통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잊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향수에 관해서 몰취향이 되었다. 다양한 것들을 접해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던 다짐은 어느새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향을 써야한다는 의무감과 맞물려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알고리즘의 시대에서 이런 몰취향은 위험하다. 시장에 진열된 상품들에게 우리 취향은 도둑맞기 쉬워졌고, 이러다보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떤 것 하나를 선택하는 태도는 우리의 전반적인 삶에 있어 영향을 미친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고 취향을 찾는 것을 더 이상 등한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끝에 겨울이 닿는다면, 머스키 마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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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시의적절하게도 펄스테이의 ‘머스키 마일드’라는 향수를 사용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펄스테이는 1인 조향사 펄스(pers)로부터 설립된, 국내 조향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니치향수 브랜드다. '니치'는 '틈새'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nicchia(니치아)'에서 파생된 말로, '니치 향수'는 극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한마디로 ‘나만의 향’을 원하는 소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니치향수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에는 딥티크, 바이레도, 조말론 등이 있겠다.


 

다채로운 공간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향으로 표현하며, 이야기의 정체성을 다양한 모션으로 전달합니다. ’향기롭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향수로서의 본질을 위해 화려함은 배제하고 미니멀리즘한 구성에 중점을 뒀으며 절제된 무드로 완성된 디자인은 오로지 향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양한 향기들 속에서 자신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향을 선택하는 일. 그것은 진정한 나만의 자유를 찾아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세상에 드러낼 용기가 있는 당신에게 펄스테이는 새로운 자유를 선사합니다.


- 펄스테이 (perfume + stay = perstay) 소개 글 중에서

 


소개 글만으로도 아주 기분 좋은 만남이 예상되는 제품이었다. 다채로운 공간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향으로 표현한다는 시도는 이야기에 죽고 못 사는 나의 깊숙한 본능을 건드렸고, ‘불완전한 인간1’을 담당하고 있지만 세상에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포기할 수 없는 나를 알아봐주는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드러낼 때,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는 향과 함께한다는 건 일종의 보호막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 보호막의 또 다른 이름은 ‘솔직함’이나 ‘당당함’ 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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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키 마일드’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은 겨울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과 구름이었다고 한다. 해는 살짝 넘어가 붉게 물든 하늘, 그런 하늘  빛을 받아 오묘한 주황빛을 내는 구름들이 포근하면서도 따뜻해서 그냥 푹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시향을 해보기 전에 향을 상상해보았다. 폭닥하고 따스한, 부드러운 이불에 돌돌 말려 있는 내 모습이 상상이 됐다.


 

TOP:  mandarin, black currant

MIDDLE: orange flower, jasmine,tuberose

BASE: white musk, vetiver, vanilla

 

‘폭신폭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포근함이 온몸을 감싼다. 노을 빛과 함께 느껴지는 머스크의 맑고 깨끗함.’ 머스크에 대한 느낌은 중독적인 동시에 따뜻함, 달콤함, 분내음 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펄스테이의 시그니처 향수 머스키 마일드는 시트러스 풍미의 머스크 어코드로 이루어져 겨울이 가진 따뜻함과 섬세함을 차별화된 텍스쳐와 깊이감으로 보여줍니다.

 

신선한 만다린과 블랙커런트로 구성된 탑 노트로 깊이 있게 시작됩니다. 곧이어 화이트 로즈 자스민과 튜베로즈가 만개하며, 오렌지 플라워의 향취가 센슈얼한 이미지를 더해줍니다. 베이스는 순수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파우더리 노트와 부드러운 바닐라로 따뜻함을 더해주었고, 촉촉한 느낌의 얼씨한 스모키우드 베티버로 완성됩니다. 인위적인 노트들을 배제한 맑고 청초한 향기가 본연의 살냄새와 어우러져 더욱 자연스러운 나만의 향기가 연출됩니다.

 


실제로 시향해본 향은 처음에는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탑 노트인 만다린 향 덕분에 귤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블랙커런트 향은 다소 생소했기에 찾아보았는데, 쌉싸름하고 성숙한 베리류로 시트러스 향과 플로럴 향이 감돌다가 마지막은 달콤한 향기로 마무리 되는 향이라고 한다. 그동안 향수와 친하지 않아서였는지 속속들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뿌린 직후에는 알코올 향이 강한 향수들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이 향수는 비교적 그 현상이 덜했던 점이 만족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이후 꽃향기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이 스쳐가고, 머스키하고 마일드한 화이트머스크와 바닐라 향이 확실하게 풍겼다.


특히 이 베이스 노트의 향이 너무너무 좋았다. 사실 한 때 독한 머스크 향을 맡고 놀란 기억이 있어서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는데, 중성적이고 고급스러운 머스크 향과 부드럽게 감도는 달큰한 향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시향을 해보고는 “와,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직관적으로 좋은 향이었으며 그럼에도 결코 질리는 향은 아니었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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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누군가의 품에 안긴 것 마냥 마음이 따스하고 편안해졌다. 오묘한 주황빛의 노을이 내 마음까지 따듯하게 물들인 것 같았다. 처음 영감을 받은 소재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향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직업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하고 여유가 생긴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은 향이기도 했다. 한손에는 아메리카노를 들고 힐끔힐끔 손목시계를 보며 바쁘게 미팅장소로 이동하여 해야 할 업무들을 척척 진행해내지만, 퇴근 후에는 자주 가는 바에서 “늘 먹던 걸로 주세요.”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 말이다. 주문한 음료는 까다로운 싱글 몰트 위스키정도 되시겠다.


성숙하며 어느 정도 무게감 있는 향은 분명했으나 편안함과 부드러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향수는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와 인상을 주기 위한 도구이자 격식 있는 자리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편안함을 선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유와 자연스러운 태도는 편안함에서부터 비롯된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 지은 이들을 위로하는 머스키 마일드의 향은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소개 글의 내용처럼 새로운 하루의 시작과 새로운 만남의 앞에서, 몸을 뉘고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에서도 함께하고 싶은 향이었다.

 

 

 

취향과 향수에 대해서



좋아하는 향수를 찾아내는 것에 있어 주춤했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취향에 관한 나의 생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가다보면 취향을 권력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취향만을 고귀하게 여기는 좁은 우물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러나 반대로 취향에는 높낮이가 없다며 지나친 상대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악 차트 탑 100만을 기계적으로 스트리밍 하는 것과 리스너로서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다름없다고 여기는 태도 말이다. 취향을 무 자르듯 높고 낮음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문화예술계에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후자의 경우만을 옹호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고 내버려둔 채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나의 입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도 편중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태도. 소신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에 관해서는 이 균형감각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 대해 아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더 이상 겁내지 않고 미뤄왔던 취향 찾기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향, 손이 자주 가는 옷, 미감을 자아내는 예술작품들… 등등에 대해서. 생각보다 나는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달달한 플로럴 향보다는 화이트 머스크, 우드 향 등의 성숙하고 중성적인 향을 선호했으며 손때가 묻어있는 빈티지 의류들을 사랑했다. 나만의 향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머스키 마일드라는 니치 향수와의 만남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에 대해 더욱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이란 말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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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머스키 마일드는 나와 함께하고 있다. 아침에 뿌린 향이 부드럽게 남아 캄캄한 밤인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 취향의 폭을 넓히고 싶은 시점에서 머스키 마일드를 사용하게 된 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오늘은 부쩍 추워진 날씨에 홀로 산책하며 호젓한 시간을 보냈는데, 머스키 마일드로 한 겹 무장을 하고 나갔더니 외로운 기분이 한결 덜했다. 차가워진 날씨와 어울리는 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끝에 먼저 와버린 차가운 겨울’


어반자카파, 코끝에 겨울

 


이 향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위의 문장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스키 마일드는 시간이 지나도 내가 처음 만난 니치 향수로, 나의 취향의 폭을 넓혀준 향수로, 코끝에 먼저 와버린 차가운 겨울의 향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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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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