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군자불기(君子不器)와 메이슨 자의 연관성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글 입력 2021.10.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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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와 동네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친구가 내뱉은 철학적인 이야기 하나로 우리가 내린 결론이 있다. “철학자들은 참 대단해.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피력할 때, 듣는 우리들은 이해하기 위해 발악하는데, 그들은 그거 자체가 자신의 생각인 거잖아. 그치?”


어렵지만 때로는 복잡해서 책을 덮을 때도 있지만 철학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더 알아가고 싶은 학문이고 철학자들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은 커진다.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을 만났다.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라는 로그 라인을 따라가니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13개의 챕터 속에서 큰 흥미를 잡아 끈 건 2번째 챕터였다. 제목은 ‘투명한 유리병에서 인간의 품성을 찾다’이며 공자와 베버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라고 작은 소제목이 달려있다.


작가가 투명한 유리병을 좋아하는 이유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화려하고 개성 있는 플라스틱 용기가 많아지는 세상에서 투명함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볍게 나부대지 않는 묵직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안에 용기 물에 다 닳아도 허무하게 비어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에 유리병은 특별한 물건이라고 덧붙여 야기한다.


작가가 계속 언급하는 유리병 ‘메이슨 자’부터 알아보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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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떨어진 굴곡진 비율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코카콜라병에 반해 메이슨 자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특유한 디자인이 콜라병의 이목을 끈다면, 그에 반해 메이슨 자는 큰 포인트 없이 정직하고 어딘지 모르게 투박한 생김새를 가졌다.

 

그러나 편집숍이나 소품 매장을 가면 우리나라에서 메이슨 자는 존재감을 뽐낸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지만, 내용물이 투명하게 보이기에 무얼 담아도 감각적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디저트를 담거나, 바닷가에 놀러 갔다 와서 추억으로 남길 모래와 아담한 조개 그리고 바닷물을 살짝 얹어서 가지고 와 이 메이슨 자에 넣어두면 근사한 추억이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완성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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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얘기에 유리병의 서사가 너무 길어 의아할 것 같아 슬슬 리카 반도의 '메이슨 자 / 여름빛 사진'을 들고 왔다. 유리병으로 철학을 대입한다니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매우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고, 또한철학은 예술과도 상당히 공집합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흔히 예술은 보이는 존재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 영감이 생긴다고들 하는데 철학 또한 생각할 수 있는 활용 방면이 무궁무진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 그릇


 

군자불기 君子不器(“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뜻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를 짚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첫째 군자는 무엇이며 둘째 그릇은 무슨 의미이며 셋째는 왜 군자는 그릇이 아니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 후자를 중점으로 미술 속에서 철학이 존재함을 설득 당해야 한다.

 

사람은 마음 씀씀이로 해석되는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되어야 한다. 즉 쉽게 말해 밥공기가 아니라 밥이어야 하며 커피잔이 아니라 커피여야 한다. 즉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담길 콘텐츠가 되라는 말이다. 하나의 콘텐츠가 증발되고 나면 또 다른 콘텐츠로 만들어갈 줄 아는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되라고 공자가 말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빠르게 흘러가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군자가 되기 쉽지 않으며, 군자가 되려면 자신에게 무수히 공을 들어야 한다. 내가 이 유리병, 저 유리병이라는 사회에 짚어 넣어지려면 막힌 곳 없이 두루두루 통해야 한다는 말 아닐까.

 

이처럼 근대화된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관료화된다. 국가의 덩치가 산만해질수록 각 분야가 세분화되기 시작한다. 즉 구역이 생기며, 자기 구역만을 담당하기에 급하다. 관료화가 될수록 전문화가 될 수 있는 장점은 주어지지만 관료제 안에 가려진 어쭙잖은 합리성과 계산적인 호율서 때문에 서서히 부실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우리 모두는 줏대 없이 위에서 날라오는 지시를 받아먹기만 해야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된다.

 

잔인한 말로는 삶의 노예라 말할 수도 있겠다. 잘 정리된 것 같지만 파헤쳐 보면 복잡한 관료제 속에서 사람의 삶은 피폐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계속 갈증이 난다. 주체권이 없으니 영혼이 없어지며 명령만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

 

합리성에 이분법적 주장을 한 베버는 가치 합리성과 목적 합리성이 있다고 한다. 목적만 추구하는 합리성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조직만 잘 굴러가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간은 뒷전이 되는 순간을 말한다. 목적의 합리성만 추구하는 시스템은 인간에게 강렬한 불안감만을 남기며 갑갑한 공기만을 준다.

 

이렇게 선과 경계의 안에서 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는 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쓰임새와 크기가 정해진 것은 군자가 아닌데, 우선 시스템 자체는 인간이 바꿔놓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그릇에 담길 것이며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작가는 이에 해답을 준다. 메이슨 자 유리병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어떻겠냐고 말이다. 보이는 외각선은 있지만 투명한 색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오묘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가리고 싶은 마음, 또는 숨고 싶은 마음들이 교묘하게 움직이는데 이 모든 감정을 그대로 납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빛이 통과되는 유리다. 그래서 세상을 보려는 용기도 다시 생기고,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색은 없지만 투명한 고유의 매력으로 카멜레온처럼 원할 때마다 색이 변할 수 있는 색다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메이슨 자의 유리병처럼 될 수만 있다면 관료화된 사회 안에 살면서 내 마음이 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족한 점은 무엇이 있는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그저 마음 편안히 나를 내가 인정하는 것, 잘하면 잘했다고. 못하면 그래 나 오늘은 조금 부족했구나하며 세상에 자신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군자가 말하는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홍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 부족함을 보여주기 어려운 당신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메이슨 자를 마음에 품고 다니며 세상에 좋은 점만을 쓸어서 담아보라고 소리쳐주고 싶다.

 

활용도도 높고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제자리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투명한 용기, 메이슨 자를 본다면 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오래도록 잘 사용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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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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