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1년, 조금 늦은 중간결산 [사람]

슬럼프가 또 왔다. 이번에도 잘 가.
글 입력 2021.10.1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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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며칠 동안 비가 오더니, 가을이 왔다. 사실 입추가 지난 지는 꽤 됐는데, 이전과 달리 차가운 바람과 일교차가 커진 탓에 정말 가을이 왔구나 체감하는 중이다. 그런데 올해는 살면서 가장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시간 참 빠르다는 얘길 하면, 그렇지. 모두 격하게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고, 내 주변 사람들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다. MK TV 등에 따르면 코로나를 기점으로 현시점의 기업들은 이미 5년 후 분기점에 와있다고 한다. 즉, 코로나로 인해 바뀐 지금의 여러 가지 모습들은 코로나 이전의 5년에서 7년 후 모습이라는 말이다. 발 빠른 기업들은, 코로나 전후로 더욱 빠르게 미래 시나리오를 짜며 위드 코로나 이후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메타버스는 물론이고 ESG, 비대면 커머스와 물류 시장의 확대, 미래 모빌리티의 시작 등 너무나도 급속히, 그리고 전략적으로 바뀌는 세상의 속도가 절대 주관적인 감상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시기 이전까지 살아온 많은 관습과 흐름이 아예 바뀌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 건 제대로 알아챈 것이었다.

 

기업만이 그 변화를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본과 준비된 인재들이 넘치는 기업에 비하면 개인이 바꿀 수 있는, 혹은 바꾼 변화의 폭은 크지 않다. 문제는 실패 확률이 적은 미래 시나리오를 예측하며 그릴 수 있는 기업에 비해, 평범한 개인은 몇 배의 노력을 들여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그려야 한다. 당연히 벅차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입은 업종이 많아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여러 데이터와 언론에 의하면 단군 이래 지금이 가장 돈 벌기 좋은 시기라고 한다. 1인 생산자 시대로, 전자책 판매, 유튜브 콘텐츠 등 플랫폼의 지휘 아래 누구든 원하는 사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고, 자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실제로 자본의 흐름이 얘기해주고 있다. 지난 11일 자 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자산 양극화가 급속도로 심화하고 있는데, 상위 20%가 하위 20%의 35배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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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서두를 이어온 이유는 하나다. 나를 포함한 많은 개인은 변화의 기점에 놓였다. 부의 흐름이 변화하고, 삶의 방식이 이미 코로나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바뀐 지금, 각자의 미래 시나리오를 새롭게 그려야 하는 시기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법은 공부라는 지독한 결론을 말하고 싶어서다. 너무 재미없는 결론이 아니냐고 생각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도 된다. 사실 이렇게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며, 새로운 공부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혼자 뒤늦게 2021년 중간 평가를 했다. 지난해 과로한 탓에 2021년은 번아웃이 크게 왔다. 2021년 상반기 내내 코로나 블루와 번아웃으로 공허와 무기력을 느꼈던 나는 내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이 이제 무기력증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큰 기대를 안고 갔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상태를 제삼자의 눈으로 진단해보자고 결심하고 상담을 받으러 간 것 자체가, 무기력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긴 하지만, 그만큼 외부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약 처방을 하지도 않았고, 상담 치료를 권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는 심리검사를 권할 뿐이었고, 비용을 들여 심리검사를 했음에도 내 무기력의 원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선생님의 실력이 원인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아주 친절했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나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과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야 그에 맞는 분석이 가능했을 텐데, 솔직하게 내보이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생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나니, 이젠 정말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구나, 정신이 들었다.

 

이후로 시간을 갖고 일기도 쓰고, 명상도 하고,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에 조언도 찾아보고,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자 관련 아티클도 많이 찾아봤다. 납득이 가능한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서 나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졌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며 일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라던가, 코로나로 오랜 시간 혼자 있는 상황이 길어졌기 때문이라던가, 복합적인 이유가 한둘씩 보였다.

 

이유를 찾아갈 수록 무언가를 배우길 귀찮아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기력은, 새로운 세상에 대해 관심을 두고 배워가려는 의지를 가져갔다. 공부란 거창한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관심 있는 분야의 새로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같은 업종 종사자의 강연을 듣는 것도, 페이스북에서 기사를 접하는 것도, 안 가본 카페에 가서 새로운 향을 경험하는 것도 모두 공부가 될 수 있었다. 무기력함은 관심마저 가져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늘 하던 생각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과 변화들로 나를 채웠다. 책도 열심히 읽었다.

 

무엇보다, 균형이 깨져버린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일상 속 작은 새로움을 계속 주입하는 만큼, 배우는 시간,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순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하기 싫다, 무기력하다는 생각을 언제까지고 가져갈 수는 없었다. 챌린저스도 도전해보고, 운동 시간도 일정하게 맞추고, 일과 관련된 아티클을 찾아보는 시간도 꼭 지키려고 했다.

 

 

세바시, '리추얼' 강연

 


일종의 생존 본능이 발동해 조금씩 다시 새로운 것을 접하고, 세상의 소식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다 보니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다니,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고 있다니!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다간 현실과 동떨어지기 십상이겠구나! 뒤처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동안 배움을 잊은 건가, 나 자신이 낯설었다. 이러다 배움을 귀찮아하며 바뀌기를 거부하는 꼰대가 되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교까지 학업을 마치고 보니 직장이나 사회인이 되어서는 그 무엇도 나를 강제로 꾸준히 많은 시간을 들여 교육하지 않는다. 즉 스스로 무언가를 새롭게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혹은 이직, 이사 등 계속 환경을 바꾸며 자신을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던져넣지 않고서야 자연스럽게 새로운 분야나 관심사에 지속해서 노출될 확률이 줄어든다. 문제는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지속해서 배우지 않으면 삶에 권태가 오기 십상인데, 강제하는 교육이 없으면 배움의 필요 자체를 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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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1년 중간 평가를 끝내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상황일 때 제일 나다운지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문득 상담사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면서 실험해보는 거예요, 어떤 방법이 제일 잘 맞는지는 살아보고 느끼면서 아는 거예요.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어요.


하반기가 3개월도 채 안 남았지만, 뭘 배워볼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설렌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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