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고 보면 첫인상과 정반대인 미술과 철학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도서]

글 입력 2021.10.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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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미술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철학이라는 집에 불을 밝혀주는 책이다. 저자 이진민이 그 집에서 하려는 것은 '놀이'다. 어떤 그림에 철학적 해석을 정답처럼 붙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도구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실컷 펼쳐볼 수 있는 놀이.

 

- 책 소개 중에서

 

 

사실 철학과 미술의 관계는 매우 가깝고 친밀하다. 애초에 둘 모두 인간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학문이니,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야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철학과 미술이 뭉쳤다고 하면, '어려운 것 + 어려운 것 = 더 어려운 것'이라는 공식이 번뜩 떠오를지도 모른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이 두 학문으로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 방법을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미술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려 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저자의 문체에 녹아내리기 일쑤였다. 장난기 가득 담긴 어투로 작품에서 읽어낸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모순적이게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참 가벼우면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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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에스코페Jose Escofet, <사과나무와 크로커스Apple Tree with Crocuses>, 1996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과생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홉스와 로크의 자연 상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자연 상태를 설명한다. 우선 홉스는 모든 인간이 신체와 정신 능력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홉스의 용어로 '능력의 평등equality of ability'이라고 한다. (p. 78)

 

이러한 상태에서는 모두의 능력이 비슷하니 한정된 재화를 서로 차지하려 들 것이다. 즉 홉스의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신체와 정신 능력이 평등하기에, 내가 잘만 하면 저 사람을 이기고 눈앞의 재화를 혼자 차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평등으로 인한 불신이 가득해져,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니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이처럼 홉스의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기에, 사회계약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굉장히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걸려 있지만, 검게 칠한 배경에서 왠지 모를 공포가 느껴지는 <사과나무와 크로커스>를 보면 홉스의 자연 상태가 생각난다고 한다.

 

까딱하면 재화를 가지기도 전에 모두 죽게 생긴 상황에서 홉스는 힘센 심판 한 명을 뽑아서, 우리 모두 당신 말을 들을 테니 아무도 죽지 않도록 싸움을 중재해달라고 부탁한다. (p. 84) 즉 각자 가진 사적 판단의 권리를 절대적 힘과 권위를 가진 국가 '리바이어던'에게 양도하여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 홉스의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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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시에라크Tom Sierak, <빨간 모자Little Red>, 1994

 

 

반면 로크는 《시민정부론》에서 홉스보다 훨씬 평화로운 자연 상태를 설명한다. 그의 자연 상태는 톰 시에라크의 <빨간 모자>에서처럼 내가 아무리 사과를 따 먹어도, 다른 사람들 몫의 사과가 충분히 남는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홉스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혹시 내 몫의 재화가 남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홉스와 달리 로크의 자연 상태에서는 꼭 정치공동체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사회계약을 맺는 이유는 꽤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개 평화로운 상태이긴 하나, 인간들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종종 사과나무에 불을 확 질러버리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크의 인간들은 자의적으로 행하던 처벌권을 넘기고 정부가 공정하게 소유권, 즉 생명과 신체와 재산을 보호할 수 있게 집행능력을 주기로 하는 계약을 맺는다. (p. 86)

 

*

 

그렇다면 왜 홉스와 로크가 그리는 자연 상태의 모습은 이리도 다른 것일까. 우선 두 철학자가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홉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은 늘 불안하다. 예를 들면, '내가 오늘은 사과를 먹고 싶은 만큼 먹었지만, 과연 내일도 그렇게 먹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욕망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존재이기에, 아무리 재화를 충분히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에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재화의 양이 충분하더라도, 재화를 더 가지기 위해 서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다. 이에 반해, 로크는 <빨간 모자>에 그려진 것처럼 세상은 풍요롭다고 믿었다.

 

두 번째 차이는 홉스와 로크가 생각하는 자연법 개념의 차이에 있다. (p. 82) 홉스에게는 '자기 자신의 보존self-preservation'이 최고의 법칙이다. 즉 나를 보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재화를 가지기 위해 남을 공격하든 남이 얻은 재화를 홀랑 빼앗든 별문제가 없다.

 

반면 로크는 자신을 열심히 지키되, 가능하다면 타인의 삶도 지켜야 한다고 본다. 특히 로크는 타인의 소유권에는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들판에 굴러다니는 사과를 내가 열심히 주워왔다면 그때부터 그 사과는 나의 사적 소유물이 되기에 타인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정답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울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다. [...] 엉뚱해도 좋고 발칙해도 좋고 틀려도 좋은 이러한 생각의 꼬리들이 이어지는 것 자체가 철학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 책 소개 중에서

 

 

이처럼 저자는 조금 색다른 눈빛으로 그림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해석한다. 책 소개 글에 적힌 것처럼, 그림을 읽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작가는 왜 이 주제를 택한 것일까, 이 색은 여기 왜 쓴 걸까, 작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물을 그린 것일까. 이 그림을 보면 왠지 슬퍼, 기뻐, 혹은 마음이 울렁이는 것 같아.

 

그림에서 어떤 것을 읽어내든, 그 그림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든 그림을 보는 것은 그저 정답 없는 놀이일 뿐이다. '자연 상태'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한 홉스와 로크처럼, 철학과 미술은 100명이 같은 걸 보아도 100개의 다른 생각이 나오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다.

 

같은 걸 보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곳은 너무 재미없는 세상이지 않을까. 그러니 두려움은 접어두고 그저 재미난 놀이를 했으면 한다. 초면에는 다가가기 조금 어려워도, 친해지기 시작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친구들이 바로 미술과 철학이니 말이다.


다정한철학자의미술관이용법_표지_평면.jpg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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