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이름

1. 법적 이름들에 관하여
글 입력 2021.10.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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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복제 불가, 1937, 캔버스에 유채,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소장

 

 

1. 법적 이름들에 관하여

 

 

이름을 바꿨다. 그때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은 꽤 많이 살아보고—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전의 내가 낯설다. 그 전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인데 어쩐지 다른 이름을 써 붙이고 있는 나는 멀리 있는 존재같이 느껴지고, 옛 이름을 부를 때면 모래알이 입안에서 싸그락거리며 씹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맴돈다. 옛날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종종 일어나는데, 꼭 처음 몇 번은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촉촉하고 뜨듯한 기분에 젖어 과거를 추억하게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은 나를 유림으로, 고등학교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미교로 기억할 것이다. 바람이 서늘하게 벽에 부딪히는 계절, 그러나 마트 앞 파라솔 밑에 앉아 컵라면을 먹기엔 춥지 않았던 즈음의 열일곱. 비장하게 꺼낸 말을 친구들은 기꺼워했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름을 좋아하게 된 건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독특한 이름이라 특별한 것이라 그랬다. 희소한 것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긴 것도 그즈음이었으니 이와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름을 특별하다고 긍정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새 이름이 가진 무자비한 낯섦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되었다. 거꾸로 그 이름에 자아가 흡수당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나는 첫 번째로 본 개명인改名人일 것이다. 그런 종류의 처음으로 기억되는 건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람들에게 새 이름을 자주 불러 달라고 말했다.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탓이었다. 새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지, 헌 이름을 자꾸 부르면 좋지 않다고 말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된 바 없으나 결과적으로 엄마의 당부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새 이름은 옛 이름을 밀어내고 아주 빠른 속도로 자리를 독점했다. 물론 거기엔 유림이라고 부를 땐 대답하지 않고 미교라고 불러야 대꾸를 했던, 깐깐하고 대쪽 같은 열일곱의 기여가 컸다. 새 적응이 빠르게 이뤄진 덕분에, 급기야는 유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이젠 네가 유림 같지 않고 미교 같댔다. 그건 무얼까. 무슨 의미였을까. 유림과 미교는 무엇이 달랐을까. 나는 비로소 나의 진짜 이름을 찾은 것이었을까? 두 이름으로 살아 보았어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그 시절 나는 아이들의 말을 쉼 없이 교정했다. 왜 그리도 열심히 열일곱 전의 나를 지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유림은 틀린 것이고 미교가 정답인 것처럼 굴었다. 종래에는 내가 내 이름이 낯설 지경이 되었다. 어떤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발음하다 보면 순간 단어가 아주 낯설어지는 지점에 이른다. 원래도 낯선 단어가 그렇게 더 낯설어질 때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나를 대표하게 된 단어의 뜻을 되새김질하곤 했다. 특이하게도 이름 석 자에 담긴 뜻이 모두 같은 탓에,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는 뜻이 되었던 까닭이다.

 

높고 높고 높다. 가장 높은 사람이 되라는 뜻. 불식간에 다소 건방지고 도발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실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빛을 잃을지도 모르는 옥보다는, 높은 곳에서 걷고 뛰고 또 나는 삶을 소유하고 싶었다. 높은 곳의 차가운 공기로 몸을 채워 내 심장과 호흡의 신선도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도록. 젊음과 청명함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새 이름에 달콤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미교가 된 이후 나는 바뀌었다고 느낀다. 타고난 성질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껍데기가 몸에 꼭 맞게 조여진 듯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들의 좁고 단조로운 세계에서는 조그만 일들도 덩치가 커지기 마련인데, 보기 드물게 이름을 바꾼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호기심 어린 눈길로 다가와 말을 거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알게 되었다. 원래도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바깥 궤도를 더 활발히 타게 되면서 사람이 더 밝아졌다.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후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펴지고 터지기 시작했다. 열일곱과 열여덟 사이에 거칠게 핸들을 꺾고, 온점을 찍고 다시 새로운 문단을 시작했다.

 

이름에는 정말 힘이 있나. 아무래도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을 바꾸다 결국에는 바뀐 나를 마주하게 한다. 나는 내 이름의 모양 그대로 살아가게 되었다. 유림에서 미교가 된 것처럼, 직선으로 이뤄진 활자가 주는 인상처럼 더 단단하고 더 단순하게 지금까지 흘러왔음을 느낀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의 이름을 불러준 이들로 인해 나는 진짜 내가 되었다. 새것은 언제나 흥미롭고, 두 개는 풍요를 뜻한다. 그렇게 내 삶은 흥미롭고 풍요로워졌다.

 

바뀐 내 이름이 좋다. 옛 이름은 어린 시절의 곰 인형처럼 애틋하다.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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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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