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계를 지우고 내 안으로 - 예술가의 일

<예술가의 일>을 읽고
글 입력 2021.09.30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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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직업이 예술가인 삶. 그러한 예술가의 일상과 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과정을 담아낸 작가의 일차원적인 3년간의 기록연장선이다. 표면에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을 보며 그의 생의 단편이 궁금했다.

 

내가 알고 있는 데이비드 보위의 대표적인 일화는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히트곡 ‘my way’의 원곡의 노래 가삿말을 원래는 그가 작사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작자에 거절당한 가삿말은 쓰레기로 직행했고, 그 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my way’ 곡의 가사를 들은 뒤 악평을 쏟아냈다는 일화다. 어린 나이의 치기에서 이유 없는 악평을 했던 그는 후에, 지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그의 콘서트 마지막 곡으로 ‘my way’를 열창하며 멋지게 퇴장한다.

 

천재이면서도 괴짜인, 데이비드 보위의 특유의 제스처와 스타일은 그 시대의 화려함 속에서도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속이 텅 빈듯한 젊은이들의 응어리 같은 마음의 짐을 풀어헤치기 좋은 비상구 같은 매체 그 자체인듯하다. 깡마른 체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을 드러내며 내가 하는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밀어붙이는 강단 있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하는 또 하나의 전유물이다.

 

처음부터 이 표지에 끌린 것도 나는 데이비드 보위 때문이었고, 맨 앞장의 목차를 마치 오프닝처럼 열어주는 그의 일화가 나는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예술가는 무용가 피나 바우슈이다. 예전 영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녀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로 춤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천재 무용가이기도 한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들여다보고 탐구하고 헤아려보고 공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가들은 한 마디 한 마디에도 심오하고 깊은 뜻이 담겨있다. 가슴속 어딘가에 빼곡히 쌓아 놓아야 할 것만 같은 좋은 이야기가 많다.

 

일하면서도 줄곧 내가 생각하고 해오는 일 중 하나이다. 하나의 제품을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 기존의 데이터를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기존의 사양들을 보완해서 더 좋은 제품을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인 과정들이다. 예술가로 분리되는 그들이지만, 이렇듯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같은 생각과 행동들로 삶을 꾸려나가며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이 특별히 더 좋았던 점은 그들의 삶을 인물사처럼 나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을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 그가 속한 장르에 따라 분리한 것이 아닌, 예술가들이 어떠한 태도로 자신의 삶을 갈아갔는지에 따라 여러 개의 챕터로 나누어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 건축, 음악, 무용, 영화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거장이라 불릴 만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33인에 대한 인생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밀고 나간 예술가들, 고독과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오로지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이라는 족쇄에 가둬버린 치열한 삶을 살다간 예술가, 세간의 편견에 자신의 재능으로 맞선 예술가들을 통해 그들이 삶에 대한 태도를 어떠한 식으로 취해왔는지를 곰곰이 곱씹으며 한장 한장 읽어 나가기 좋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각각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고 값지다. 또한, 훌륭한 기질은 반드시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나’의 재능을 발견하기가 물론 쉽지는 않지만, 요즘의 많은 사람이 그저 되는대로 무의미하게 살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요즘의 2030 세대에는 ‘벼락거지’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월급은 그대로이나, 말도 안되게 올라버린 물가에 상대적 박탈감으로 삶에 유의미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뉴스의 일부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러한 그들이 한번쯤은 언제고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의 요즘 시대이기는 하다. 하지만, 마음이 텅 빈 채 무의미 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나’를 잘 갈고 닦아서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삶 안에서 예술가이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식상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상투적인 문장을 피해서 '예술가의 일'을 설명하려니 그게 또 쉽지 않습니다. 예술가들 역시 제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고독하게 일했고, 누군가는 시끌벅적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의 결과물은 결국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 유산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 p6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어, 단 하루만이라도(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라는 가사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루한 삶을 어루만지는 이 메시지 속에서 관중은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다. 추모제보다는 축제였다. 지구에 찬란한 기운을 선물하고 저 먼 곳으로 떠난 영웅에게 건네는 아름다운 작별 인사였다. - p23

 

"대부분의 사람은 외상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기형인들은 외상과 함께 태어난다. 그들은 이미 삶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귀족이다." - p41
 
시력이 극도로 나빠져서 그림을 포기해야 했지만,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 대신 도자기를 빚으며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오키프는 구도의 길을 걸었고, 스스로 구원을 얻었다. - p81
 
위대한 몰입으로 가득했던 천재 예술가의 삶이 주는 전율은 그가 남긴 거대하고 화려한 건출물만큼이나 성스럽다. - p123
 
인생의 한겨울에서 “봄을 믿어야 해요”라고 말한 빌 에번스의 마음을 쉬이 헤어리긴 어렵다. 영혼마저 소진된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한 조각의 평화는 아마도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했던 봄날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 p157
 
페기는 예술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았다. 잭슨 폴록 작품 수십점을 기부한 페기는 “세상에 즐거움을 줬으면 됐지”라고 쿨하게 말했다. - p20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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