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퀴어'한 화가들의 얘기 - 퀴어리즘 [도서]

글 입력 2021.09.22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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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무엇인가? 조각, 건축, 그림, 글과 같은 형태를 지나 오늘날의 기술적 진보를 활용한 비디오 아트, 애니메이션, 게임까지 예술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 왔다. 예술가들은 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번번이 그들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예술은 멈추지 않고 진화했고, 그 정의와 경계는 점차 모호해졌다.


하지만 초기 예술부터 현대 예술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 감정, 상상, 어떤 형태든 예술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심지어는 ‘이 작품에는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는 것조차 이야기다. 그러니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술가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단순히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고스란히 내보여,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책 <퀴어리즘>의 주제 역시 큰 어려움 없이 납득할 수 있다. 자아를 확립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끝없는 혼란과 고찰을 불러왔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은 또 무언가. 현실과의 괴리, 사회로부터 거부당하는 경험은 그 고민을 한층 깊게 만들었을 것이다.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사람은 자연히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책에서 밝힌 것처럼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의 최고가로 선정된 22인의 예술가 중 무려 9명이 퀴어라는 사실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거라면, 퀴어만이 이렇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일까? 왜 퀴어 미술가들이 하는 말은 우리에게 생소한 자극을 줄까?

 

 
‘위대한 작가가 남긴 하나의 작품은 자신의 인생을 함축해서 담은 한 편의 시이자 음악이다. 호크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공유한 회화의 세계를 펼쳐 왔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호크니 회화 코드의 핵심인 ‘동성애 코드’이다. 그의 예술적 발자취는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서사시적 과정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었고, 호크니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예술의 원천적 힘이었다.’
 


<퀴어리즘>은 퀴어 화가들의 이야기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매혹했는지에 집중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본질,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자연히 이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퀴어의 시각을 거친 의문은 작품에 독특한 궤적을 남긴다. 작가는 이 궤적을 따라가며 화가들이 살아낸 ‘퀴어로서의 삶’과 작품의 상관관계를 밝혀낸다.


세상에는 수많은 고백이 존재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만큼 큰 위력을 지닌 것은 없다. 내가 어떻게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는지, 그래서 나의 삶은 어떤 형태를 지니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불특정 다수에게 내던진다는 점에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예술가, 화가들이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개인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가 곧 인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성염색체를 지니고 특정 성별로 태어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삶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우리는 그것을 학습하며 성년이 된다. 시스 젠더, 헤테로 섹슈얼이라면 기존의 사회 규범과 분위기를 수용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필연적으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찾아온다. 나는 왜 이토록 다른 것을 느끼는지,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10인의 퀴어 예술가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을 택하긴 했지만, 결국 자신이 퀴어임을 드러내거나 암시했다. 나를 탐구하고, 세상을 탐구해야 하는 예술가들로서는 당연한 순리였으며,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렇듯 책의 주제 자체가 가진 흥미로움이 처음 내 시선을 끄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더 깊고 복잡한 이야기로 이어졌다는 점은 매우 인상 깊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책 곳곳에 등장한 작가의 시선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래도 이해가 안 간다면 그 사람은 ‘미술 포기자’가 아니라 ‘미술 포비아’인 거죠. 그분들은 그냥 죽는 날까지 예술과는 담을 쌓고 사시는 게 속 편합니다. 미술품을 보는 것보다 먹방 유튜브를 한 번 더 보는 게 더 행복한 거니까요.’ -148p


‘미술이 사치가 된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시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연예인을 신적인 존재로 추앙하며 유튜브 먹방에서 고기 씹는 소리를 들으며 한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허무한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246p

 

 

나는 유튜브 ‘먹방’과 같은 가벼운 콘텐츠에서 찾는 쾌락과 예술을 향유하며 얻는 쾌락이 다르기 때문에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 작품을 통해 느끼는 쾌락의 질이 가벼운 콘텐츠를 소비하며 얻는 쾌락보다 더 좋을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방'을 보는 대중을 '미술 포비아'나 '허무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특히 이렇게 가볍게 쓰인 책을 읽을 만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면 더욱더 그렇다.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더 나은 표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퀴어와 미술사의 색다른 만남을 담은 이 책은 분명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퀴어’함을 결점이 아니라 누군가가 예술적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꼭 가져야만 했던 요소로 보는 이 시선 자체가 큰 위로로 다가왔다. 성 소수자 뿐만 아니라 모든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은 무의미한 폭력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읽기 쉽게 쓰인 미술책이다. 유명한 화가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방향성이 마지막까지 책을 힘있게 유지한다. 인문학과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 ‘퀴어’함에 대한 고민을 품어본 사람 모두에게 책 <퀴어리즘>을 추천한다.

 

 

퀴어리즘.jpg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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