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디지털 그래픽 종합 세트 - 용과 주근깨 공주

글 입력 2021.09.20 22: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10905215121_cswxkhac.jpg

 

 

 

메타버스의 BELL


 

요즘 `옛날 30대와 요즘 30대`를 비교한 짤이 돌아다닌다. 나는 현대인이 더는 늙지 않게 된 이유가 통신 기술의 발달에 있다고 분석한다. 이 문장이 기술 발달로 인해 성숙함과 진지함을 배우지 못했다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사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술은 개개인의 정신세계를 넓히는 데 일조했다. 익명성은 모든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개방성과 창의성의 폭을 넓혔고, 개개인은 폭넓은 경험을 통해 더 민감하고 특이한 개성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현실적인 구분이 아닌 커뮤니티와 관념을 중심으로 집단이 형성된다. 가상 세계에서 개인은 절대 고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개인들은 인터넷 세계에서 늙지 않는다.


이런 디지털 공간의 역동성으로 인해 커뮤니티 사용 경험과 다양한 커뮤니티 의식이 모인 개개인의 정체성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대인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인터넷 기술이 되면서,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가상공간을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메타버스`, `MZ세대`와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오늘 리뷰할 작품 <용과 주근깨 공주>도 그러한 흐름 중 하나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디지털 공간에서의 만남을 통해 두 청소년이 성장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디즈니의 `야수와 미녀`를 재해석하며, 이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디지털 공간은 성장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디지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직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의 갖는 의의는 크다.


이처럼 이 작품의 주요 키워드는 -아직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메타버스`, `성장`으로 꼽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여주인공의 설정과 더불어 화려한 그래픽과 음향 효과를 활용하여 관객의 오락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식으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하지만 후자는 스토리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스토리 전개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은데, 매우 합당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이 작품을 비슷하게 분석한다. 배경 소재는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정작 그 배경 소재를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겨야 하는 스토리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호소다 마모루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표현이 미흡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쇼` 자체는 완벽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호소다 마모루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가상 세계를 오가면서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통`이라기보다, 그러한 성장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가상공간` 자체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같은 담담한 성장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이 작품의 전개가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워게임`처럼 가상공간의 화려한 그래픽을 기대했다면, 이 작품은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다.

 

 

03.jpg


 

 

디지털 세계의 스펙터클


 

이 작품은 가상 세계가 보여줄 수 있는 환상적인 장면 장면으로 엮여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메라 구도와 호소다 마모루 그림 스타일, 각 세계의 표현 방식이다. 우선 현실 세계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이전 작품에 볼 수 있었던 카메라 워크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에서는 이전 작품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연상되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강가를 거니는 소년 소녀의 모습을 줌인하는 장면은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장면뿐만 아니라, 한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줄 때도 비슷한 연출이 사용되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는 마코토의 성장을 보여주기 위해 마무리 즈음 치아키의 조언을 들어 공을 던진 다음 마코토를 중심으로 두고 하늘을 보여주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통틀어 성장하는 장면에서 비슷한 구도를 사용한다.


또 이번 작품에서도 흔히 기대하는 호소다 마모루식의 작풍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음영을 넣지 않아 좀 더 세부적으로 묘사한 배경에서 인물이 좀 더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움직임 묘사와 특유의 표정 연출을 통해 각 인물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전 작품과 비교해서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식이 다소 억지스러운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호소다 마모루 작품의 매력 중 하나가 각 인물의 감정표현을 담담하게 표현하다 적절한 때에 잘 터뜨리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담아내려는 메시지의 방대함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행동과 심리묘사가 다소 과장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에서는 비 오는 거리를 달리다 넘어지거나, 수상한 컴퓨터에 둘러싸인 여고생이 조력자로 등장하거나, 여고생의 패기에 주춤거리는 나쁜 어른이 등장한다. 종합해보자면, `용과 주근깨 소녀`에서는 호소다 마모루식의 익숙한 구도와 연출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캐릭터들이 표현되는 방식은 이전과 비교해 다소 과장된 감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큰 노력을 들인 부분은 `현실 세계`자체보다는 `디지털 세계`에 있다. 이 작품은 디지털 세계에서 연출할 수 있는 몽환적이고 화려한 그래픽을 묶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 세계가 이전 작품과 비슷하게 연출되었다면, 디지털 세계에서는 오늘날 버츄얼 유튜버가 자주 사용하는 3D 모델링을 기반으로 화려한 장면을 연출한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좀 더 역동적으로 카메라를 움직인다. 인물 자체보다는 화려한 배경을 노출할 수 있는 전체적인 구도를 드러낸 장면들이 많았다. 작품은 미녀와 야수에서 영감을 받은 거대한 성, 디지털 세계의 거리, 거대한 돔 형태의 무대 장치 등 다양한 배경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에게 `가상 세계 아이돌`이라는 역할을 준 것도 이러한 화려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추측한다.


이처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가수인 주인공이 보여주는 `쇼` 자체에 있다. 주인공은 작중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양한 배경에서 여러 옷을 갈아입는다. 이 글을 쓰는 나의 부족한 영상 지식으로 인해 어떤 정확한 분석은 할 수 없지만, 작품은 관객들에게 충분한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작품 중간마다 끼워 넣어진 음악의 질은 더할 나위 없다.


 

01.jpg


 

 

너무 평평한 캐릭터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극장을 나오는 내내 어떤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마 내가 호소다 마모루의 이전 작품들을 감상해온 입장에서 어떤 기대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로서는 계속 이전 작품을 불러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강조점은 다를지언정 2021년의 마코토와 치아키의 이야기라고 분석한다.


이전 작품에서 그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청소년기의 성장을 끌어내는 것이 과거가 아닌 `지금`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는 디지털 세계를 또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 공간으로 묘사한다. 작품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문장 중에 `가상 세계에서는 당신-이나 과거-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처럼 호소다 마모루는 인터넷 공간이 상처받고 숨겨왔던 것들을 표출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바라본다. 아마 이 점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시점과 현대사회에서 달라진 것이고, 현대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일단 스토리 면에서 이 작품은 과한 욕심을 부렸다. 우선 작품의 중심 소재는 그 제목에서 드러낸 바와 같이 `용과 주근깨 소녀`의 만남이다. 이 둘은 각각 현실에서 얻은 상처와 상실로 인해 고통받고, 가상 세계에서 해소하길 바란다. 소년 소녀는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마침내 현실에서 마주하고 성장하게 된다.


이를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의 상징을 빌려와 표현한 것은 적절했다. 사실 이 둘의 캐릭터성 자체는 잘 구축된 편이다. 야수는 현실에서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동으로,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가상 세계에서 남을 상처입히고 다닌다. 주인공은 흐릿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상 세계에서 인정받는 인물로, 현실에서 부르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고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는 가상 세계 활동을 즐긴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사랑으로 인해 야수가 왕자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용은 현실 사람이 되어 그녀를 만난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 한술 더 떠 `디지털 가수`, `구원`이라는 키워드 끼워 넣었다. 전자는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적절할 뿐만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는 영화의 흥행과 직결되는 흥행 키워드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스펙터클을 위해서였는지, 흥행을 위해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리수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노래는 마지막 엔딩을 장식할 정도로 중심 소재가 되지만, 정작 주인공과 노래의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노래의 관계를 드러낸 것은 초반 몇 분이 전부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노래를 함께 즐겼던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강가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말렸음에도 강가에 뛰어든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을 어머니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아이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이후에도 계속 드러난 것도 아니고, 어머니와 노래의 관계가 잘 엮인 것도 아니다. 나중에는 주인공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뿌리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 연결망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두 인물의 행동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순수한 선의로 인해 어린아이를 구하려 했지만, 주인공은 상처받은 이를 공감하는 마음에 야수를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야수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 이해가 가지 않을 만 했다. 정작 그 장면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힘을 잃고 말았다.


세계관의 허술함이나 주변 인물의 부족한 서사도 한몫한다. 우선 이 작품에서는 나름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배경으로 했다. 현실적인 모습이나 상처가 아바타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사용자의 데이터가 게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거나, 사용자를 드러내는 무기에 스폰서가 있는 등 매력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하지만 정작 용이 사는 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장미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AI가 있는지에 대한 이해할만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주연 캐릭터의 캐릭터성을 제외하고는 캐릭터가 평면적인 것도 아쉽다.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천재 소녀`, `나를 도와주는 소꿉친구` 등으로 분량을 크게 주지 않기 위해서 직관적으로 피상적으로 묘사된다. 조력자 캐릭터가 평면적이니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얼렁뚱땅 전개되며,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거의 한 뭉치처럼 묘사된다. 개인적으로는 카누를 열정적으로 타는 캐릭터나 소꿉친구 캐릭터는 그 자체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많았음에도 조력자 역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결과적으로 조연 캐릭터 중 그 누구도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조력자보다 악역 캐릭터가 미흡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악역 캐릭터는 철저한 악역 캐릭터로만 묘사된다. 첫 번째 빌런인 사이버 경찰대는 행동 방침이 설득력 없었고, 몰락하는 과정 자체도 공감이 잘되지 않는다. 이는 마지막 빌런인 야수의 아버지에도 적용된다. 애당초 카메라를 킨 상황에서 아동학대가 벌어지는 상황 자체도 기묘하고, 처음 보는 여자아이에게 겁을 먹고 달아난 것도 기묘하다. 이런 무리수들이 반복되고 나니 이야기의 개연성은 말이 안되는 수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용과 주근깨 공주`는 민트초코 파인애플 피자 같다. 각 소재는 매력 있고, 일반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는 키워드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한데 모아 다 섞어 만드니 과해도 너무 과해졌다. 이 작품의 반만 덜어도, 하다못해 `파인애플 피자`까지만 되었어도 스펙터클을 제공하면서 스토리적 완결성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스펙터클은 놀라웠다. 하지만 영상물의 유희적 목표 중 하나가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라는 점임을 고려할 때,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20210905214444_rgnyvwvo.jpg

 

 

[이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