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오직 비올라: 포 비올라(Four Violas)

글 입력 2021.09.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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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포비올라.jpg

 

 

추석을 코앞에 두고 맞은 주말. 이번 추석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라 주말을 끼면 꽤 긴 연휴가 완성되는 명절이다. 그래서인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명절에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 것도 미뤄두고 서울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지난 9월 18일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포 비올라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명절연휴는 서울에서 보낼 것을 이전부터 다짐하고 있었다.


현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비올라에 처음부터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 그저 큰 흐름을 쫓아가기도 바빴기 때문에 개별 악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각 악기의 매력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실내악 작품들을 듣기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존에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바이올린이나 첼로와는 또 다르게 비올라가 매력적인 악기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안정적인 음역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비올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비올라를 연주하는 뛰어난 4명의 연주자가 모여, 오로지 비올라만으로 선보이는 무대가 있다니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네 비올리스트 모두 개개인의 연주 실력 역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실내악에 대한 이해가 깊은 연주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주는 귀한 비올라 앙상블의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PROGRAM


바흐: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J. S. Bach: Partita No.2 in d minor for 4 Violas, BWV1004, V. Chaconne


녹스: 비올라 스페이스 듀오 4번 ‘9개의 손가락’

G. Knox: Viola Spaces Duos No.4, Nine Fingers (Pizzicato)  

Va. 김규현 이승원


브리지: 두대의 비올라를 위한 비가

F. Bridge: Lament for 2 Violas  

Va. 김세준 문서현


바인치엘: 네대의 비올라를 위한 야상곡

M. v. Weinzierl: Nachtstuck for 4 Violas, Op.34


-Intermission-


퍼셀: 네 대의 비올라를 위한 환상곡 제10번

H. Purcell: Fantasia à 4, for 4 viols #10


녹스: 마랭 마레의 ‘스페인풍의 라폴리아’에 의한 변주곡

G. Knox: Marin Marais Variations on "Les Folies d'Espagne"


보웬: 네대의 비올라를 위한 판타지, 작품번호 41

Y. Bowen: Fantasia for 4 Violas, Op.41

 




이번 포 비올라 무대를 즐긴 사람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법칙이 있었다. 바로 연주자들 구성에 법칙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일반적으로 콰르텟 공연에서도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을 시종일관 동일하게 유지하지 않고 바꾸는 경우들이 있으니, 이번 포 비올라 무대도 그랬나보다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포 비올라 무대에서 있었던 연주자 구성의 법칙은 그와는 좀 달랐다. 같은 콰르텟 전현직 연주자끼리 1,4비올라 그리고 2,3비올라를 맡아 연주한다는 대원칙을 계속 유지하며 변경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1주자가 노부스 콰르텟 출신 연주자라면, 나머지 1명은 4주자를 맡고 아벨 콰르텟 출신 두 연주자는 2, 3주자를 맡는 형태였다. 매번 이 법칙을 지키며 연주하다보니 다음 곡에선 어떤 구성으로 나올지 현장에서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첫 곡은 예정된 대로,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였다. 이 작품은 1주자로 이승원이 나섰다. 자연스럽게 4주자는 김규현이었다. 그리고 2, 3주자는 김세준과 문서현이 맡았다. 경이롭게 아름다운 이 음악을, 이승원이 리드하면서 콰르텟은 아름답고 서글픈 선율 가운데 엄청난 화성을 풍부하게 전달해주었다. 원곡을 바이올린 한 대로 연주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네 대의 비올라로 연주하니 새삼 이 풍부한 곡을 어떻게 바이올린 한 대로 연주했을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선율에 감탄했다. 네 연주자의 균형감이 조화로워 시작부터 이 앙상블에 대한 만족감이 커졌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녹스의 비올라 스페이스 듀오 중 4번, '9개의 손가락'이었다. 노부스 콰르텟의 전, 현직 비올리스트 두 명이 보여줄 무대였다. 비올리스트 김규현이 1주자, 이승원이 2주자로 나섰다. 오로지 피치카토만으로 연주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두 연주자 모두 활 없이 비올라만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왼손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이 불날 듯이 강하게 현을 뜯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녹스의 사이트에서 영상으로 보던 것과 느낌이 꽤 달랐다. 사실 녹스가 2인 버전으로 연주하는 걸 들었을 때에는 극적인 긴장감이 계속 감도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김규현과 이승원의 연주에서는 그보다 리듬감에서 살아나는 익살스러움과 흥겨움이 배가되었다. 그 긴장감 서린 느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현장에서 오히려 녹스의 작품이 더 좋아졌다. 몰입하는 두 연주자로 인해 관객들도 그야말로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다.


세 번째 곡은 아벨 콰르텟의 전, 현직 비올리스트 두 명이 선보이는 프랭크 브리지의 '두 대의 비올라를 위한 비가'였다. 비가답게 비장하고 장엄한 선율이 얽히며 펼쳐지는 브리지의 세계는 문서현과 김세준의 앙상블로 더욱 절묘하게 피어났다. 슬픔의 정서가 마치 유화처럼 두껍게 덧칠된 듯하다가도, 마치 수채화처럼 투명해지는 순간들이 있어 그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노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공연장을 가기 전에 혼자 이 작품을 들어보면서, 감정이 과잉되는 순간 조금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작품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서현과 김세준의 연주는 이 비탄 어린 낭만을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연주해 주었다. 그들이 표현해 준 브리지의 세계가 너무나 서글프게 아름다워 이들이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활을 떨어뜨리는 그 침묵의 순간까지도 온전히 보존하고 싶었다. 너무나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1부의 마지막 곡은 바인치엘의 '네 대의 비올라를 위한 야상곡'이었다. 이전의 두 곡이 듀오를 위한 무대였으나 다시 네 번째 곡부터는 비올라 콰르텟을 위한 무대로 바뀌었다. 이번 무대는 첫 곡 콰르텟과 구성이 달라졌다. 바로 비올리스트 문서현이 1주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언급했던 법칙에 맞춰, 김세준이 4주자에 대응되었다. 그리고 2주자로는 김규현, 3주자로는 이승원이 나섰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도입 선율이 연주되는 순간 이 작품의 1주자로 문서현이 나선 게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전에 곡을 들을 때에도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웃으며 연주하는 문서현을 필두로 연주자들이 교감하며 이 작품을 표현하는 것을 보니 야상곡다운 아름다움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 같았다. 아주 맑고 화창해서 해질녘마저도 완벽했던, 9월 18일 연주 당일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곡이었다. 시종일관 아름다웠던 앙상블에, 곡이 마무리되는 순간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curtaincall2.jpg



2부의 첫 곡은 헨리 퍼셀의 '네 대의 현을 위한 환상곡 10번 마단조'였다. 이 작품 역시 바인치엘의 곡과 마찬가지로, 1주자에 문서현 그리고 4주자에 김세준, 그리고 2주자에 김규현 그리고 3주자에 이승원이 나섰다. 1부 녹스 작품에 뒤이어 이번 무대에서 두 번째로 러닝 타임이 짧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녹아있는 바로크미는 결코 다른 곡에 비해 임팩트가 모자라지 않다. 대위법적인 요소가 녹아있어 풍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곡은 다시금 녹스의 작품이었다. 마랭 마레의 '스페인풍의 나폴리아'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이번에는 1주자가 바뀌어 김규현이 되었다. 자연스레, 4주자는 이승원이었다. 그리고 2주자에는 문서현, 3주자에는 김세준이 자리하였다. 처음에는 변주없는 온전한 주제가 연주되지만 이 작품은 변주곡이라는 이름답게, 끊임없이 변주가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 현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데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찾아볼 수도 없어서 녹스가 비올라 스페이스를 설명하는 것을 보며 이 작품에 들어간 주법들을 개인적으로 유추해보았다.


주제 선율이 제시되고 거기서 리듬감의 변화 정도까지가 이루어진 뒤, 첫 번째 변주는 다소 괴기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술 타스토, 녹스가 비올라 스페이스에서 2번으로 다룬 주법으로 연주한다. 술 폰티첼로인가 싶게 금속성 소리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는 비올라 스페이스 4번 주법에 해당되는, 피치카토로 변주하는 구간이 나온다. 그 다음으로는 비올라 스페이스 3번 주법에 해당되는 슬라이딩 그리고 뒤이어 비올라 스페이스 8번 주법으로 활로 현을 쳐서 변주한다. 그 뒤에는 마치 늘어난 테이프처럼, 반음을 버리고 조성을 벗어나려는 듯한 변주구간이 나타난다. 그 뒤에 확신의 술 폰티첼로 구간이 나온다. 첫 번째 변주보다 훨씬 금속성이 강한 대목. 그 다음은 트레몰로를 예상하게 하는 구간을 지나 피날레인 트레몰로, 비올라 스페이스 5번 주법으로 변주곡이 마무리된다.


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이 다양한 기교들을 연주자들의 손끝과 활끝으로 마주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변주가 일어나기 직전마다 그들이 주고받는 눈짓과 교감 속에서 피어난 변주는 너무나 즐거웠다. 주제 선율이 기본적으로 아름답기도 했지만 기교 어린 변주로 더더욱 사운드가 풍성해지면서 관객들의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연주가 마무리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마지막 곡은 보웬의 '네 대의 비올라를 위한 환상곡'이었다. 이 작품에서야 드디어, 비올리스트 김세준이 1주자로 나섰다. 2주자로는 이승원, 3주자에는 김규현 그리고 4주자로 문서현이 나서 마지막 조합을 보여주었다. 김세준이 리드하는 낮고 묵직한 주제선율에 이어 어우러지는 네 악기의 선율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그러나 여기서 이승원이 텍스쳐를 바꾸는 순간부터는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졌다. 점차 약동하는 에너지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마치 생각이 많아져 무한히 퍼져나가는 어느 밤처럼, 보웬은 낭만적이고 애수 어린 선율 가운데 무게감 있는 무언가를 숨겨두었다. 그리고 포 비올라 무대를 꾸민 네 명의 비올리스트는 그 드라마를 실재감 있게 전달해 주었다.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앙상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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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손에 불 붙을 듯이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무대 하나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었고, 조화롭지 않은 연주가 없었다. 7곡이나 준비하느라 수없이 서로 연주하며 조율했을 그들에게 박수로 화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관객들은 박수갈채로 연주자들의 노고에 보답했다.


그리고 그 뜨거운 박수갈채에 화답하여, 연주자들은 앵콜 무대를 꾸몄다. 별도의 앵콜곡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본 프로그램 중 한 곡이었던 녹스의 마랭 마레 스페인풍의 라폴리아에 의한 변주곡 중 말미 대목인 술 폰티첼로부터 트레몰로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변주를 연주해 주었다. 여기서 1주자로 나선 비올리스트 김규현이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연주자들도, 관객들도 즐겁게 웃은 앵콜무대가 되었다.


*


이번 포 비올라는 비올라만의 향연으로도 무대가 풍성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과거 경험을 미루어 보아도, 목프로덕션의 기획공연들 중에 비올라를 다루는 무대들은 특히나 더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뛰어난 연주자들로 구성된 공연임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구성과 기획 자체에서 관객들을 생각한 고심의 흔적들이 묻어나기에 더욱 무대가 끝나는 순간이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이번 무대의 경우에도, 첫 곡은 바로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두 번째 곡은 현대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녹스의 작품 그리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후기 낭만의 정취가 가득한 작품들로 선곡하여 시대를 아우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1부와 2부가 상응하도록 균형감 있게 프로그램을 대응시킨 것 역시 돋보이는 무대였다.


포 비올라 무대를 선보인 네 연주자 중 비올리스트 이승원과 비올리스트 김세준의 경우 현재 유럽이 주 무대일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을 국내 무대에서 자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그래도 노부스 그리고 아벨 콰르텟 활동으로 국내 무대에서 볼 기회들이 좀 더 열려있는 비올리스트 김규현과 문서현이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지만, 또 언제 이 네 사람의 조합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도 목프로덕션에서 비올라 기획무대를 꾸며줄 지 기다려 봐야겠다. 뛰어난 이 비올리스트들의 국내 무대를 근시일 내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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