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건희 컬렉션' 명품 중의 명품, 인왕제색도 [미술/전시]

알면 더 재밌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글 입력 2021.09.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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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미술관⋅박물관 예약 매진 사태를 일으킨 주역, 무료 전시임에도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 암표가 나오는 기이한 현상을 이끈 주범, 바로 ‘이건희 컬렉션’이다. 이번 달 말까지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매진된 지 오래고, 내년 3월까지 계속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예약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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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 국립중앙박물관

 

 

이런 ‘위대한’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 ‘인왕제색도’다.

 

이를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도 포스터에 인왕제색도를 내걸었고, 홈페이지 전시품 소개에도 ‘<인왕제색도> 등’ 몇 점이라 표기한 걸 보면 이 그림 한 점이 얼마나 큰 홍보 효과를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인왕제색도’만을 위한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도 제작해 인왕제색도를 다양한 경로로 실컷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필자는 이전에 인왕제색도를 조사한 적이 있어 이 그림에 대한 뉴스들이 왠지 반가웠다. 리움미술관 소장 시절에도 한동안 디스플레이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예약도 가망이 없으니 이 그림을 실제로 보려면 또다시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필자가 알고 있는 ‘인왕제색도’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와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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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

 

 

 

옛날 옛적에,


 

정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겸재 정선(1676-1759)에게는 이병연(1671-1751)이라는 오랜 벗이 있었는데, 그는 시인이었다. 둘은 요즘 말하는 ‘콜라보레이션’처럼 시와 그림을 주고받았다. 정선이 그림을 그려 이병연에게 전하면 이병연은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 옆에 시를 쓰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1751년, 6살 많은 이병연이 위독해지자 정선은 그의 쾌차를 기원하며 그림 한 점을 그린다. 이병연과 함께 오르던 북악산에 혼자 올라 육상궁 뒤쪽에 있는 이병연의 집을 바라보며 인왕산 풍경을 그린 것이다. ‘비 갤 제’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비가 갠 인왕산의 모습을 그리며 친구 이병연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스토리는 겸재 연구의 대가인 미술사학자 최완수 선생의 해석이다. 인왕제색도는 윤 5월 29일에 생을 마감한 이병연을 위한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홍선표 교수는 이와 다르게 겸재 정선이 “자신의 집인 인곡정사와 그 주봉인 인왕산 경관을 기념비적으로 남기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직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둘 중 더 마음에 드는 이야기로 기억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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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른쪽에는 ‘1761년 5월 하순’이라고 적혀있는데 오주석 미술사학자는 정확한 날짜를 알기 위해 승정원일기를 찾아봤고 윤 5월 19일부터 25일 오전까지 비가 내렸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그려진 날은 7일간의 장마가 마침내 그치고 날이 갠 윤 5월 25일 오후로 추정했다.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의 대가’로 불린다. ‘진경산수’란 쉽게 말해 ‘진짜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관념산수화가 회화의 주된 흐름이었다. ‘관념산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처럼 상상 속의 이상적인 풍경을 그려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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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의 ‘몽유도원도’. 1447년 4월 20일 안평대군이 무릉도원 꿈을 꾸었고 그 내용을 전해 들은 안견이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려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까지는 실제 경치를 묘사한 ‘실경산수’가 유행했다. 상상 속 공간이 아닌 실제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 풍경을 지형학적으로 그렸는데, 「북관수창록」에 실린 화원 한시각(韓時覺)의 실경도 6점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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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수창록」 중 한시각 그림 <칠보산전도(七寶山全圖)>, 견본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여기서 더 발전한 것이 ‘진경산수’인데, 실제 장소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더해 생생하게 구현한 것이다.

 

미술의 발전과 변화는 사회의 그것과 함께 나타나기에,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이념적 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성리학의 한계를 체감한 조선 선비들에게 관념적 사고보다 현실에 대한 자각이 중요해졌고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산수화 분야에서도 실제 경험과 직접적인 견문을 바탕으로 한 변화가 시도된 것이다. 국가적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조선의 회화는 조선의 미를 담아내려고 애썼고, 그렇게 조선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진경산수화’가 탄생했다.

 

 

 

자연과 하나 되는 동양의 관찰법


  

사실 인왕제색도를 소개하며 가장 다루고 싶었던 것은 동양의 원근법이다. 조선 회화(혹은 동양화)는 평면적이고 깊이감이 없는 것이 특징이기에 원근법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양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멀고 가까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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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0, 벽화(템페라),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우리에게 익숙한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기에 발명된 ‘선 원근법’으로 관찰자인 ‘나’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고 나와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방법이다. 나와 멀리 있을수록 그림 속 대상은 소실점을 향해 점점 작아진다.

 

반면에 동양화에서는 삼원법(고원법, 심원법, 평원법), 역원근법 등을 사용해 거리감을 표현했는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는 전자가 사용됐다. 쉽게 설명하면 고원(高遠)법은 산 아래에서 산 위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자연의 장엄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고, 심원(深遠)법은 산 위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여러 산들이 중첩되어 깊이감을 주며, 평원(平遠)법은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구도로 자연의 광활함을 표현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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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차례로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이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정선의 인왕제색도에는 이 삼원법이 모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가로로 삼등분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위층의 인왕산은 산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고원법으로, 소나무가 묘사된 중간 층은 가까운 산에서 같은 높이의 먼 산을 바라보는 평원법으로, 가장 아래층은 높은 곳에서 집을 내려다보는 심원법으로 묘사되었다.

 

정선은, 그리고 동양 화가들에게는 ‘나’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멀리서 보는 풍경을 그림 한 폭에 모두 담아냈다. 자연 속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런 ‘이동시점’, ‘다시점’은 정선뿐만 아니라 동양화가들이 풍경을 묘사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관찰자보다 관찰 대상이 중요한 동양화의 특징이다.

 

또한, 화면 속 산의 층과 층 사이에는 마치 안개가 깔린 것처럼 보인다. ‘공기 원근법’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공기 중의 습기나 온도를 화폭에 담아내 그로 인한 깊이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인왕제색도에서도 축축이 젖은 바위, 마른 바위, 산과 산 사이 깔린 안개를 통해 깊이감이 도드라지며, ‘진경산수화’답게 그 분위기를 충분히 담아냈다. 붓에 먹을 가득 적셔 같은 부분을 여러 번 덧칠해서 젖은 바위를 표현한 동시에(적묵기법) 마른 바위는 빈 상태로 놔두어 강렬한 대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어떻게 '이건희 컬렉션'이 되었나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만포 심환지(1730-1802)가 처음 수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환지는 정선의 그림을 7점 수장하고 있었던 정선 그림 애호가였는데, 원래는 정선의 그림과 함께 그의 제시(題詩)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삼각한 봄 구름 비 보내 넉넉하니, 만 그루 소나무의 푸른 빛 그윽한 집을 두른다. 주인옹은 반드시 깊은 장막 아래에 앉아, 홀로 하도와 낙서를 완상하겠지. (華岳春雲送雨餘,萬松蒼潤帶幽廬. 主翁定在深帷下, 獨玩河圖及洛書)

 

심은 수로도 쓴다. 임술 초여름 하한에 만포가 쓰다. (深一作垂, 壬戌孟夏夏瀚, 晩圃書)

 


재밌는 건 심환지의 후손들이 이 그림에 조상의 글씨가 있다며 이 그림을 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

 

그렇게 심환지 후손 가문에 전해지다 일제 말에 서울의 최난식 가(家)로 옮겨졌고, 그 후 개성의 대수장가인 진호섭 가의 소장이 되었다. 이후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몇 사람 손을 거친 뒤 해방 이후 이병철이 수집하면서 삼성의 소장이 된다.

 

전쟁 중에 그림과 시가 분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인왕산을 거닐다’ 영상을 보면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처음 수집한 ‘이건희 컬렉션 1호’라 소개하고 있어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특유의 자연 묘사도 매력적이지만 흥미로운 비하인드스토리도 가지고 있어 이를 알고 나면 그림이 또 다르게 보인다. 기법 면에서도 동양의 원근감 표현과 먹의 농도를 통한 온도와 습기의 표현을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게 버무려 낸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더 풍요롭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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