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화, 그 뒤에 숨겨진 비화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글 입력 2021.09.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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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자화상>, 1912

 

 

눈에 광기, 살기가 서려 보이는 깡마른 인물들을 주로 배경 없이 그린 에곤 쉴레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과 우울함 때문에 나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먹다 보면 자연스레 편식이 되듯, 예술도 좋아하는 것만 향유하다 보면 편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에곤 쉴레의 전기 영화인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을 통해 에곤 쉴레의 그림이 가진 불안과 우울함에 끌려 극찬하는 사람들의 감상과 에곤 쉴레의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했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에곤 쉴레가 자신의 여동생 게르티의 누드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빠와 동생 사이가 아무리 돈독해도 나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에서 에곤 주변 인물들은 여동생 게르티가 누드모델로 서는 것을 당연시 여겨 내가 너무 꽉 막혀있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영화 초중반부에 게르티가 에곤의 친구이자 같은 화가인 안톤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자 에곤은 성인도 안됐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냐며 화를 낸다.

 

이 외에도 묘하게 근친상간 코드가 느껴져 후에 찾아보니 이런 에곤 쉴레의 행동은 당시에도 이상하게 여겨졌고, 어릴 적 여동생에게 성욕을 느껴 부모가 이 둘을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에곤 쉴레의 전기 영화이긴 하지만 천재적인 화가의 면모뿐만 아니라 비판받아야 할 요소까지 중립적으로 다룰 줄 알았다.


영화에는 여동생 게르티, 극단 배우 모아,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 작업실 맞은편에 사는 자매 에디트와 아델, 총 5명의 여자들이 나온다. 모아는 게르티가 아닌 첫 외부 모델로, 에곤이 모아를 모델로 자주 그림을 그리자 마치 게르티가 이 둘의 사이를 질투하는 것처럼 그렸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절대적인 에곤 쉴레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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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죽음과 소녀>, 1915

 

 

에곤 쉴레의 대표적인 그림 <죽음과 소녀>는 발리가 떠난 후 그린 그림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발리를 쫓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때도 <죽음과 소녀>라는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오묘한 매력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대에 징집되고 나서도 자신의 명성을 잃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부잣집 딸 에디트와 결혼하면서 발리를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연민에 찌들려 그린 그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 중간에 에곤이 아동 납치, 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이를 중립적인 입장으로 다루는 듯하다가, 은근슬쩍 에곤 쉴레의 무죄와 억울함을 다룬다. 마치 에곤과 발디의 집에 자주 드나들던 13살짜리 소녀가 자신의 엄마와 작당모의 한 것처럼, 재판장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나올 때 엄마가 소녀를 꾸짖는 듯한 장면은 그 의도가 너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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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자화상>, 1914-1915

 

 

이 장면을 보고 에곤 쉴레의 아동 납치, 강간 혐의에 대하여 더 찾아봤다. 실제로 에곤 쉴레가 자신을 언론의 화살에 맞는 희생자로 표현한 그림도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에곤의 부모가 에곤과 게르티를 함께 있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었던 걸로 봤을 때, 에곤 쉴레에게 혐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실제 에곤 쉴레보다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 배우를 에곤 쉴레역에 캐스팅해서 에곤 쉴레의 여성편력, 아동 납치, 강간 혐의를 그럴싸하게 넘어간다.

 

이 영화를 통해 에곤 쉴레 작품에 호기심이 생기기 바랐지만, 오히려 영화를 통해 비화를 알게 되니 영화를 보기 전 가졌던 약간의 흥미마저 잃어버렸다. <러빙 빈센트>를 본 후 고흐가 우울증에서 비롯된 정신병이 아닌 매독에서 비롯된 정신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라고 할까.

 

상업영화처럼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영화에 28년을 산 화가의 일생을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이런 전기 영화의 특징을 다 감안해도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시간 순서대로 에곤 쉴레의 모델이 됐던 여성들을 나열해 놓기만 한, 애매한 영화였다.

 

에곤 쉴레 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 화가들이 예술가의 뮤즈라는 타이틀을 방패로 여성을 도구로 일삼는 것은 에곤 쉴레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현재도 그 후대 화가인 피카소, 디에고 리베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을 보고 난 후 에곤 쉴레 작품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까미유 끌로델, 프리다 칼로, 세라핀 루이 등 여성 화가의 전기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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