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물들'에 얽매여서 빠져나올 수 없음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이 말하는 물질과 욕망, 좌절
글 입력 2021.09.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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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가 가진 ‘사물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의 필자인 나의 집에 들어서면 이케아에서 구매한 심플한 디자인의 가구들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며, 우드와 화이트 두 가지의 컬러만을 용납한 인테리어와 분할되어 비워진 공간들이 나의 미니멀한 취향을 설명할 것이다. 옷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색조에 한정된 적은 수의 옷가지들을 발견할 것이고, 곳곳을 둘러보면 고집스러운 취향으로 인해 까다롭게 선택된 물건들이라는 점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먹는 것 역시 포함될 수 있다. 좋아하는 맛, 재료의 퀄리티, 먹는 장소의 분위기 등, 나는 날것을 잘 못 먹지만, 그만큼 음식의 향에 예민함이 있다. 커피를 마실 때에는 산미나 과일향을 멀리하고 견과류나 초콜릿의 느낌을 주는 종류를 좋아한다. 고소함이 진한 커피를 선호하는지라 물이 들어간 아메리카노보단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떼를 즐기는 편이고, 헤이즐넛 맛이 가미된 것은 최고다.

 

읽고 보고 듣는 것들의 취향도 역시 사물들에 종속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소비의 차원에서 말이다. 같은 책이라면 표지 디자인을 보고 고를 수밖에 없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데에 있어서도 어떻게 감상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던 LP나 2000년대의 디지털 캠코더는 예전 감성의 수요가 늘어남을 증명하고, 간단하게는 아이폰과 갤럭시 중 어떤 핸드폰을 사용하는지 물음으로써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를 판단하기도 한다. 특정 매거진이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은 그가 실제로 그것을 읽는가의 문제는 제쳐놓고, 그에게 여유와 감성을 제공해준다.

 

나는 내 취향과 사물들에 만족한다. 하지만 때로는 불만족스럽기도 하다. 내 무의식의 일부는 더 고급스러운 재화를 원하지만 그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을 때, 자연스럽게 내 취향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순간들이 있다. 애초에 내가 소비할 수 있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기호가 형성됨을 느낀다. 그와는 별개로 대중적인 것이나 주변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결국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좀 독특하게도, 내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심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실 내 또래의 대부분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SNS와 미디어에서 결코 떨어지지는 못하면서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는 것.

 

나만의 개성을 찾는 것이 현세대의 유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참고자료를 통해서 내 것을 찾고, 같은 취향의 소수 집단에 포함된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유행이다. 찾아보면 수천 명이 나와 똑같은 스타일로 ‘나만의 개성’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조금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도 이게 좀 더 특별하고 멋지고 쿨하다는 위안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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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에 등장하는 프티 부르주아 계층의 20대 남녀, 제롬과 실비의 삶도 다르지 않다. 너무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그들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그들의 방엔 낡고 작은 책장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수많은 책이 바닥이든 어디든 두서없이 쌓여 있으며, 시장에서 찾아낸 빈티지 소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차려 밤새도록 예술과 철학에 관해 토론하기를 즐기고, 굉장한 영화광들이다. 관심 있던 직업이 아니었기에 일은 적당히 할 뿐이며,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게으름을 피운다.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2020년대의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트렌드에 가깝다. 그들의 물건부터 생활 방식까지 정말 ‘사물들’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디테일한 묘사 덕분에, 그대로 사진을 찍어 올린다면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든가 브이로그를 찍으면 조회수가 엄청날 것이라는 상상도 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욕망을 자극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매력적인 서술로 환상과 기대감에 부푼 독자에게 저자는 곧장 차가운 말들을 뱉어버린다. 그들 취향의 조약하고 미흡한 부분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노력도 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지적한다. 그들이 하는 자기 합리화의 방식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내면의 불안정함과 부족한 자존감을 긁어낸다.


나 역시 『사물들』을 읽으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카페에서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으며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1장은 장면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뒤에 이어질 내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서술들이 이어지며 점차 얼굴이 달아오르고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되었는데, 그토록 더 냉혹하게 다가온 이유는 지나침이 없이 현실적이면서 객관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이 갈망하는 것은 어떤 법칙에 가까웠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문명의 법칙이었고, 광고, 잡지, 진열장, 거리의 볼거리, 소위 문화 상품이라 불리는 총체가 이 법에 전적으로 순응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가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도 가장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함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처지였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아마 이 점에서 이들이 소위 지식인 축에 낄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들은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방에서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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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결말은 직접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언급하지 않고 남겨두겠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는 행위가 필요한 책이다. 나에겐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면서도, 행복에 관한 철학적 문제들, 사회학과 공간 이론들을 연상시켰다. 특히 2부에서 제롬과 실비가 파리에서 스팍스로 떠난 이후의 전개는 스펙터클 개념을 통해 바라보면 두 공간을 비교하여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부’라는 행복의 현대적 기본조건을 따라가다 보면 더 많은 부와 행복이 필요하다는 게, 참 현실적이면서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가? 당연히 현대 사회구조 속에서 물질적 욕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좌절이 따라붙는다.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샀던 사람들은 생각만큼 자유롭게 기록하기엔 필름 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마저 사치가 된다. 또 허영으로 부끄러워지지 않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취향의 기준은 어디부터일까, 책을 읽던 카페에서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하필 지금 번쩍번쩍하고 큰 고리 장식이 달린 가짜 금빛 포크를 주네. 집어던지고 싶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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