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에 대한 깨진 환상이 가져다 준 것. - 벌거벗은 미술관

글 입력 2021.09.0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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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가면 오디오가이드나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설명 없이 관람하면 온전히 나만의 상상이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각각의 매력이 있어서 두 방법 모두 좋다.


설명 없이 작품을 감상할 때 자유롭게 내 방식대로 상상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좋지만 아쉬운 마음도 있다. 미술 관련 지식이 없다보니 작품의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사색을 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설명을 듣고 감상하면 되지 않겠냐 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이해한 후 사색을 하는 것과 기본 지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사색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벌거벗은 미술관’이 조금이라도 덜어줄 것 같았다.



벌거벗은미술관_표1띠지.jpg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쉽게 풀이하긴 했지만 미술 관련 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이마저도 어렵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열등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려는 미술안내자인 양정무 저자의 마음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고, 익숙한 이야기가 있어서 계속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처럼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림 보는 것을 재밌어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좋다.


‘벌거벗은 미술관’은 독자가 미술작품에 대한 환상 또는 편견을 허물 수 있는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 중 미술사를 어려워하거나 관련 지식이 없는 편인 사람들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만 뽑아봤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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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p.27

 

 

나는 ‘고전미술’ 하면 우아하고 아름다움의 그리스미술이 떠오른다. 특히 그리스 조각의 순백색이 생각나는데, 이 아름다움 뒤에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 뒤에는 그리스인들의 이기심, 우월감, 인종차별, 정치적 성향이 숨겨져 있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리스 조각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완전히 순백색의 대리석 조각은 아니었을 것이며, 그 대리석 표면은 맑고 깨끗한 질병 없는 백인의 신체를 연상시킨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p.24~25) ‘맑고 깨끗한 질병 없는 백인’은 인종차별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상이 미술품에 담겨 있을 줄은 몰랐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백인종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보였다. 결국 그 인식은 걷잡을 수 없는 문제점이 되고 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이어졌다.


사람을 인종이라는 개념으로 나눴다는 것부터가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그 시작이 그리스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동시에 우아하고 아름다움에 홀려 환상‘만’ 가졌던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초상화에도 그것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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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p.80

 

 

‘왜 다들 표정이 비슷비슷하지?’


무표정이 많은 초상화를 볼 때마다 궁금했다. 마침 책에 초상화에 웃는 얼굴이 드문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어서 읽어봤다.


초상화의 무표정성은 그리스 고전기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시기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실현과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초상의 제작을 금지했다고 한다. 인간을 표현하더라도 특정 개인을 결코 연상 시켜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관념화·이상화된 인간 형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p.90)


개인의 특징을 살리지 않고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아무래도 무표정이 제일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웃는 모습은 감정이나 기분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매력이나 분위기, 습관까지 엿 보기에 제일 좋은 표정이 웃는 표정이니 이 표정을 제일 경계했을 것이다.


초상화의 무표정성은 당시의 플라톤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플라톤은 엄숙함과 진지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웃음을 해로운 행위로 여겼다고 한다. 웃기고 울리는 작품을 쓰는 시인들이 추방당할 정도여서 시민들은 웃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고 한다. (p.92~93)


나는 초상화를 볼 때 ‘이 사람의 얼굴에는 어떤 인생이 있을까.’ ‘이 초상화를 남길 때의 처지나 기분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만 했다. 초상화에도 편견, 정치적 성향, 시민들의 고충이 있을 줄 몰랐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꾸민 박물관만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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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p.175

  

 

박물관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웅장함이 좋다. 나를 자극 시키고, 마음을 경건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마 박물관의 웅장함에는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애국심이 깃들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나한테 박물관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꾸민 박물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영국 외교관인 엘긴은 오스만 정부의 허락을 빌미로 파르테논 신전 지붕, 상단 내벽에 장식 되어 있던 프리즈 부조 등 핵심적인 부분들을 떼어 1806년 영국 런던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것이 ‘엘긴 마블’이라고 한다. 엘긴은 영국 정부에 이것들을 팔기 위해 지루한 협상을 진행했다고 한다. (p.174)


고대미술품에 무례한 행위를 하고 권위를 이용해 마음대로 박물관을 꾸몄다니.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박물관에 대해 갖고 있던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과거 중세 유럽의 흑사병 그리고 현재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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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p.217

 

 

이 부분은 환상이나 편견을 허무는 순간이라기보다 이 책에서 공감대가 가장 많은 부분이었다.


저자는 한 판화를 소개했는데 판화 속 인물의 모습이 특이했다. 그 인물은 감염병을 치료하던 의사 슈나벨이었다. 판화 속 슈나벨은 새부리가면과 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가 달린 가운을 입은 것처럼 머리부터 발목까지 가운으로 감싸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얇고 긴 지팡이가 들려있다. 지팡이는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진료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한다.(p.211) 슈나벨의 모습은 저자의 의견처럼 방호복과 마스크를 쓴 요즘 의료진의 모습이 연상됐다.


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과거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대응책을 열심히 마련했을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판화 하나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는 ‘데카메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데카메론’은 자가격리를 배경으로 한 문학이라고 한다. 1348년 흑사병이 피렌체를 덮친 후 현재 우리처럼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젊은 남녀 열 명이 시골에서 머물렀는데 너무 무료한 나머지 각자 이야기 하나씩을 풀어놓았는데 그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 ‘데카메론’이라고 한다.


당시 그 책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 ‘데카메론’을 배경으로 한 여러 그림들이 나왔다고 한다.(p.21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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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후지시로 세이지의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이 생각났다. 전시 마지막에 나를 배웅해주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난쟁이와 고양이의 그림이 떠올랐다. 현재의 우리 상황을 잘 표현한 그림이 매우 색다르게 다가왔고, 풍선을 들고 인사하는 모습이 희망을 전해주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이 경우만 봐도 지금의 우리들 역시 ‘데카메론’과 이를 배경으로 한 여러 그림과 같은 많은 예술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본다. 과연 전 세계의 예술가들은 지금의 우리 모습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할지 궁금해졌다.

 

 


우리와 미술은 닮았다.



누군가에 대한 환상이 깨졌을 때 안 좋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가 된다. 미술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진 대신 미술과 한 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술 또한 인간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고, 우리의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미술작품을 좀 더 깊이 있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좋지만 반대의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공감대가 많고, 현재의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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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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