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냐하면 이건 사랑 이야기니까 [드라마/예능]

드라마 <플리백>(Fleabag)
글 입력 2021.09.0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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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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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플리백>은 한 여성이 제4의 벽(스크린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관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던 그는 갑자기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목요일 새벽 두 시에 문자를 보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거야. 집에 찾아와도 되겠냐며 말이야. (중략) 잠시 후에 초인종이 울리겠지?"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인종이 울린다. 그는 우리에게 "그리고서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이 문을 열어주겠지."라는 말을 던지고 현관문을 연다. 한 남성이 문 안으로 들어서고, 둘은 미묘한 기류 속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다시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런 후에 곧장 돌입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둘은 침대로 직행하고, 주인공은 섹스 중에도 중계하듯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강렬했던 밤이 지나고 낮이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기니피그 테마의 카페에 앉아 전 날 밤의 섹스를 곱씹는다. 버스에서는 낯선 남자와 마주치고 번호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남자친구 해리와의 (기상천외한) 이별 또한 회상한다. 이후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간 그는 은행 매니저에게 섹스어필을 하려다 민망한 상황에 부딪치고, 결국 대출을 거절당한다. 그리고서는 바쁘게 어딘가로 향한다. 언니 클레어와 함께하는 여성 주간 강의다.

 

능력 좋은 언니에게 돈을 빌려 볼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자존심에 그러지 못한다. (주인공은 제4의 벽을 깨고 이러한 일련의 의식을 우리에게 전부 다 전달한다.) 강의가 끝난 후 슬며시 포옹하려는 언니와는 합이 맞지 않아 몸과 몸이 충돌하는 사고만 일으킨다. 이후 버스에서 번호를 준 남자에게 연락해 술잔을 기울인다. 누군가의 집으로 2차를 가자는 무언의 (섹슈얼한) 신호를 보내보지만 남자는 알아듣지 못한다. 주인공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술집을 나선다. 그러고선 새벽 2시에 아버지 집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린다. "제가 탐욕스럽고, 밝히고, 이기적이고, 무신경하고, 냉소적이고, 타락한 데다가 페미니스트인 척도 할 수 없는 파산한 여자라는 게 끔찍해요."

 

이 여자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해할 틈도 없이 그는 대모(새어머니)의 수천 파운드를 호가하는 조각상을 훔쳐 집을 나선다. 아버지가 부른 택시에 몸을 싣고 카페로 가달라고 요청한다. 택시기사는 새벽에 카페로 향하는 이 여성이 궁금한지 스몰톡을 시전한다. 카페를 혼자 운영한다는 주인공의 말에 더 이야기해보라며 재촉한다. 그러자 그는 '정말 웃긴 이야기'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제 친구 부와 함께 카페를 열었어요. 그런데 죽었어요. 실수로 자살해버렸어요. 고의도 아니었지만 사고도 아니었어요. 죽을 거라곤 생각 못 했던 거죠.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누군가와 잤다는 사실을 알았고, 병원에 입원하는 거로 남자친구에게 벌을 주고 싶었지만 찾아올 수도 없게 되어버렸죠. 복잡한 이륜차 전용도로로 걸어 들어갔어요. 아마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손가락 정도 부러뜨리려고 한 건데 오토바이가 너무 빨라서 도로 안으로 밀려들어 간 거예요. 세 명이 죽었어요. 걔 때문에 그게 뭐예요? 그래서, 그런 셈이 된 거죠."

 

백미러에 경악에 찬 택시기사의 눈초리가 담기고 관객 또한 벙쪄가고 있는데, 이내 주인공은 품 속에서 (대모에게서 훔친) 조각상을 꺼내 든다. 그러고선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들의 눈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짓는다.


 

 

엉망진창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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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은 런던에서 현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 '플리백'에 대한 이야기로, 그는 말 그대로 '플리백(fleabag) : 더러운 몰골(을 한 사람)'이다. 앞서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플리백은 엉망진창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파산 직전의 카페를 홀로 운영하고 있다.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의지했던 절친한 친구 '부'는 사고로 죽었고, 연인과의 관계? 글쎄다. (그는 진지한 관계-사랑을 갈구하는 연인 해리와 같은 침대에 누워서도 자위에 열중하곤 했다. 결국 연인은 떠나고 만다.) 가족과의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머니는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고, 이후 아버지는 (어머니의 제자였던) 대모와 살림을 차렸다. 언니 클레어와는 정반대의 성향으로 사이가 썩 좋지만은 않지만, 아버지가 두 딸을 위해 각종 티켓을 끊어주기에 자매는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 이렇듯, 플리백과 그 주변의 관계는 끊임없이 덜컹거린다.

 

솔직히 객관적인 플리백의 모습만 놓고 따져 봤을 때, 쉽게 정이 가는 인물은 아니다. 플리백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가벼운 섹스를 즐기고, 여기서 얻은 만족감은 지속되지 않기에 늘 성욕이 과도한 상태다. 타인을 조롱하고 비꼬며, 무례하기까지 하다. 카페 손님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기도 한다. 좀도둑질은 옵션이다. 플리백은 허세 가득하며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그에게 진지하고 깊은 관계는 불가능해 보인다. 도움이 절실한 상태지만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고 자꾸만 주변을 실망시킨다. 그 결과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삼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민망하고, 우울하고, 부끄럽다.

 

성마르고 건조한 플리백의 삶이 하염없는 우울과 외로움을 상기시키지만, 그럼에도 플리백의 시선을 피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적나라한 농담을 던지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거나 예상이 들어맞으면 카메라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짓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을 흘기기도 한다. 사뭇 진지한 장면에서도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4의 벽을 깬다. 플리백은 모든 상황을 유머로 무마한다. 관계에서 탈선하는 순간조차 조크가 깃든다. 깊은 감정이 깃들어야 할 장면에서도 우리에게 달려와 유머를 던지기 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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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이러한 플리백의 모습에 심리적 원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플래시백을 통해 친구 부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그의 부재가 플리백의 현 모습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플리백은 부와의 추억을 끝없이 회상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아직도 누군가 요금을 내주고 있는’ 죽은 친구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자동 응답기에 등록되어 있는 목소리를 듣는다. 부는 플리백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따뜻한 시선을 가진 놀라운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단 거야. 사람들은 늘 실수를 하니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의 모습에 관객은 '무언가 있다'는 추측을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플리백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하면서도 가장 깊숙이 묻혀있는 기억과 감정은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 섬광처럼 등장하는 플래시백에 의해 약간의 힌트만 줄 뿐이다.

 

시즌1의 마지막에서야 플리백은 과거(기억)를 직시한다. 대모의 섹스전시회에서 터진 클레어와 플리백의 갈등으로 인해 숨겨져 있던 진실이 관객에게도 드러나는데, 바로 "부의 남자친구가 다른 누군가와 잤다"에서 다른 누군가가 플리백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비밀에 어떤 이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확신하건대, 플리백은 분명 모두가 좋아할 만한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 또한 플리백을 사랑하지만 늘 그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플리백은 자신이 무엇을, 누구에게 잘못했는지 인정하는 것을 내내 피해왔고, 부에게 일어난 일을 우리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비밀은 클레어에 의해 폭로된다.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플리백은 전시회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길가에서 아버지와 마주치고, 둘은 조금이나마 진심이 깃든 대화를 나눈다. 대화 중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게 묻는다. "친구 생각은 하니?" 그리고 플리백은 답한다. "언제나요 (all the time)"

 

그제야 우리는 깨닫는다. 플리백은 충격적인 두 죽음(암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행위로 인한 부의 죽음)으로 인해 일찌감치 깊은 상실의 슬픔을 느끼고 있지만, 건강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처 또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죄책감 또한 느끼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삶에 가득한 비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가벼운 섹스에 집착했고, 제4의 벽 너머로 조크를 날렸다. 그래야만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기에. '제4의 벽 너머'는 다 타버려 재로 뒤덮인 플리백의 세상에 남은 유일한 숨구멍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는 더 큰 상실의 슬픔과 좌절, 고독과 소외를 부추겼다. 삶은 너절해졌고 플리백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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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이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할 때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플리백의 대출 신청을 거절했던 은행 매니저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아버지가 플리백과 클레어를 위해 예약한 명상 워크숍에서 둘은 조우한 바 있다. 이 우연한 만남에서 둘은 약간의 속마음을 나눈다.) 플리백은 기니피그 카페에 앉아 스스로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다 망쳤으니 청산해야죠. 가족도 끝장났구요. 친구 애인이랑 자는 바람에 친구도 망쳐놨어요. 가끔 나란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알고 싶지 않아요.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건 이 몸뚱아리 하나뿐이고 늙어서 섹스조차 못 할 땐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겠죠. 아무도 나랑 자고 싶어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난 모든 걸 망쳐버려요."


플리백의 말을 가만히 듣던 대출상담사는 카페 앞 주차된 자신의 차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에게 들려있는 건 다름 아닌 대출 관련 서류. 그는 플리백을 마주 보고 앉아 "사람들은 늘 실수하죠."라고 말하며 (이에 플리백은 부의 말을 그대로 전한다. "그래서 연필 끝에 지우개를 단 거예요.") 대출 상담을 다시 시작한다.


<플리백> 시즌1에서 플리백은 과거의 행동의 파장을 직면하고, 결국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고통을 동반하는 여정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성장하고 변화한 플리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플리백은 엉망진창이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삶으로부터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조각난 삶을 다시 붙들 준비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의 흔적을 얕게나마 발견하고야 만다.

 

 


안녕! 작별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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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의 끝에서 371일 19시간 26분이 흐른 뒤, <플리백> 시즌2가 시작된다. 그동안 플리백은 자기 훈련과 절제(섹스를 하자고 찾아온 매력적인 남성을 거절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고, 카페 또한 나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시 활기를 띤 그는 어색할 틈도 느낄새 없이, 익숙하다는 듯 우리들에게 재잘거린다. 여전히 말 많고 탈 많은 인물이다.

 

대모와 아버지의 약혼을 축하하는 가족 만찬 자리가 열리고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게 된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어색한 웃음 아래로는 제각각의 갈등이 가득 메워져 있다. 식탁 위로 던져지는 말들 사이에서 플리백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45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내게 질문을 안 해" 그리고 그 순간, (대모와 아버지의 주례를 맡게 되어 식사 자리에 참석한) 신부가 플리백을 바라보며 묻는다. "무슨 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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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플리백은 소위 말하는 '핫'한 카톨릭 사제(이하 '핫 프리스트')를 만난다. 자연스레 플리백은 핫 프리스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실제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관계가 조금씩 단단해질수록 플리백은 제4의 벽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제4의 벽을 넘어 우리에게 쳐야 할 대사(조크)를 핫 프리스트에게 직접 말하기도 하고. 관객들에게만 공유했던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핫 프리스트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핫 프리스트는 유일하게 플리백의 제4의 벽을 인지한 존재이기도 하다. 변함없이 제4의 벽을 깨고 우리에게 조잘대는 플리백에게 핫 프리스트는 불쑥 묻는다. "어딜 다녀온 거예요?" 그는 플리백에게 온전히 집중했고, '진짜' 플리백을 보는 이였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플리백의 증상을 엿본다. (심지어는 나중에 제4의 벽에 대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관계가 진전되면서 플리백과 핫 프리스트 사이에는 로맨틱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둘에게는 커다란 종교적 문제(신의 사제에게 섹스는 금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모종의 일을 계기로 서로의 욕망이 맞붙게 되는데, 플리백이 핫 프리스트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내보이게 되는 사건이다.

 

"두려워요. 자꾸 잊어버려요. 사람들, 사람도 잊어요. 그리고 너무 몰라서 창피해요, 내가.. (...) 아침에 뭘 입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뇨, 누가 매일 아침 그런 얘길 해주면 좋겠어요. 뭘 먹어야 할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해야 할지, 무엇에 화내야 할지, 무엇을 듣고, 어떤 밴드를 좋아하고, 어떤 티켓을 사고, 어떤 농담은 되고 어떤 농담은 안 되는지, 뭘 믿어야 할지 누가 말해주면 좋겠어요. 누굴 투표하고 누굴 사랑하고 어떻게 말하는지를요. 누가 말해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엉망진창으로 산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죠.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니까요. 뭘 해야 할지. 종국엔 어떤 일이 생길지를요. 난 당신이 하는 거짓말 믿지도 않고 과학적으로 내가 뭘 하든 어떤 차이도 없다는 걸 아는데도 여전히 두려워요. 왜 그런 거죠? 이제 뭘 할지 말해줘요. 말해 달라니까요, 신부님."

 

이후 서로에 대한 욕망을 인정하고, 결국 섹스를 하게 된다. 이때 플리백은 처음으로 카메라를 밀쳐낸다. 자신과 핫 프리스트의 가장 내밀한 순간을 우리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여태까지 플리백은 무수한 섹스를 했지만 늘 카메라를 보며 중계하고 농담 따먹기를 했다. 이러한 변화는 온전히 자신에게, 자신의 세계에, 그 세계에 속한 관계에 집중하고 사랑하겠다는 선언으로 비춰진다. 그렇기에 플리백은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간직하고, 그곳에 머물 수 있다.

 

플리백의 이러한 변화는 핫 프리스트뿐만 아니라, 그 외의 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시즌1에서 산산조각 났던 플리백의 삶과 관계는 시즌1 엔딩 - 시즌2로 이어지며 조금씩 봉합되기 시작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시즌2 마지막화의 결혼식 에피소드다. 아버지와 대모의 결혼식 날이 되어 플리백은 가족들과 조우한다. 그는 가족들과 일대일로 마주하며 내면의 이야기, 관계에 대해 말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건 클레어가 동생 플리백에게 "공항에서 드라마 찍는 건 너를 위해서만 할 거야."라고 털어놓는 장면이다.

 

결혼식은 여러 의미로 변화의 장이 되었는데, 핫 프리스트와 플리백의 이별이 그중 하나다. 그는 결국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플리백 대신 신을 선택한다. 플리백 또한 이 가슴 아픈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 이미 길고 긴 길을 걸어오며 내면의 골이 메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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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플리백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던, 제4의 벽에 뚫려있던 구멍 또한 메워진다. 앞서 플리백이 삶에 가득한 비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제4의 벽 너머로 건너왔다는 설명을 한 바 있다. 하지만 플리백이 삶과 그 관계에 집중할수록 플리백과 우리(관객)의 거리가 멀어졌는데, 마지막에 플리백은 카메라 너머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이는 플리백이 엉망진창인 자신의 세상을 잠시나마 떠날 수 있게 만들었던 숨구멍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세계에 속한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플리백'이라는 이름은 극 중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이상한 단어가 그의 이름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그의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플리백>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스스로를 '플리백'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기에, 더 이상의 <플리백>은 있을 수 없다. 그에게 남은 건 '플리백'이 아닌 그의 진짜 이름으로 호명될 순간, 온전한 자신의 삶이다.


 

 

왜냐하면 이건 사랑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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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 시즌2 오프닝에서 플리백은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야."라고 선언한 바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로 마무리되는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고? 맞다. 이 유쾌하면서도 우울하고, 가슴 아프면서도 불시에 웃음을 주는 이야기는 바로 자신에 대한 러브 스토리다.

 

핫 프리스트는 결혼식장에 주례를 섰을 때 사랑에 관해 연설한다. "사랑은 끔찍합니다. 끔찍해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하죠. 자신을 의심하게 해요 재단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하죠 이기적으로 되게 해요. 소름 끼치게 합니다. 머리 스타일에 집착하게 해요. 잔인하게 만들죠. 평소엔 못하던 말과 행동을 하게 해요. 오직 그것만 원하지만 막상 갖게 되면 지옥 같죠. 그러니 혼자선 하기가 싫어져요. 우린 가슴에 사랑을 안고 태어나죠. 그걸 어디에 두는지는 각자의 몫이고요.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옳다고 느끼면 쉬워진다.' 사실인지 전 모르겠어요. 옳은 게 뭔지 알아내려면 힘이 필요하죠. 사랑은 나약한 사람은 하지 못합니다. 낭만적이 되는 데는 많은 희망이 필요해요. 무슨 뜻이냐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희망처럼 느껴진단 거죠."

 

이 연설은 <플리백>의 요약문 같은 대사인데, 공교롭게도 이 연설이 끝나며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쫓는다. 플리백의 아버지와 대모는 결혼을 했으며, 클레어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이를 잡기 위해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간다. 핫 프리스트는 다시 신에게 자신의 믿음(사랑)을 바치게 되고, 뚫려있던 플리백의 심장은 다시 사랑으로 채워진다. (앞서 설명했지만 이로 인해 제4의 벽에 뚫려있던 구멍 또한 메워진다.)

 

극 중 죽은 이로 등장하는 플리백의 어머니와 친구 부는 플리백이 가장 사랑했던 이들이다. 플리백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플리백과 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뭘?" "엄마를 많이 사랑했거든. 그 사랑을 이제 어디에 쏟지?" "나한테 쏟아, 내가 받을게. 나한테 줘야 해." "알았어." "어딘가엔 쏟아야 하잖아." 그렇게 플리백은 부에게 자신의 사랑을 쏟았다. 하지만 부가 죽고 난 후, 심지어 그 죽음이 자신 탓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자행한다. 이는 플리백이 자신의 삶과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섹스와 제4의 벽을 뛰어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삶과 유리된 플리백은 삶 안에 존재하는 관계에 집중할 수 없었고, 사랑을 쏟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란 걸 조금씩 깨달아 간다. 서서히 망가진 관계를 고쳐나가기 시작하고, 점차 사랑의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간다. 그는 마침내 다른 사람들을 발견한다. 진짜 자신 그대로를 바라봐주며,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말이다.

 

결국 플리백은 사랑으로 인해 무너졌고, 사랑으로 인해 다시 일어난다. "우리는 가슴에 사랑을 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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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뜨거운 폭염이 지속되면 열상을 남긴다. 작열하는 사랑은 플리백의 삶에 상흔을 남겼고, 아물기 힘든 것이었기에 그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방치했다. 하지만 이 또한 사랑의 잔흔이지 않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법을 잘 알았던 플리백에게는 다시 사랑을 움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충분했다.

 

<플리백>은 자기혐오와 죄책감의 덫에 걸린 이가 어떻게 다시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우리는 이 여정을 내내 함께하며, 이따금 자기 안의 플리백을 발견했다. 우리 모두 때때로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상실의 슬픔을 대하고, 불현듯 사랑에 열상을 입곤 하니 말이다. <플리백>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니 이건 분명한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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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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