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수면 아래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 벌거벗은 미술관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창비, 2021
글 입력 2021.09.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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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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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영국박물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난다. 목을 꺾어 그 박물관의 특별한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시간에 쫓겨 아쉬움만 잔뜩 가지고 돌아왔지만, 입을 꾹 다문 조각상들의 위엄은 확실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러한 위엄과 진지함에 대해, 책 『벌거벗은 미술관』은 하나씩 쉽게 풀어가고 있다. 책 표지 틈새로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도 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고전’이라는 껍질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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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 창비, 2021, p.25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고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통 미술에서 고전이라 하면,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딱딱하고 클래식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리스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고, 그리스미술을 좋아하고 추종했던 로마인들이 만든 복제본”(p.22)이라고 한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마치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에 나오는 주인공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평생을 위조품을 진품으로 착각해 빚을 갚는 그처럼, 고전 미술의 정수, 조각상을 꽤 위엄있게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리스 조각이 완전히 순백색의 대리석 조각은 결코 아니라(p.24)는 점이 놀라웠다. 왜 그리스 조각의 색이 다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들이 오로지 순백색이었던 이유는 “이상적인 피부의 재현”(p.25) 때문이었다. 티끌 하나 없는 이 조각상에서 인종주의적인 시각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흑백 논리는 미술에도 반영되어있었다. 책은 미대 입시의 전형이었던 조각상으로부터 시작해, 그리스 조각의 진실, 그리고 황금비, 올림픽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웃지 않는 걸까, 웃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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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조각상에는 색도 없었지만, 표정도 없었다. <라오쿤 군상>처럼 이빨이 보이는 조각상은 흔치 않다. 제2장에서는 “문명의 표정”이라는 제목으로 흐름을 이어나간다. 저자는 긴장된 순간에도 무표정을 유지하는 조각상은 철학과 맞닿아 있음을 밝혔다. (p.92) 당시 플라톤과 스토아철학 역시 이성 중심적 사고와 금욕주의 때문에 웃음은 거부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지나 다양한 표정들이 점차 나오기 시작했다. 모나리자의 미묘한 미소와 렘브란트의 호탕한 웃음처럼 말이다. 또 책은 현대로 넘어와, 인간의 감정인 웃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렇게 저자는 웃음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구성에 독자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수면 아래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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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은 박물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박물관은 문화유산의 집합체이다. 각 시대의 흔적이 묻은 유물들이 모여있는 박물관은 하나의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하지만 그 세계가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소장된 유물들은 약탈한 결과였고,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박물관의 위엄에 가려진 진실을 이야기하며, 영국박물관의 이면을 서술하고 있다.


우선 영국박물관이 설립될 당시, 한스 슬론의 공이 컸다고 한다. (p.165) 그는 부유한 의사였고, 엄청난 수집가였다. 의사였던 만큼 그가 모은 유명한 유물들은 자연과학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가 모은 유물에는 동식물의 표본부터 판화나 드로잉 작품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박물관은 마법 세계 같았을 것이다.

 

이후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외교관인 엘긴 백작이 오스만 정부로부터 파르테논 신전 지붕 외벽의 페디먼트 조각을 뜯어온다. (p.173) 이밖에도 정당하지 못한 수집들이 쌓여 지금의 영국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이집트, 중국, 나이지리아 역시 약탈당한 문화재를 반환하라고 요구하지만, 영국박물관은 내어주지 않았다.


ICOM에 따른 박물관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박물관은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공중에게 개방되는 비영리의 항구적인 기관으로서, 학습과 교육, 위락을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대한 유형ㆍ무형의 증거를 수집, 보존, 연구, 교류, 전시한다.” (ICOM 박물관 윤리강령)


위처럼 비영리적이고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약탈로 비롯된 것이라니, 살짝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국박물관은 박물관의 기초에 기여했고, 발달시켰다. 이렇게 글을 읽어가다 보니, 박물관에 걸린 초상화 속 인물과 조각의 무표정은 마치 백조처럼 보였다. 물 위에서 평온한 모습과 달리 수면 아래에서 쉴새 없이 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과거 미술관과 박물관은 수많은 동적인 역사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과거로부터 나아가 미래의 박물관으로 장을 마치고 있다. 인간의 문명과 발전을 위해 존재했던 장소였던 박물관은 향후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말이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미술관 펜데믹”이다. 현재 코로나 19가 그렇듯이, 흑사병은 서양미술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였다고 한다. (p.226) 그와 관련된 미술 작품, 문학을 엮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인간적인 미술에 대해 말한다. 어렵고 무거운 미술이 아니라, 인간의 오류와 실수가 만들어낸 미술에 관해서 말이다. 이렇게 책은 미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독자가 미술과 더 친해지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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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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