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롤 모델, 미스미 미코토 [사람]

각자의 자리를 멋지게 지켜내는 이야기
글 입력 2021.08.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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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롤 모델은 누구입니까?


자기소개 질문에 수없이 등장하는 이 질문은 늘 나를 긴장시켰다. 어떻게 답변해야 나의 가치관을 보여주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엄마를 늘 존경하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부모님을 롤 모델로 대답하는 사람이 많아 진부한 구석이 있었고, 위인전에 나올법한 유명인사를 들기에는 그들의 인생을 내가 속속들이 다 알 수 없어서 찜찜한 면이 있었다.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롤 모델로 삼을 사람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도 싫었다. 나의 롤 모델은 최대한 무결점이었으면 했다. 살아있는 인간을 롤 모델로 삼으려면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모든 인간은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정말로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을 발견했다. 살아있는 인간은 아니고, 창조된 인물로 일본 드라마 <언내추럴>의 주인공 법의학자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 분)다.

 

 


법의학자, 미스미 미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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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은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이유를 밝혀가는 법의학 드라마이다. 드라마에서 미스미 미코토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능력 있는 법의학자로 묘사된다.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 <언내추럴>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웰메이드라는 평가에 걸맞게 정말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드라마는 매 회차 빈틈없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짜릿함을 안겨주었고, 노동, 전염병, 학교폭력 등을 조명하며 사회문제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보여준다. 한 회차 안에 하나의 사회 이슈를 담음으로써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해 볼 생각들을 툭툭 던진다.


법의학자의 이야기이기에 모든 회차마다 슬픈 죽음이 등장한다. 이때, 미코토는 법의학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미코토는 감정에만 흔들려서 일을 그르치는 사람도, 기계적으로 일만 하며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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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문단에는 작품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매 회차 좋지 않은 에피소드가 없었지만, 특히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이 에피소드에서 미코토는 화면으로 생중계되는 모니터 너머의 시신을 보고 그가 죽은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은 아이의 사망 사인은 학교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학폭 가해자들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려는 의도가 있는 타살로 가장한 자살이었다.


이때 미코토는 죽은 아이의 몸에 다 낫기도 전에 새로 생긴 멍을 통해 집요한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법의학적으로는 자살이지만 죽은 아이가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는 괴롭힘이라는 이름의 살인. 눈에 보이는 결과는 직업적 존중을 가지고 대하지만,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만 알 수 있는 맥락과 동기 대한 공감이 더해져 울컥한 순간이었다.


 


미코토를 닮고 싶은 이유


 

내가 아마 아주 어렸더라면 미코토를 보면서 법의학자를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CSI와 관련한 책을 읽고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충치가 많아서 치과를 많이 다니다가 치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던, 단순한 흥미를 직업과 연관시키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도 전공이 있고, 나의 성격과 적성에 대해 잘 아는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는 그것을 업(業)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직업을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고, 그들의 노고에 존경심을 표하며, 직업인으로서의 멋진 삶의 태도를 닮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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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미코토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위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명대사의 유명세 때문에 드라마를 보기 전부터 대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배우의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 것을 들었을 때 삶의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명쾌한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유쾌하지 않은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자의식으로 절망에 잠식되지 않고, 하루하루를 일과 일상으로 균형과 선을 지켜나가는 모습. 옳고 그름 앞에서 직업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동료들의 지지를 받아 뜻을 관철시키는 강인한 모습이 무척 닮고 싶었다.


 


각자의 자리를 멋지게 지켜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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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토를 보면 다른 직업군에 있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난 7월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초등학교에 1-2학년 긴급 돌봄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만났던 기존의 돌봄 선생님은 미코토처럼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을 하고 계셨다.


내가 본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가장 우선시하는 참 교육자였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방과 후에 학교에 맡겨진 아이들을 시간 때우는 식으로 보육하는 게 아니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활동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내셨다. 또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하나씩 떠나면 교실에 아이가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으셨다.


교실에서 항상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 주시고, 선생님은 어른이고 아이들은 어린이라는 점을 인지시켰다. 어른은 어린이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교실에서 지켜야 할 방역수칙에 대해 매일 교육하시는데 우리 반의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치며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요동쳤다. 선생님은 그때 내가 무척이나 코끝이 찡했다는 점을 아직도 모르실 거다.


선생님께 교육을 잘 받은 덕인지, 아이들은 환기를 위해 교실 문을 항상 열어두었고, 물을 마실 때는 자발적으로 복도에 나가서 마셨으며, 급식을 먹다가 내게 질문이 있을 때는 자신의 입을 가리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왜 입을 막고 말을 할까 궁금했지만 이내 밥을 먹느라 마스크를 벗고 있어서 대신 손으로 가렸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의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으로 벅차올랐다.


때로 학교에서 일을 추진하다 보면, 어떤 결정은 완전히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 아닐 때도 있다. 내가 어찌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이건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며 다른 선생님들께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무척 든든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선생님을 무척이나 존경하게 되었다.


어떤 직업이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해내는 직업인이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그 선택이 당장 자신의 이익에는 반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다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용감한 결정을 내리는 직업인이 너무나도 멋지다.


아직 미래의 내가 어떤 직업인으로서 살아갈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나아가는 길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 성취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미래가 나아가는 방향과 같으면 좋겠다. 부조리함에 지지 않고 미래를 위한 길을 걸으며 일과 일상을 잘 챙기는 직업인이 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먼저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는 큰 힘이 된다. 드라마 속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그 속에서 열심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미코토에게 마음을 기대어본다. 나의 롤 모델, 미스미 미코토. 현실과 마음이 부딪혀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들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미코토를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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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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