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관은 말해주지 않는 미술관의 비밀 - 벌거벗은 미술관

미술관을 방문할 때 도움이 될 알짜 지식들
글 입력 2021.08.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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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책에 대한 느낌은 고급스러운 미술 교양 강의를 가까이에서 청강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딱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미술사를 가볍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지금부터 네 장 중 두 장의 주제를 골라서 리뷰를 써보려 한다.


 

 

1장 : 고전은 없다 - 전쟁으로 이어진 예술, 예술로 이어진 전쟁



첫 장은 제목부터 상당히 파격적이다. 고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읽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제목이다. 1장에서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누드화에 대한 비밀, 고전에 대한 오해 등을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이상화된 그리스 조각상의 모습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장이었다.


고전주의의 아름다움이 그리스 전쟁에서부터 기원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예술이 철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전쟁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워야했고, 이를 위하여 탄탄한 신체를 가진 건장한 이들과 체력을 키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신의 모습에 가까운 ‘육체미’는 그리스 시대 미술의 중요한 기준이자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가 서양 미술의 근본이라고 하며 고전주의를 표방하는 후세의 세력들에 의해 계속 발전해오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이어져 온 르네상스 이후부터 근대까지의 예술관은 특정한 법칙에 의해 미가 결정된다는 결정론에까지 다다랐다.


히틀러는 이를 우생학적 결정론과 연결시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리아인의 신체적 특성을 부각시켰다. 올림픽의 기원이 그리스인만큼 당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화를 보면 히틀러가 올림픽을 이용해 얼마나 교묘하게 나치 사상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입증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미지를 통해 인종적 신화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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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 - 2부>의 포스터

 

 

하나의 전쟁이 다른 하나의 전쟁으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그리스 군국주의 문화의 발로로 탄생하게 된 것이 신체 누드 조각상이었다. 그런데 신격화된 조각상을 자신들과 닮았다고 보고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조각상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언제나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의 사고를 반영한다. 그저 외관적으로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작품에서도 작품의 창작 배경을 알고 나면 어두운 측면이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1장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였던 것 같다.


이상적인 그리스 조각상의 모습 속에도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씨앗이 숨겨져 있었듯, 어떠한 이상적인 작품이더라도 그 안에 감춰진 맥락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에 삼켜져 어느 새 괴물이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장 : 문명의 표정 - 예술 작품과 웃음의 관계



두 번째 장에서는 ‘웃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미술 작품들 중에선 웃음 짓는 인물들이 비교적 많이 없는 편인데 왜 그런 것일까. 실제 생활이나 삶 속에서 우리는 잘 웃는 반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대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특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들을 추적하며 웃음이 없는 이유를 알아본다.


작가는 고대 세계의 미술 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아르카익 스마일’이 나타난다는 것에 착안한다. 그러면서 고대인들이 삶의 충만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냈다는 한 학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실제로 아파이아 신전의 죽어가는 전사상의 얼굴을 보면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온화한 표정을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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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30년 경 <코레> 조각상의 얼굴 부분

 

 

그러면서 작가는 ‘람세스 2세 흉상’이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예시를 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각상에 나타나는 어색한 미소인 ‘아르카익 스마일’은 삶을 위로하거나 예찬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서양에서는 그리스 고전기를 맞아 조각상을 이상화시키기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조각상에서 웃음기가 사라져나간다.


이런 묘사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 개개인의 특성을 지우고, 이상화된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독교가 중요해지는 중세 시대에 가서도 얼굴 표정을 드러냄에 있어서 엄숙한 절제의 표현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류의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옹호하는 입장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는 곧 신학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웃음을 인간의 자연스런 특성이라고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건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부터이다. 그 유명한 ‘모나 리자’가 대표적인 예이며, 웃음만이 아니라 다른 표정들도 더욱 자주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크가 되면서는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


결국 웃음이 없는 초상화나 작품의 경우, 당시의 사회 문화를 지배하는 종교나 철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과 스토아철학의 금욕주의가 ‘그 시대의 무표정’에 일조했듯이 말이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불행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행복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을 빼앗기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현대에 와서는 보다 다양한 층위의 웃음과 웃음의 이면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배트맨에 나오는 빌런인 ‘조커’나 ‘그것’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광대 등이 그렇다. 작가는 ‘웃는 남자’라는 작품이나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연 중국의 화가 유에민쥔에 주목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만족스럽거나 행복해서 미소를 짓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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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민쥔, __EXPRESSION__ in Eyes, Oil on Canvas, 240x200cm, 2013

 

 

주인공들은 모두 무엇인가 결핍된 존재이다. 따라서 그들이 짓는 미소는 반어적으로 해석되곤 한다. 사회의 부조리함, 허망함, 속절없음에 대한 미소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짓는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미소에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을 표한다. 이는 곧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공감을 한다는 뜻이다. 역설적인 웃음은 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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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2019)의 스틸 컷

 

 

1장과 2장의 주제인 ‘고전의 실체’와 ‘예술의 웃음’을 읽음으로써 미술사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미술과 역사가 합쳐진 미술사는 단지 미술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예술 등 다양한 학문을 아우른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책을 더 많이 찾아 독서함으로써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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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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