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향기이야기, Prolog

프롤로그
글 입력 2021.08.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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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억되고 싶은 자와 잊혀지고 싶은 자. 전자는 호랑이의 죽음이 가죽으로 이어지듯이 무릇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이름 석자쯤 적어 놓아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감을 것이다. 후자는 후대의 기억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며 죽음 뒤 모습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아 그저 조용히 살다 떠나 감에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억되고 싶은 자, 잊혀지고 싶은 자, 그리고 그 둘 모두를 원하는 자.

 

나는 기억됨과 잊힘을 모두 원하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 전에 간단한 소개를 해보자면, 나는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지 갓 2년이 넘어 햇병아리 새내기도 연륜 있는 선배도 아닌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롤로그를 처음으로 칼럼의 ‘Sillage를 따라서’ 카테고리의 전문 필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 향 브랜드 ‘OVMUTE(오브뮤트)’에서 조향, 디자인, SNS, 브랜드 운영 등 모든 것을 담당하여 운영 중이기도 하다. 향 브랜드에서 조금은 감이 왔을지도 모르지만 이 칼럼에서는 ‘향기’에 관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향기를 참 좋아한다. 비단 향수나 룸스프레이 같은 향 제품뿐만 아니라 음식도 다채로운 향기들이 조화롭게 섞인 것을 좋아한다. 특히 술은 자주 찾진 않지만 제품 이야기를 읽는 것 만으로도 궁금해지는 향 설명들이 가득해서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어쩌면 앞서 말한 나의 성향이 향에 대한 나의 사랑을 더욱 키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됨과 동시에 잊혀지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기도 잊혀 지기도 싫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으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흔적 없는 흐릿함으로 남고 싶다. 기억됨과 잊혀짐, 향은 이 두가지 속성 모두를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냄새를 지닌 사람은 어떠한 향도 느껴지지 않는 무취의 사람보다 관심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향기이거나 악취이거나 관련없이 말이다. 그렇게 기억에 각인됨과 동시에 향은 잊혀져 간다. 아주 익숙하고 자주 노출되는 향이 아니라면 직접 후각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특정 향기를 명확하게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덕분에 향은 짧은 인연 에게는 흐릿한 인상만을 남기고 오래된 인연 에게는 떠오르는 추억을 남긴다.

 

칼럼의 제목인 ‘Sillage’는 이러한 향의 특성과 매력이 잘 드러나는 단어이다. Sillage는 프랑스어로 ‘향이 지나간 자취, 잔향’등을 의미한다. 향을 입은 사람이 지나간 뒤로는 잔향이 남아 길을 만든다. 그 길을 마주칠 때 우리는 뒤 돌아보기도 하고 느낌을 각인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길은 빠르게 희미 해져가며 결국은 영영 사라진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향’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다시 떠올리지 못한다. 그 존재를 분명하게 인지했음에도 잊혀진다.

 

하지만 형태를 잊었음에도 더듬을 기억은 남는다. 향기는 기억되고 있는 순간에도 잊혀져 가고 있을 뿐이다. 향을 입을 때면 기억과 망각이 공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을 때면 나는 향을 찾는다. 비단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명확치 않은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은 매력적이다. 같은 향도 누가 느끼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며 다른 기억을 남긴다. 때로는 나의 기억 안에서도 명확치 않게 존재한다. 내가 향을 기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용히 잊혀 지길 원하는 망각 속에서도 선명히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런 향이 있다. 후에는 되려 향을 통해 기억이 불러와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더 생생하고 날것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향을 기록해 나간다.

 

다만, 이제까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왔다면 이 공간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향을 인지하고 기억하기를 바라며 향기에 관해 알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스스로의 Sillage를 되짚고 따라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오감의 일부를 온전히 쓰는 행복을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바란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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