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개의, 개에 의한, 개를 위한 (Being Dog) : 윌리엄 웨그만 展, Being Human

글 입력 2021.08.27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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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은 회화, 드로잉, 사진, 영화, 비디오, 서적, 퍼포먼스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 천재적인 예술성을 지닌 아티스트다. 다재다능한 그를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그의 특별한 뮤즈였다. 독일 바이마르 지방의 귀족이 사냥을 위해 개량한 개인 바이마라너는 웨그만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윌리엄 웨그만은 자신의 반려견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상과 문화, 패션 등 인간이 향유하는 삶의 생기를 표현하고, 입체주의, 색면회화, 구성주의 등의 예술 사조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이번 전시 은 제목처럼 바이마라너가 인간을 대신해 인간다움을 보여준다.

 

 

 

유쾌한 기묘함


 

사람들이 일상이나 예술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개가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양가감정이 오갔다. 사람처럼 옷을 입은 개들의 늠름한 차림에 감탄도 했고, 월요일을 우울해하는 작품을 볼 때는 묘한 동질감에 유쾌함을 느꼈다.

 

<가면무도회> 파트에서 다른 동물의 탈을 쓴 모습은 귀여웠고, 개의 얼굴을 한 인간이 실제로 길거리나 집안에서 일상을 보내는 영상의 현실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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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On Base, 2007

©William Wegman


 

그러나 섹션 7 <누드> 파트에서는 조금 달랐다. 몸은 인간의 근본이기에 처음 미술을 시작하면 기본으로 배우기도 하고, 평소에는 천으로 꽁꽁 싸여진 인간의 몸이 작품이 되어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의 본연의 미가 있기에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누드화일 테다.


그러나 개는 조금 다르다. 길거리에서도 옷을 입은 개보다 맨몸의 개들을 훨씬 많이 보지 않는가. 그런 개의 모습을 누드화라고 인식하니 인간의 누드에 대해서도 미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개의 정면과 측면을 화면 가득 채운 작품인 <정면>과 <벽>이 특히 그랬다.

 

이처럼 개의 신체 일부를 찍은 모습이나 여러 개들이 함께 누워있는 작품들에 “누드”라는 라벨이 붙는 것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와 인간



이 전시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모든 작품 속 주체가 개라는 점이다. 인간과 가장 친밀한 동물인 개가 우리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족동물인 개가 두 발로 서고, 맨몸이 익숙한 개가 사람처럼 상하의를 입은 모습이 주는 이질감 속에서 우리는 묘한 친근함을 갖는다. 아기가 어른들의 화장을 어설프게 따라 하고, 나름대로 어른스러움을 내세우는 것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개를 앞세운 전시였으나 필자가 정의 내린 이 전시는 ‘가장 사람다운 전시'였다. 전시 속의 모든 인간들은 인종, 성별, 나이를 비롯하여 인간 사회가 규정한 모든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웠다.

 

개로 치환된 다양한 인간 군상은 우열이 삭제된 채 그저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존재할 뿐이며, 심지어 <누드> 섹션에서조차 대상화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온통 개로 도배된 전시장 속에서 어떤 요소들의 방해 없이 그저 ‘사람’임을 인식할 수 있었던 모순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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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Casual, 2002

©William Wegman

 

 

 

인간이 된 개


 

이 전시의 또 다른 특별함은 각 섹션에 들어서기에 앞서 적혀 있는 안내글이다. 필자는 섹션 2인 <가면무도회>의 캡션을 이해하지 못해 세 번 정도 다시 읽었다. 견종으로 알고 있는 ‘바이마라너’가 마치 존재했던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아함을 품은 채 섹션 4에 들어서면 우리는 섹션의 제목처럼 <환각>에 빠져든다.


전시 속에서 바이마라너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행해진 무도회가 존재할 만큼 유래 깊은 전통을 자랑하며, 예술계 거장의 오랜 친척이자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우아한 개들은 완벽히 인간의 삶을 향유하고, 훌륭한 명작들을 배출하며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인간을 훈련시킨다. 수많은 인간들 중 간택된 일부만이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자신을 훈련시킬 기회를 얻게 되며, 인간은 엄두도 못 낼 과감한 자세를 기록하도록 교육한다.

 

인간이 찍혀야 할 자리에 바이마라너가 올라선 순간, 어쩌면 개와 인간의 위치는 전복되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 전시 안에서만큼은 웨그만은 그저 바이마라너의 명예로운 간택을 받은 충직한 반려인이자 사진 기사였을 뿐이다. 바이마라너는 서서히 전시의 제목처럼 , 즉 사람의 위치에 올라서서 자신들의 작품에 감탄할 인간들을 기다린다.


우리는 그들과 동등한 격체로서, 어쩌면 그보다 낮은 존재로서 그들의 삶과 예술을 관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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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Eyewear, 1994

©William Wegman

 

 

 

반려인도 함께 관람할 수 있어요!


 

개와 인간이 전복된 전시는 마치 반려인 출입이 가능한 특별한 견들의 전시에 초대된 느낌을 받는다. 타자화된 우리가 바이마라너가 펼친 그들의 예술관을 그들의 허락하에 살펴보면 바이마라너 안에 스며든 웨그만의 깊은 애정을 맡게 된다.

 

‘애완’동물이라 불리던 개가 ‘반려’동물로 인식된 지금, 인간과 개의 관계가 어디까지 끈끈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전시라고 생각한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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