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 [사람]

글 입력 2021.08.26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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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대학교에 막 입학한 새내기 때였다. 월요일 첫 과목, 첫 수업에 늦게 일어나 결석을 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학교 가라고 깨우는 누군가도, 학교에 왜 안 오냐고 전화 오는 누군가도 없다는 사실을. 성인이기에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짊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도통 이해되지 않는 수업과 과제, 더불어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잦은 발표 수업이 힘들기만 했다. 낯선 대학을 벗어나 어딘가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밤중에 영화관으로 걸어가 임순례 감독님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를 관람했다.

 

영화는 힘들고 지치면 쉬어가도 괜찮다고, 너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서 휴식을 취해보라고 위로했다. 나에게 그 위로는 정확하게 먹혔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요리를 해먹는 일, 또 어릴 적 함께 지냈던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이 한데 모여 대화를 하며 즐겁게 노는 일이 그녀만의 리틀 포레스트였다. 그곳에서 혜원은 서울에서 힘들게 아르바이트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와는 다르게 행복해 보였다. 나아가 한걸음 성장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도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혜원처럼 살고 싶다’하는 생각이 무심코 떠오를 수도 있겠다. 고개를 돌리면 논과 밭,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는 필자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 나에게 농사는 안식처나 쉼, 다시 말해 ‘리틀 포레스트’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군대를 전역하고 아버지가 취미로 하시는 밭일을 도와드리면서 느낀 건 나에게 농사는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잠깐씩 손을 도우는 정도임에도 내리쬐는 태양 볕과 벌레의 습격을 견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편안한 마음을 갖기는커녕 순간적인 짜증이 날 때도 많았다. 모든 일들이 생각과 같지 않다는 걸 그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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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님의 농사


 

외가댁 조부모님은 두 분 모두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다. 외할아버지는 구순을 앞두고 있는 고령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부모님은 매일같이 농사를 지으러 밭으로 가신다. 본인들의 밭을 일구기도, 마을 사람들의 밭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똑똑하셨지만 돈이 없어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할머니는 전쟁통에 고아가 됐다. 당시 시골마을에서 이들이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이란 농사뿐이 없었을 것이다. 조부모님에게 농사란 쉼이 될 수 있는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라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야 했던 ‘노동’이었다. 칠 남매를 키워야 했고 이들이 다 큰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농사는 군대를 막 다녀온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해도 힘든 일이란 걸 몸소 깨닫게 됐다. 더운 태양 볕과 벌레들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이겨내기 힘들 테지만 고령의 조부모님은 그 힘든 농사를 매일같이 해내신다.

 

어머니를 포함한 자식들이 일을 그만하라고 말리지만 조부모님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하러 밭으로 나가신다. 어쩌면 이들에게 농사란 습관일지도 모른다. 평생 동안 해오던 일을 어느 한순간 그만두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쉼 없는 일상이 고되었을 그들의 시간들이 때론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버지의 농사


 

몇 해 전부터 아버지는 취미로 농사를 지으신다. 수확이 크진 않지만 계절에 맞게 다양한 작물을 심으신다. 필자는 아버지가 혼자 일하시면 심심하실까 가끔씩 가서 손을 돕고 있다. 봄에는 감자와 고추, 옥수수를 심고 여름에는 깨를 심으셨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봄에 심었던 작물들을 수확하시고 다시 배추를 심으셨다.

 

아버지는 큰일이 없으면 매일 밭에 나가서 일하신다. 다만 조부모님처럼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 보니 천천히, 쉬엄쉬엄 일하신다. 심을 수 있을 만큼만 심고 수확할 수 있는 만큼만 수확한다. 억지로 욕심내서 무리하면서까지 일하시진 않는다. 아버지에게 농사는 영화 속 혜원과 재하처럼 ‘리틀 포레스트’인 것이다.

 

우리 가족은 밭에서 직접 기른 수확물로 요리를 해먹는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 크기는 대체로 작지만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친환경 농산물이다. 농사를 하며 흘린 땀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서 집으로 오실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매일같이 밭에 가시는 이유는 농사가 마음의 쉼을 주는 리틀 포레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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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리틀 포레스트


 

위에서도 언급했듯 영화 속 혜원과 재하처럼, 그리고 아버지처럼 나에게 농사는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조부모님과 같은 노동에 가깝다. 그럼에도 씨를 뿌리며 수확할 그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 또 열매를 거두며 함께 나눌 사람들과 그 행복한 식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등, 농사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새내기 시절, 무심코 농사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처럼 무엇이든지 해보지 않고서 속단하거나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그래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그 무엇을 말이다. 어쩌면 자각하지 못할 뿐 주변에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버지와 같이 심어놓은 깨가 쑥쑥 자라나고 있다. 아버지는 거름을 안 줘서 그런지 잘 안 크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지만 가끔 가서 보는 내 눈에는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얼른 커서 비빔밥에 넣어 먹을 수 있는 들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전에 잡초도 뽑고 깨도 털고 방앗간에 가서 짜기도 해야 한다.

 

삶은 이 모든 농사의 과정과 닮았다. 씨를 뿌리고 계속해서 관리해 주고 아껴줘야 한다. 병충해와 들짐승들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겨내야 한다. 그 모든 고된 과정 끝에 수확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어디쯤 와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멈춰있는 것만 같은데 다른 누군가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쉬어도 될까 고민하며 그 쉼을 쉼답게 만들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민과 쉼의 시간을 잘 이겨낸다면 반드시 어떤 결실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누군가의 노동도, 누군가의 리틀 포레스트도 다 삶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로 가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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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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