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의 쓸모'에 대한 유쾌하고 묵직한 대답 : EBS 다큐 프라임. '1부' 춤, 바람입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8.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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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쓸모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채널을 돌리던 손이 멈췄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요즘 내가 하는 고민과 닮았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에는 줄 세우기가 시작되었다. 감염병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대책을 세웠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골라내는 기준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나는 그래서 그 기준이 ‘쓸모’와 밀접하게 연결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대책 마련을 위한 줄 세우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그동안 관심이 있던 예술은 어디쯤 가서 서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사람들은 예술과 쓸모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19의 영향력이 마구 커지던 작년에 여러 공연장과 전시장들은 문을 여닫기를 반복했다. 예술을 위한 장소에는 엄격한 규정들이 적용되었으나,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 앞에서, 나조차도 예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대답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예술과 쓸모라는 이 낯선 주제는 그때부터 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TV에서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놀라운 제목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의 쓸모를 전면에 내세운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무슨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진자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EBS 협력, EBS 다큐프라임 '예술의 쓸모' 방영_회차별 스틸컷_210805 (1).jpg

 

 

1부는 지하철 청소 노동자와 무용에 대한 것이었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춤에 관심 있는 환경미화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붙었다. 춤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진 9명의 참가자가 이 댄스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게 된다. 각자가 프로젝트를 참여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반문하듯 던진 한 참가자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춤추고 싶을 때 없어요?“

 

춤을 추기로 마음먹으려면 대단한 동기나 거창한 이유가 꼭 있어야만 할 듯싶지만, 사실 예술을 하는 이유는 이처럼 간결하다. 또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 가고 싶은 것처럼, 춤을 추고 싶은 것도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함께 춤을 추는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춤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사교댄스를 떠올렸던 참가자들에게 워크숍의 내용은 당혹스러웠다. 몸으로 이름을 쓰기 위해 허공을 휘젓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상황은 난감하다. 이거, 춤 가르쳐 주는 것 맞나? 의심도 든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춤은 해야 하는 동작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비전문가인 우리의 영역에 대해 이렇게 한정 지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동작을 만들어내고, 내 삶을 움직임으로 가져오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당연히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였다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지 않았을까?

 

이게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동안에도 워크숍은 계속된다. 모두 당황스러운 춤 수업에도 성실함을 잊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참가자 각자의 삶과 댄스 워크숍의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각자가 살아온 일상이 어떻게 춤이 되는지, 또 각자의 일상에 어떻게 춤이 녹아드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점차 의문투성이의 불만을 내려놓고, 일상에서도 춤에 몰입한다.

 

참가자들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책상에 앉아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용기를 가지고 직접 해보고, 성실함을 가지고 이어 나가면서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냈다. 일하는 틈틈이 스텝을 되새기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깊이 부러웠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몰입은, 용기와 성실함을 가진 사람들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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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워크숍에서는 지하철이 품고 있는 삶이 그대로 춤이 되었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느끼는 감정, 여기저기 치이며 더해지는 피로감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 동작이 된다. 또한 참가자들의 일상 속 노동도 동작이 된다. 청소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비누칠하는 모습. 안전한 운행을 위해 반복하던 수신호도 춤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

 

춤이 공연이 되어 무대에 오르고, 한 참가자는 제작진을 향해 질문을 남겼다. 왜 지하철 환경미화원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것이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제작진은 아니지만, 그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변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은 일상적이고 익숙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의 일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

 

이들의 삶을 발견하는 일은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과 닮았다. 우리 근처에 분명히 있지만,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치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 일상과 예술이 가지고 있는 실제 거리감은 딱 그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닿을 수 있지만, 고개 돌려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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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BS 다큐 프라임 공식 홈페이지

 

 

지하철 노동자들이 보여준 공연은 흥행이 담보된 블록버스터 공연 같았다. 그 안에는 관객들이 사랑하는 모든 에피소드가 다 있으니까 그렇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 동료 간의 더없이 끈끈한 동료애, 직업에 대한 애정과 보람, 그것을 얻기 위한 오랜 시간까지.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고 도전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견디는 모든 시간이 들어있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무용이라는 장르 안에 익숙하고 가까운 감정들이 담겨 있어서,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보여줄 수 없는 공연이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감정으로 연결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쓸모를 느낀다. 그리고 일과 생활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기억해 냈다는 참가자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쓸모를 발견한다. 누구에게나 생소할 법하지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많은 예술의 쓸모를 위해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틀에 갇히지 않고, 수동적이지 않을 예술을 할 기회가 필요할 것 같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믿고 실천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아직도 발견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EBS 다큐 프라임 <예술의 쓸모>는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2부와 3부에서는 또 다른 시선에서 쓸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예술가들,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확인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1부에서 가장 많은 대답을 얻었지만, 각자가 필요한 이야기는 다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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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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