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 앞에 놓인 책 뒤에 위대한 편집자가 있다 - 편집자의 세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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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편집자의 세계》는 미국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15명을 소개한다. 자세하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출판·잡지계에 입문했는지, 그리고 무명의 작가를 어떤 계기로 발견해 스타로 키워냈는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한 편집자상은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지은이 고정기'라는 사람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지은이 고정기의 첫 직장은 월간 여성 잡지 <여원>이다. 학원사가 1955년에 창간한 이 잡지는 이듬해 독립해 교양, 오락, 생활 정보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도 실었다. 이후 그는 <월간중앙>, <여성중앙>, <주부생활>에서 잡지 편집자로 활약했으며 후에는 을유문화사 편집주간과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당시만 해도 편집자라는 단어는 뿌리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세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국 출판 편집자 1세대인 고정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편집자라 규정했다.
- 지은이 고정기 소개 글 中
처음 이 책을 집어 들면서 왜 하필, 국내가 아닌 미국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엮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고정기 선생님은 이 책을 펴낼 때만 하더라도 편집자라는 직업의 특수성과 정보의 방대함을 다룬 국내 저작이 없어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책의 맨 끝 추천사를 작성한 이권우 도서 평론가는 미국이나 우리나, 20세기 중반이나 최첨단의 21세기나, 편집자의 세계는 거의 같다고 덧붙인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퍼트넘의 편집국장인 윌리엄 타그의 일과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타그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편집자의 하루 일과를 대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몇 문장은 중략하였습니다.
오전 8시 반에는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한다. 9시까지 아침에 배달된 우편물을 처리해야 한다. 편지 정리가 끝나면 저자 대리인이 출판해 달라고 보내온 두 가지 원고의 개요를 읽는다. (중략)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신진 작가를 만났을 때 할 이야기를 미리 메모해 둔다.
11시, 두 개의 원고가 배달된다. 12시, 한 문예물 대리인과 함께 점심을 든다. (중략) 저자로부터 문의 전화가 온다. 왜 자신의 책을 8가 서점에서 팔지 않냐는 항의에 가까운 전화다. (중략) 우리 회사의 편집자 중 한 사람이 긴급하게 제안한 기획 회의에 참석한다. 워싱턴의 요인이 쓴 원고의 내용 설명서를 놓고 토의한다.
4시 30분, 오늘 한 일을 정리하고, 비서가 쓴 편지에 사인을 한다. 저작권 부장과 잡담을 나눈다. 뭔가 좋은 소식은 없느냐고 의견을 나눈다. 5시 반 퇴근,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7시, 브라질에서 온 출판인을 만나 가볍게 한 잔,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8시 테이블을 예약한다. 11시경, 브라질의 출판인과 헤어진다. 그 후 원고를 50쪽 정도 읽는다. 첫머리가 좋아서 읽었더니 속았다. 졸작이다. 대리인에게 내일 아침, 결과를 알려주기로 한다.
취침,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 아침의 편집 회의를 생각한다. 몇 가지 기획에 관한 검토를 하는 사이에 어느덧 잠들고 말았다.
- 본문 p.320-326 / 윌리엄 타그, <발칙한 갖가지 기쁨들> 中
아주 짧게 엿본 편집자의 하루는 바쁘다. 물론 모든 편집자가 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윌리엄 타그는 유난히도 바쁜 편집자였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윌리엄 타그의 하루 일과를 통해 어느 정도 편집자의 역할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일은 원고를 읽고, 작가와 저작권 부장과 출판인과 같이 출판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편집자는 어떤 사람일까?
편집자란 어떤 사람인가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고 연출자이며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고정기 선생님은 편집자는 중매자이고 연출자이며 촉매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정리된 문구만으로는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고정기 선생님은 '편집자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 대신, 15명의 미국 명편집자들의 말과 글을 엮어낸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증명한다.
그(편집자)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촉매여야 한다. 위대한 책은 오직 한 사람 - 그 책을 집필하는 저자-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편집자는 다만 그 책을 집필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그 책을 쓸 수 있도록 저자를 도울 뿐이다.
- 본문 p.131 / 캐스 캔필드의 <출판의 경험> 中
<하퍼 앤 브라더스>의 편집장, 캐스 캔필드는 책을 집필하는 것은 저자이며, 편집자는 저자를 돕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이것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가? 사전에서는 무어라 정의하고 있든 간에 편집자의 정확한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의미에 있어서 그는 출판인이다. 중개업자이기도 하다. 편집이라는 것이 정확한 과학도 아니고 기술이 필요한 전문 지식도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은 상투적인 표현이다. 편집자의 주요한 자격이 '주선하는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면, 편집자를 설명하는 말로서는 약간 모욕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것은 진실이다.
- 본문 p.343 / 윌리엄 타그 <보라! 편집자를> 中
한편, <퍼트넘>의 편집국장, 윌리엄 타그는 편집자의 모호한 정의를 짚어주며 가장 기본적인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서술한다. 그가 말하기를, 편집자는 하나의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를 선택하고 주선하는 매개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서 편집자를 '주선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모욕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단어의 의미를 상기시켜 보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주선하다', 일이 잘 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일이 잘 되기 위해서는 편집자가 꼭 필요하다. 특히, 출판이라는 것은 일반 대중이 아는 것 이상으로 필자와 편집자의 공동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편집자는 필자가 책을 쓸 수 있도록, 독자와 연결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책 사이에서 연결되는 지점에는 늘 편집자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집자에게는 수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새로운 원고를 대할 때마다 편집자는 새로운 기획과 신인의 등용, 그리고 새로운 형식에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는 자기가 담당하는 신간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실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면서 유연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 본문 p.183/ 삭스 코민스의 콜롬비아 대학 강연 中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하는 질문에 "저는 청소하고 수리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 <랜덤하우스>의 편집자, 삭스 코민스. 그는 편집자로서 수많은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만나는 필자마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신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정리하면 촉매자, 상담자, 중매자, 연출자까지 이 모든 역할을 해내야 하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이다. 한 명 한 명씩 이야기를 읽다 보면 편집자에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다양한 범위에서의 능력과 역할이 요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는 저자를 이해하고 도와야 하며, 저자의 재능을 끌어내야 하고, 대상 독자의 기호나 편견, 지식을 파악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결과 세상 밖으로 책이 만들어지고, 그 책은 사상과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쉽게 말해,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편집자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다. 새삼 눈앞에 보이는 책, <편집자의 세계>에서 15명의 편집자들의 삶의 무게가 응집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많이 무겁게 느껴졌다.
15명 편집자의 공통된 철칙
책은 각 편집자의 회고록은 기본이며, 관련된 인물의 저서는 물론이고 미국의 출판·잡지·역사에 관한 책도 두루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요컨대, 어떻게 출판계에 발돋움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일화와 함께 생애 동안 남긴 회고록, 편지, 인터뷰와 같은 기록물을 인용하여 출판인으로서의 자세와 철학을 설명한다.
그리고 15명의 명편집자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편집에 있어서 본인만의 확고한 철칙과 철학이 존재한다. 물론 각자가 놓인 상황 및 잡지의 특성과 분위기에 따라 편집 철칙과 철학의 모양새와 특징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본인만의 단단한 철칙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편집에 대한 끈질긴 집념 하나로 편집자로서의 위대한 삶을 이어나갔다.
나의 신조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는 일이며, 투쟁과 일을 계속해 나가는 데 있어 하나하나에 전력투구를 하는 것이다.
- 본문 p.396 / 헬렌 걸리 브라운의 생활신조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의 생활신조는 곧 미국의 신조이며, 미국 시민의 성공의 공식 - 근면, 끈질긴 노력, 용기-이다. 이러한 신조는 <코스모폴리탄>에도 반영되어 있다.
사실 편집 철학에도 적용되는 부분이지만 그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말이다. 삶은 늘 투쟁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면하고 어떤 태도로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늘 생각한다.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15명의 편집자들은 편집에 있어서 만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모든 편집자의 기저에 있는 신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새삼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책 바로 뒤에는 편집자가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저 모호했던 편집자의 이미지가 15명의 편집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찬찬히 그려지는 듯했고 마치 숨은 위대한 그림자를 발견해 낸 느낌이라 묘한 느낌도 들었다.
끝으로는 <편집자의 세계>라는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모든 편집자의 노고와 집념에 감사하며, 앞으로 만날 모든 편집자를 응원한다.
[신송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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