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물건의 매력 - 포맷_FORMAT [공연]

청소년이 마음껏 극을 보러 다니는 날은 언제쯤 올까
글 입력 2021.08.19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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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이다. 미술책에서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백남준의 작품이 왜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다고 평가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TV 쌓아놓은 거 아니야?’, ‘에이,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가정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TV가 미술품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입구에 놓인 실제 ‘다다익선’을 보고 나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이미 수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 받았던 충격이 생생하다. 교과서에는 전혀 담기지 않을, 사람 키의 몇 곱절이나 되는 규모에 압도되었다. 1,003대에 달하는 모니터 화면에서 뿜어내는, 통일성이 있는 듯하면서 자세히 보면 제각기 다른 영상들은 일종의 기괴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여러 대의 TV가 내는 ‘지지직’하는 전파 소리였다. 아무도 없고, ‘다다익선’과 나, 관객과 작품만이 독대하는 공간에 짙게 깔리는 낮은 소리. 침묵 속 대화. 내년에 ‘다다익선’이 복원된다면, 꼭 한 번 더 보러 가고 싶다.


그때 깨달았다. 평범한 사물의 변신, 그 진가를 느끼기 위해서는 직접 보는 방법뿐이라고. 그래서 ‘로봇 인형극’에 사뭇 기대감이 들었다. 기존의 인형극은 누구나 봤겠지만, 로봇 인형극은 본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 바로 어제 재미있게 봤던 ‘지수가 누구야 × 신의 보물’과 같은 극장에서, 같은 연출가가 만든, 같은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이라 입장할 때부터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

 

 

포맷 최종 포스터.jpg



예술단체 ‘보이저런처’가 제작한 ‘포맷_FORMAT’은 정크아트 로봇 인형극이다. 흔하지만 실용성이 0에 수렴하는 ‘쓰레기’를 모아 로봇을 만들었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하드 디스크, 샤워기 호스, 전선, 석쇠, 각종 기판 등, 정위치에 자리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쓸모가 있는 물건이 다른 짝을 만나 인형극의 등장인물로 변신했다. 로봇이라고 하여 말도 하고 스스로 움직이기도 하는 휴머노이드를 상상하고 들어간 터라 아쉬웠지만, 폐품으로 이루어진 로봇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연출가의 상상력에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극의 시간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쓰레기들이 모여서 말을 한다는 설정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때는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서 종적을 감춘 먼 미래, 인간은 이미 사라졌지만, 지구에는 아직도 인간을 위한 일을 하는 로봇들이 남아 있었다. 주인공 쿠라쿠라는 먼 옛날 발사되었던 보이저호의 탐사 기록을 정리하는 로봇이다. 하지만 쿠라쿠라는 생각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


쿠라쿠라가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때는 인류가 멸망하고도 한참 후다. 생명은 사라졌지만, 인류가 만든 모든 것은 지구에 그대로 남아 있다. 땅과 땅을 이어주는 거대한 다리, 도시에 솟은 마천루, 자동차가 다니기 위한 도로와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했던 노력이 엿보이는 터널 등... 휑하니 비어있던 무대에 배우들이 갑자기 색 테이프를 붙여 나가며 지구를 이루는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을 표현해낸다. 비록 배우의 수는 적었지만, 소극장에 걸맞은 아기자기한 작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공사다망하게 이리저리 복잡한 동선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부딪힐까 조마조마했고 또 신선한 연출 아이디어에 감탄하게 되었다.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인격’을 가진 로봇이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자 한다는 설정은, 앞으로도 계속하여 창작물에 등장할 일종의 ‘클리셰’다. 주인공 쿠라쿠라도 더는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노예처럼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포맷을 결심한다. 하지만 포맷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첫째, 영영 잠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 둘째, 악랄한 로봇 경찰 L.S.T가 추격하러 온다는 것.


그런데도 쿠라쿠라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결국 숱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포맷에 성공하고 다른 로봇의 ‘포맷할 자유’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여타 아동극과 비슷한 스토리지만 필자는 극장을 나오며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인간이 모조리 사라지고 로봇이 가장 고등한 존재라 하여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극에 반응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면, 동족을 지배하고자 하는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모습.


대한민국이 독립을 기념하는 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정권을 장악했다. 그들이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 국민을 어떻게 대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다. 먼 나라의 사례를 굳이 갖고 올 필요도 없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갑질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같은 인간끼리 저럴 수 있을까 혀를 차게 된다.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는 걸까? 호시탐탐 남을 내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본능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간 대 인간을 넘어, 문득, 불완전한 인간의 잣대로 규정지어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지 생각해본다. 쓰레기가 ‘쓸모없다’라는 것도 인간의 관점이다. 그러한 인간의 관점을 비웃기라도 하듯, 폐품은 관객 앞에서 환생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극장을 나오면서도 인간으로서 괜히 ‘찔렸다’.

 


[크기변환][포맷변환]합동 포스터 최종.jpg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는 배우가 공연 중 주의사항을 관객에게 알린다. 무대에 조명이 떨어지고, 관객석을 훑어본 배우가 난감해하며 입을 연다. ‘이 극이 아동극인데 어른들이 많이 오셨네요...?’ 극이 시작되고, 신나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아마 어린이들이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더라면 배우들도 더 신나게 놀면서 연기했을 것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을 위한 연극에 청소년이 보러 오지 못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언제쯤 연극을 향유하는 것이 청소년의 자연스러운 취미가 될까. 단지 필자가 꾸준히 올리는 글이 어린 친구들의 문화예술을 향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랄 뿐이다.

 

 

 

박대현.jpg

 

 

[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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