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이 가고 있다 [사람]

글 입력 2021.08.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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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있다 물론 뜨거웠다

여름이 가고 있다 물론 비가 많이 왔지

(…)

여름 내내 나는 떠날 준비를 하다만 자세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늙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여름이 가고 있다 우리를 이루는 서로 다른 물질

여름이 가고 있다 이사철이 오고 있다

여름이 가고 있다 좋은 생각이 나려고 한다

놓고 왔을 리가 없다 뒤를 돌아본다

놓고 왔을 리가 없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 신해욱, 여름이 가고 있다 [무족영원]

   

 

여름이 가고 있다.

 

이번 여름도 역시 뜨거웠고 비가 많이 왔다. 그리고 나는 떠날 준비를 하다만 상태로 어느 한 순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위로 흐르는 시간은 내가 따라잡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늙어가는 기분.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죄다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 나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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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고 왔을 리가 없다며 반복해서 외치고 뒤를 돌아봤지만 놓고 온 것이 무엇인지는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여름은 그 뜨거웠던 시절이 그리워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는 계절인지도 몰랐다. 졸업이 한 학기 남아 더 크게 불어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더불어, 펜데믹으로 인해 인생에 계획이랄 것이 별로 없는 나란 사람의 유일한 계획마저 어긋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멜랑콜리에 빠지고, 약간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원래 나의 일부분인 것 마냥 받아들이며 여름을 보냈다.

 

여름의 초입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름에 대한 오피니언을 작성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글을 쓰게 되다니, 지리멸렬한 나의 삶이란. 자타가 공인하는 여름 예찬자의 여름치고는 꽤 허무하게 여름을 보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지 뜨겁지 않은 여름일지라도, 나를 숨 쉬게 했던 올해의 여름 작품 몇 개와 함께 나의 여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깥은 여름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번잡한 머릿속과 더불어 엎친대 덮친 격으로 글태기마저 찾아온 것이다. 그날도 언제까지나 번민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비우려 암밴드 하나만 차고 무작정 자전거를 타던 중이었다.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고, 친구는 웃으며 물었다. “기말고사도 끝났겠다. 그럼 세나야, 여름의 너는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은 거야?”

 

좋아하는 계절을 마음껏 즐길 일만 남았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행복해질 일이라니, 행복은 어디에도 있으나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믿으며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려 노력하던 나였는데 그 당시 나에게는 그 말이 너무나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왜 그것을 먼 미래에 부쳐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지 못한 일이 겹겹이 겹친 그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과분한 단어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새에 걱정의 늪에 매몰되어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서 어물어물 답변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름의 초입에 펼쳤던 [바깥은 여름]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당시의 나를 알아주는 듯한 적확한 표현에 한참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멈추어 그 문장의 테두리를 어루만진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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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김애란, 바깥은 여름

 

 

여름이라고 해서 마냥 뜨거운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시간은 겨울을 향하고 있는데, 지나간 여름의 기억에만 묶여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바깥은 여름]은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물들 하나하나에 무언가 안타까운 사연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상실감을 다른 어떤 것으로 채워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공백을 있는 그대로 견뎌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삶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소설은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세상과의 시차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홀로 가려진 시간 속에 산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시차적응’이라는 단어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시간의 톱니바퀴가 당신의 시간과 맞물릴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이 일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고도 덧붙이고 싶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


나는 무수한 언덕 가운데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을 지를 생각했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 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시인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역시 앞서 소개한 [바깥은 여름]과 마찬가지로, 상실 이후의 삶을 길게 조명한다. “도려낸 자리엔 새살이 돋는 것이 아니라/ 도려낸 모양 그대로의 감자가 남는다”(「스페어」), 도려낸 자리, 즉 상실 이후 부재하는 대상에 관해서도 무언가로 채우려고 하지 않고 역시 공백으로 남겨둔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라며 상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있을 것이라며(「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며(「열과」) 어려운 낙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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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슬픔에 대해 말하지만 자기연민의 늪에 빠지거나 감정의 홍수에 매몰되도록 두지는 않는다. 책의 표지와 같이 끝없이 펼쳐진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뒤바뀐 풍경으로, “사실은 흰 접시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흰 접시의 테두리만 만지작거리는”(「시」), 도망치는 언어를 잡아 가까스로 대상을 지시하는 시인의 호흡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

 

- 안희연, 열과

 

 

열병과 같은 시간들이 한바탕 지나간 뒤의 삶. 거세게 내리쬐는 태양과 마주하는 것이든, 멈추지 않는 빗줄기에 맞서는 일이든 모두 고난과 역경임은 분명한 일이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과 양가적인 마음들을 껴안고 견디며 나아가보는 것이다.


 

나는 지워진 사람

누군가 썩은 씨앗을 심은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워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


- 안희연, 소동

 

 

그렇게 “누군가 썩은 씨앗을 심은 것이 틀림없다”며, 아무래도 잘못된 삶이 틀림없다며, 이미 지워진 사람이라며, 숱한 의심을 반복하던 ‘나’는, 마침내 어긋났더라도, “더럽혀진” 지금의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열과」) 여름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닌, 어긋나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삶의 목적을 찾는 것보다야 삶이 목적이라며,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말할 순간이 머지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감기가 나을 때까지


 

앞서 말한 두 작품에서 느껴지는 상실감과 공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덤덤함이 어느 여름날의 쓸쓸한 새벽과 닮아있다면, 와사비 호텔의 [감기가 나을 때까지]는 여름날의 설렘 가득한 밤공기에 어울리는 곡이다.

 

사실 이번 주에 원래 쓰고자 했던 글은 이 글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잠든 새벽, 불 꺼진 방안에 조용히 반짝이는 노트북의 불빛과 창밖의 풀벌레소리, 여름이 끝날 때까지 노래를 불러 주겠다는 다정한 목소리까지 울려 퍼지는 삼위일체를 경험해버리는 바람에 쓰던 글을 덮어두고 이 글을 새로 쓰게 되었다.

 

 

 

 

찌르르한 풀벌레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따뜻하게 들려오는 일본어 가사. 나는 교토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없는데, 순식간에 후지필름으로 찍은 비 오는 일본의 어느 풍경 속에 스며들어가 감기가 나을 때까지 노래를 불러준다던 누군가의 지극 정성한 간호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계속 들을 수 있다면 나는 평생 감기가 낫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함께했다.)


 

夏の雨 しとしと 降る夜に

여름비 톡 톡 내리는 밤에


風邪引いた 貴方 バカだね。

감기 걸린 당신, 바보군요


熱がさめるまで

열이 내릴 때까지


歌ってあげるから

노래해 줄 테니까


蒸し暑い日 , 一瞬の風に

무더운 여름날, 잠깐의 바람에


ニコニコしている 貴方 ,愛しいね

싱글벙글하는 당신, 사랑스럽네


夏が終わるまで

여름이 끝날 때까지


歌ってあげるから

노래해 줄 테니까

 

 

짧고 단순한 가사에서 느껴지는 진심. 여름이 끝날 때까지 노래해준다니... 황홀했다. 시골 마을의 평상에 누워 선선한 밤바람을 느끼면서,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손가락 끝으로 분명하게 알지도 못하는 별자리들을 그려보면서 듣고 싶은 노래이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인 여름의 다양한 색깔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 글뿐만 아니라 이전에 썼던 오피니언 [아무튼, 여름], 아트인사이트 공동저자 프로젝트로 적어냈던 여름에 관한 짧은 에세이가 이미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기도 하고 여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름의 또 다른 모습을 기어코 한 장 더 기록해본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한 계절일지도 모르고, 잃어버린 것을 끊임없이 돌아보다가 세상과 시차가 벌어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 노래해준다는 한마디 가사로 대책 없이 낙관적인 사람으로 변해 녹아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름의 양면성까지도 인정하면서, 여름의 끝에서 또 다시 요란스럽게 여름에 대한 사랑고백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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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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