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무대 뒤의 무명의 존재 - 편집자의 세계

글 입력 2021.08.1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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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잡지와 가까운 편은 아니었지만, 에디터라는 명칭은 이 곳에 글을 기고하기 전부터 굉장히 친숙한 단어였다. 요즘은 넓은 의미로 콘텐츠 에디터, 뮤직 에디터 등 다양하게 쓰이지만, 어디까지나 에디터의 본질은 ‘편집자’에 있다. 내 머릿속의 편집자는 잡지에 실릴 대상을 인터뷰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읽기 쉽게 편집하고, 때론 자신의 글을 기고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집자의 문턱에 쉽게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편집자의 세계 앞에서 이러한 생각은 한낱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편집자의 세계>는 최고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편집자 15명과 그들이 속했던 세계를 알려준다. 각자 다른 잡지사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편집자라는 공통된 직업 하에 가졌던 그들의 가치관과 철학은 거의 일치했다.

 


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책은 미국을 대표하는 15명의 편집자와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세계적인 잡지부터 생소한 잡지까지, 우리가 몰랐던 잡지의 뒷이야기를 말해준다. 단순히 편집자의 업적과 잡지가 발행되기까지만을 다룬 것이 아닌, 편집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출판/잡지계에 입문했는지, 무명의 작가를 어떤 계기로 발견해 스타로 키워냈는지, 각자가 생각하는 편집자/잡지의 철학이 무엇인지 등 다방면의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휘몰아친다.

 

15명의 편집자의 편집 생애를 소개하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저자는 특수한 분야인 자료의 성격 탓에 국내에선 공수하기 어려워 미국에 사는 딸과 사위에게 부탁해 많은 자료를 구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 덕분에 편집자의 회고록은 물론, 관련된 인물의 저서, 미국의 출판/잡지 역사 등 다채로운 내용이 담길 수 있었다. 아마 저자는 위대한 편집자의 소개를 넘어 편집자와 잡지의 철학을 널리 퍼트리고, 편집자의 인식 개선과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들의 기본서가 되길 희망하는 마음에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편집자의 역량


 

모든 직업은 직업적 특성에 맞게 요구되는 역량이 있고, 편집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15명의 편집자의 개인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편집자적인 능력과 그들이 말하는 역량은 아주 비슷했다. 시대에 절대 뒤처지면 안 되고, 독자의 니즈 파악과 효과적인 마케팅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이 외에도 존재하는 몇 가지 역량을 전부 포함했을 때,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것이 있다면 ‘작가의 재능을 끄집어내는 능력’이다.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자 연출자라고 한다. 즉, 작가의 원고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상업적 가치나 출판사의 철학 등 뚜렷한 기준을 내세워 그에 알맞는 원고를 선정한다. 이후 편집 작업을 통해 원고를 잡지는 싣는데, 이때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무조건 강요해 몰아붙이지 않고 격려를 통해 작가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맥스웰 퍼킨스와 캐스 캔필드가 그러했다.

 

이들이 행했던 타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위로 끌어올리는 능력은 단순히 오랜 시간 단련된 사회성과는 다르다. 작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원고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앞을 내다보는 넓은 시야까지 갖춰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들이다. 어쩌면 이 모든 건 편집자의 노력을 넘어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잡지의 철학


 

<에스콰이어>의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아놀드 깅리치는 ‘잡지는 인간 그 자체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뉴요커>의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해롤드 로스는 ‘<뉴요커>는 가장 인간적인 잡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모던 라이브러리>의 편집자인 베넷세르프는 출판인의 자세를 낙천가로 여겼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드윗 월레스는 잡지를 통해 ‘낙천주의’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들은 인간 그 자체인 잡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낙천주의를 심어주었다. 과거든 현대든 사회는 꾸준히 떠들썩하고, 그 속에서 인간은 쉽게 지치고 힘없이 나풀대고 만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시의성이 강하게 반영되는 잡지는 사회의 거울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매번 낙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란 약간의 어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편집자들은 독자들이 바라보는 거울이 어두컴컴하기만 한 세상이 아닌 멋있고, 더 잘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주었다. 이것이 편집과 하나 된 이들이 주장하는 잡지의 철학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화려한 무대 뒤의 무명의 존재인 것이다.

 

-169p

 

 

온전히 혼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닌 많은 이들의 노고가 들어가야만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가수의 앨범이 있다. 당장 집에 있는 앨범을 펼쳐만 봐도 수많은 이름이 맨 뒷장에 적혀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가수 하나이다.

 

잡지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편집자의 노고가 들어가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잡지 그 자체 또는 잡지에 실리는 원고이다. 선명히 보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자처하는 편집자들의 역할은 위대하기만 하다.

 

저자 고정기를 비롯한 15명의 편집자는 화려한 명성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존재이지만, 그 누구보다 보람차고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어쩌면 편집밖에 모르는 바보라서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박수쳐 주고 싶다. 아마 지금도 이들만큼의 의지를 가진 편집자는 묵묵히 일하고 있을 것이고,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무수히 많은 이들이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어두운 뒤편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업무에 비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위치는 아쉽기만 하다. 여전히 편집자는 박봉이라는 공식이 존재하고, 근무환경 역시 우수하지 못하다. 활자 매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편집자는 영구히 존재할 텐데, 계속 함께할 사람이라면 하루빨리 그에 맞는 정당한 대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은정_컬쳐리스트.jpg

 

 

[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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