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 편집자의 세계 [도서]

글 입력 2021.08.1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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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하는 사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할 당시, 나를 ‘감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지적인 욕구가 왕성한 편도 아니고, 박학다식하지도 않지만 감동에 응하는 능력이 있다고. 무언가를 읽거나 보거나 경험하고 감동을 느꼈을 때, 그것에 응하여 무엇이라도 내뱉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다고.


편집자라는 직업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 감동을 주는 이를 찾고 그것에 응하는 사람, 편집자, 즉 에디터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면 답할 수 없을 정도로 편집자의 일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안압이 높아져 눈이 빠질 정도로 교열, 교정 업무를 수행하는 출판사의 편집자. 본인이 쓴 글로 잡지를 완성하는 잡지사의 편집자, 콘텐츠를 제작하는 콘텐츠 에디터... 몇 안 되는 정보로 인식한 편집자에 대한 이미지는 대충 이 정도였다. 무언가 확실한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었지만 평생 감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내게 편집자의 세계는 더 깊이 알고 싶은 무엇이었다.

 


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편집자의 세계]에서는 미국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15명을 소개한다. 당시만 해도 편집자라는 직업의 특수성과 정보의 방대함을 다룬 국내 저작이 없어 참고할 자료가 없었지만,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수학 중인 딸 내외를 통해 그 대학의 무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잡지와 단행본을 경험한 저자의 이력답게 두 업계를 대표하는 편집자가 등장하여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출판/잡지계에 입문했는지, 그리고 무명의 작가를 어떤 계기로 발견해 스타로 키워냈는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한 편집자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소개한다.


맥스웰 퍼킨스(스크리브너스의헤밍웨이 편집자), 아놀드 깅리치(<에스콰이어> 창간자 · 편집자), 베넷 세르프(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모던 라이브러리의 편집자), 드윗 월레스(<리더스 다이제스트>창간자 · 편집자), 캐스 캔필드(하퍼 앤 브라더스 편집자), 해롤드 로스(<뉴요커> 창간자 · 편집자), 삭스 코민스(랜덤하우스의 시니어 에디터), 프랭크 크라우닌셸드(<배너티 페어> 편집장), 히람 하이든(보브스 메릴의 편집자), 클레이 펠커 (<뉴욕>의 창간자 ·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바이킹 프레스의 존 스타인벡 편집자), 벳시 블랙웰(<마드모아젤> 편집장), 윌리엄 타그(퍼트넘의 편집국장), 휴 M.헤프너(<플레이보이>창간자 · 편집자), 헬렌 걸리 브라운(<코스모폴리탄> 편집장)


[편집자의 세계]에서 다루는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다. 굳이 이렇게 편집자들의 이름을 나열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편집자여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잡지명이나 저자, 혹은 그들의 원고일 뿐이니까. 이 순간만이라도 이름을 부르며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책의 저자 고정기는 어느 나라든 편집자는 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이름 없는 별들이라는 사실은 다름없다고 한다.


무명의 작가 마리오 푸조를 발굴해 ‘대부’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편집한 명편집자인 윌리엄 타그는 “매일 같이 원고에 매달려 사는 편집자가 글을 쓸 시간이 어디 있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퇴근 후 자신의 시간까지, 거의 24시간 내내 원고에만 매달려 있는 그들을 보며 묵묵히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더불어 내가 알고 있던 편집자의 세계는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고 연출자이며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출판 편집자 1세대인 고정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편집자라 규정했고 편집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편집자는 독자들보다 한발 앞서 수많은 원고들 사이에서 그들이 원하는 목적에 맞는 보물을 발굴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내용이 담긴 깊이 있는 지식과 감동의 전달과 더불어 출판사의 이익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편집자는 작가의 재능을 발견해내고 격려를 통해 그들의 재능을 끌어올릴 줄 알아야 한다. 무명의 작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들을 독려하며, 때로는 빈틈없는 재치와 찬사를 통해 작가를 교묘하게 조종하기도 하고, 출판사의 철학과 신념에 따라 (설사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책의 작품성과 저자를 믿고 투쟁하는 일이 편집자의 일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출판 산업은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들과 종이 매체의 몰락이라는 시류 속에서도, 독자들의 니즈를 반영하며 감동을 주는 책들은 끊임없이 유통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편집자라는 무명의 별들 덕분일 것이다. 하나의 책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더 많은 작가들이 빛을 보도록 재능을 발굴해내고, 정확한 정보와 지혜를 전달하려는 그들의 노고 덕분에 읽을거리들은 마르지 않고 생성되며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게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편집 일선에서 물러선 나에게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활자를 통한 문화 창조자인 편집자가 사회로부터 응당한 대접을 받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되어, 선진 외국과 같이 우리나라 편집자들도 그 노력만큼의 대우와 보수를 받는 날이 오고, 편집자들도 그 직업에 긍지를 갖고 편집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바람직스러운 문화 창조의 정신- 에디터십 - 에 더욱 투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편집자의 세계] 머리글

 

 

그러나 이들의 노고에 비해 그들이 노력만큼의 응당한 대우와 보수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활자를 통한 엄연한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하는 편집자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노력에 비해서는 정당한 대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집자들이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갖고 에디터십에 더욱 투철히 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가 보다 개선되었으면 한다.


편집자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느끼며 고마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편집자들의 노고를 아는 것, 그들이 응당한 대접을 받으며 삭막한 출판계에 약간의 미풍이라도 불기를 바라는 것, 또한 독자로서 책의 소중함을 깨닫고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지만, 현대의 편집자가 배울 만한 시사점뿐만 아니라 독자로서의 자세까지 생각하도록 한 [편집자의 세계]에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박세나.jpg

 

 

[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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