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잠시, 빛과 함께 머물며 힐링해도 괜찮을까요? -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시]

글 입력 2021.08.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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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jpg

 

 

생을 살아가며 언제나 나의 곁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될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것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무력하게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그저 흘려보내기는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고즈넉한 저녁노을, 어둠 속에서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바쁘게 눈으로 시야의 것들을 포착해냈고, 마음 깊은 곳에 무의식적으로 숨겨두었다.


그렇게 보관해두었던 모든 시선들에는 언제나 다양한 색을 가진 빛과 그림자가 스며들어있었다. 빛과 그림자는 우리 일상 속에서 숨어있다가 어느 날 그리웠던 시간을 회상할 때이면 순식간에 그 시공간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기억해낸다. 언제나 그날의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너무도 다채로웠던 그 순간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이런 빛과 그림자의 힘을 캔버스에 흡수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요정들과 비밀리에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될 정도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그림 속 시공간으로 이동시킨다. 앨리스의 눈을 빌려 그 장소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장소들을 바라보며 그곳의 선선한 바람과 풀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날의 푸르렀던 하늘과 솜털처럼 하얗던 구름을 기억해낸다.


그는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도, 장소도, 심지어는 시선을 갖는 대상까지도 변화시킨다. 어느 그림에서 그는 구름이 많이 껴 하늘이 하얗게 물들었던 흐린 날의 빛을 그려냈고, 어느 그림에서는 한참의 뜨거운 햇빛이 지나 늦은 오후를, 땅거미 지기 직전의 빛을 그려냈다. 어느 그림에서는 성인의 눈높이에서 공간을 그려내고, 어느 그림에서는 1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법한 어린아이의 낮은 시선에서 공간을 그려낸다. 그의 그림에 따라 나는 더위에 지쳐있던 초등학생이 되기도, 신나게 오늘 빛을 만끽하는 미취학 어린아이가 되기도, 창문가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는 감성 짙은 어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슬며시 자신의 추억을 그의 그림에 대입하게 된다. 텅 빈 공간의 그림을 볼 때이면 이삿짐을 막 날라 휑했던 나의 자취방을 떠올리게 되며, 그가 그려낸 흰 저택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여름날 타국에서 정처 없이 산책하다 보았던 수풀 속 버려진 저택을 떠올려 버린다. 유독 나무가 많았던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을 떠올려버리기도 한다. 그가 그렸던 그림 속 나무의 그림자는 어린 날의 내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보았던 나무그림자를 닮아있었다. 즉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의 그림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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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에는 세 개의 키워드가 공존한다. 빛, 그림자, 그리고 식물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빛과 그림자가 우리를 시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식물은 그곳에서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아스팔트 도로에 식물 하나 없는 건물의 그림을 그려낸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산업화 속, 발전하면서도 더욱 고독해지는 빛과 그림자의 모습을 담아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오른다. 딱딱하고 차가운 건물들 사이의 빛과 그림자 속 외로움을 찾아 그리는 에드워드 호퍼. 물론 두 그림의 명암대비나 색채, 화풍은 작가가 어떤 스타일을 그리고 어떤 것을 의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당연히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과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앨리스가 그려내는 식물이 그림 속에서 사라진다면 지금의 그림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따뜻함보다는 호퍼의 그림처럼 쓸쓸함과 외로움이 더 많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나 앨리스는 그의 그림에 식물을 거의 빠짐없이 그려 넣었고, 빛과 그림자, 식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의 작품 속에는 생명력과 활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그려진 식물들은 관객들의 빛과 그림자가 이동시킨 관객들의 오감을 더욱더 생생하게 상기시켜준다. 수풀 소리를 들려주고, 풀잎 내음을 맡게 해주고, 살갗에 스쳤던 간지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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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뿐만 아니라,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회도 그의 그림만큼이나 섬세하게 구성되어있었다. 2021년 7월 24일부터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전시된 이번 전시회는 코로나로 지친 관람객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구성되었다.


1부, '빛과 그림자'에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초기작들을 선보인다. 작가 소개와 함께 전시되어있는 이번 섹션의 작품들은 초기작들답게 확실하게 정립된 그의 작품보다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이번 섹션 속에서 관객들은 작가가 어떻게 빛과 그림자를 그려왔고, 자신의 작품 속에 흡수시키며 성장해왔는지를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된다. 전시회 벽은 배경을 흰 바탕으로 하여 그의 첫 시작을 나타냄과 동시에 관객들이 정립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첫 번째 섹션 속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성장 초기 과정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그의 작품을 감상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2부, '집으로의 초대'에서는 1976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작가가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주택을 다룬 작품들을 아우른다. 앨리스는 자신을 매료시킬 수 있는 주택을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찾아낸 주택에서는 몇 년간 여러 가지의 다양한 구도와 시간 속에서 작품을 그려냈다. 처음, 이 섹션에 들어서며 의도적으로 설치해둔 방향제로 관객들은 풀 냄새를 맡으며 이 섹션에 들어간 관객들은 우거진 풀들이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저택들에 초대된다. 녹색의 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작품들을 보며 관객들은 마치 어느 산속 펜션으로 여행을 온 듯한 기분까지도 느낄 수 있게 된다.


3부, '여름 바람'에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2000년대부터 그려온 대표작 여름 바람 시리즈를 선보인다. 1995년 한 친구의 집에서 보았던 커튼이 휘날리는 모습에 매료된 앨리스는 이후 직접 커튼을 구매하여 방문하는 집 창문에 걸어보며 창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의 모습에 대해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앨리스는 주로 풀숲을 바탕으로 그렸던 그의 지난 작품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창문으로 보이는 호수와 바다 등의 물의 풍경을 주로 그리고 식물의 모습은 그림자만으로 그려내며 작품 속에 숨겨두었다. 파란색 벽을 바탕으로 하여 물을 배경으로 한 흰 커튼을 강조시킨 이번 섹션에서는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에게 아름답고 탁 트인 물의 풍경을 통해 위로를 전달해준다.


마지막으로 4부, '이탈리아의 정취'는 비교적 최근인 2015년도부터 화가가 작업했던 이탈리아 시리즈와 이에 영감을 주었던 과거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장소와 다양한 색감은 앨리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렇게 그려진 이탈리아 시리즈는 이전의 작품 활동과는 달리 대부분 파스텔로 제작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전시회에서는 마지막 파트에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앨리스의 또 다른 면모를 선물해주며 다채로운 앨리스의 매력과 함께 관람객들을 배웅한다.

 

이렇게 구성된 각 섹션마다 QR코드가 준비되어있었다. QR코드에는 섹션에 어울리는 노래나 ASMR 등을 제공해주어 관람객들이 최대한 시각뿐만 오감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0) 정적인 순간, In the Quiet Moment.jpg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못해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본 이후, 함께 본 지인과 입을 모아 이야기한 것은 바로 '마치 여행을 갔다 온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평안을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 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무는 자리>는 2021년 10월 24일까지 전시된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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