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불확실을 확실로 만드는 과정

글 입력 2021.08.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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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코로나19를 처음 맞았던 때를 기억한다. 거리가 텅텅 비고, 항공편이 끊기고, 공연장이 문을 닫던 그 때. 공연을 진행해도 될지에 대한 윤리적 물음과 맞물린 모든 불확실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아주 어렵게 기획했고, 전국적으로 두 자릿수의 확진자가 나왔던 시기에 소중한 공연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기획을 전공하면서 수많은 난제에 부딪힌 적은 많지만 팬데믹과 겹친 시기에 이를 진행한 적은 처음이라 공연 날짜가 밀리는 일을 비롯해 거리 두기 좌석제를 시행해 수익이 절반으로 반 토막 났던 것도 웃지 못할 헤프닝이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올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나 싶다. 섣불리 나설 수 없는 현실에 도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작년보다 올해가 됐으니까.

 

공연을 만드는 일이란 0%의 가능성을 조금씩 모아 100%로 발전해나가는 일이다. 모든 불확실을 열어두어 조금씩 가능으로 맞바꾸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애초에 원대한 목표를 그대로 이룰 수 있는 공연이 열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특히 나같은 학부생의 경우에는 끊이지 않는 불확실과 불가능을 맞닥뜨리며 하나씩 대안을 찾아가는 일에 더 익숙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연 직전까지도 100%로 판가름 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중간에 공연이 중단되며 다시 0%로 회귀하는 순간이 있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가능성을 재고 따지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팬데믹 이전의 공연을 기획할 때의 걱정이라면 장소를 빌릴 수 있는지, 이 사람을 쓸 수 있는지, 이 장비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면 요즘은 공연 자체를 올릴 수 있느냐 마냐의 선택을 기민하게 따져봐야 한다. 공연예술계는 그 고민을 1년 넘게 하고 있다.

 

몇 달 전 음악 페스티벌 '뷰티풀민트라이프'가 엄격한 방역수칙 아래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체온 측정과 QR 코드는 물론, 10분 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신속 항원진단키트까지 동원해 방역을 철저히 한 결과 단 한 명의 코로나19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뷰티풀민트라이프의 개최는 팬데믹에 지친 관객들에게 위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위태로운 공연예술계에 희망을 불어넣어 준 계기이기도 했다.

 

이렇듯 팬데믹 시기에도 불구하고 빠듯하게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을 보면 문득 대단함을 느낀다. 간단한 회의조차도 진행하기 어려운 이 시점에 사람들을 감화하기 위한 움직임에 뭐라도 더 도와주고 싶은 자연한 마음이 든다. 이건 내가 관객의 입장으로 있었던 시간보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플랜을 짜고 예산에 맞춰 모든 사안을 조정해야 하던 순간이 더 오래라,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모든 기획의 일련 과정들이 얼마나 값진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긴 팬데믹을 버텨내며 미술관과 공연장이 수시로 닫히고, 보고자 했던 공연이 빈번히 취소가 되는 걸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공연들이 앞으로 더 올려질 수 있을까에 대한 자조적인 생각이 든다. 더욱이 내가 다시 공연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때가 오기는 할까? 우리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수많은 불확실을 확실로 바꾸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에 맞닥뜨린 이상 불확실한 그림을 스케치하는 것부터 난제로 들어선다.

 

나도 몇 달째 준비하던 친환경 페스티벌이 결국 비대면 페스티벌로 전환되었다. 대면 페스티벌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5월 초와는 다르게 현저히 악화한 상황인지라 순순히 현실에 굴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아쉬움도 없다. 그래 뭐. 이래야 맞지.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불투명한 미래만을 그리며 기획을 꿋꿋하게 이어나가는 이 시점에서, 기획자들은 더욱 안전한 프로그램을 현실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획의 과정이 가시적이지 않아 살갗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확실'한 안전을 위해 불확실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이 글에 담아 본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도 꾸준히 무언가를 기획하는 나를 보면서 '굳이 이 시기에 이걸 왜 해?'라는 물음을 종종 받곤 했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 시기에도 무언가를 기획하는 이유는 단지 기획이 생업이라서가 아니다. 전공에 대한 미련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시기에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우리가 아니면 세상에 남지 않을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공연을 기획했을 때에도 누군가는 '이 시기에 이걸 왜 하냐'는 빈축을 샀지만 단지 그 말로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될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기에 그렇다. 우리가 왜 위험한 이 시기에 기획을 결심했는지를 한 번만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더욱이 길고 긴 팬데믹을 맞으면서도 예술로 사람들을 감화하려는 이들에게 감사의 찬사를 보낸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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