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 by 푸름] 도시 불빛 저편으로 밀려난 것들의 이야기

도시의 불빛 저편에 @ 금호미술관
글 입력 2021.08.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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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by 푸름]은 필자(푸름)가 직접 체험한 문화예술을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소개하는 페이지입니다.

 

 

 

도시의 불빛 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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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참 뜻깊은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도시의 불빛 저편에]라는 제목의 전시인데요, 본 전시의 주제는 ‘도시개발에 모든 관심이 쏟아짐에 따라 밀려난 것들에 귀 기울이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빛이 있다는 것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개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빛’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에 집중합니다. 김혜정, 송주형, 엄아롱, 윤정미, 장용선(가나다순) 총 다섯 작가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작품의 구체적인 소재는 동물, 식물, 재개발, 환경 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지금부터는 특히 매력적인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해설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진행되오니, 아직 다녀오지 못한 분들은 서둘러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당신이 버리고 간 동물, 당신과 함께하는 동물 – 김혜정, 윤정미 작가



금호미술관 전시실은 지하 1층 포함 총 4층인데요, 이번 [도시의 불빛 저편에] 전시 관람 순서는 3층 -> 2층 -> 1층입니다. 지하 1층에서는 금호미술관 소장품 상설전이 진행됩니다.


3층에는 김혜정 작가, 윤정미 작가 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두 작가 모두 동물, 특히 반려동물에 집중합니다. 그렇지만 각각의 작가가 선택한 전달 매체와 표현 방식, 그리고 세부적인 주제는 사뭇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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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당신이 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


 

우선 김혜정 작가의 작품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김혜정 작가는 본 전시에서 동물권을 주제로 한 편의 애니메이션과 다수의 삽화 작품을 선보입니다. 대부분 그림과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강아지인데요, 작가는 연필로 채색된 흑백 작품을 통해 버려진 강아지의 심정을 또렷하게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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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너무 큰 개>


 

그러나 김혜정 작가의 작품이 더욱 매력적이었던 점은 작가가 ‘반려동물’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동물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강아지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돼지, 소, 거위(오리), 곰, 삵, 오랑우탄, 토끼, 비둘기, 북극곰 심지어는 그들의 생활 공간인 ‘산’의 심정까지 대변하는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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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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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당신의 가슴에 우리를 묻어 주세요>


 

특히 거위털/오리털 패딩 제작 방식을 비판하는 작품인 <당신의 가슴에 우리를 묻어 주세요>에서는, 뭉개진 동물들과 그 위를 짓밟고 패딩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형상을 보여주며 패션산업 피해자로서의 동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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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용감한 삵>


 

이처럼 반려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모든 동물의 아픔을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김혜정 작가의 작품에는 비거니즘과 생태주의, 그리고 문명 비판까지 곁들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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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미 <반려동물> 연작


 

한편 윤정미 작가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반려동물> 연작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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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미 <반려동물> 연작


 

인간과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사진은 대부분 행복하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사진에는 표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연이 있습니다. 윤정미 작가가 포착한 순간 속 반려동물들은 파양이나 유기 등의 아픈 상처를 경험한 후에 사진 속 반려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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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미 <반려동물> 연작 中 <길수와 철수, 해방촌>


 

저에게 특히나 인상 깊게 다가오는 사진은 바로 <길수와 철수, 해방촌> 작품인데요, ‘길수’와 ‘철수’ 모두 ‘사람이 쓸 법한 이름’이기에 감상자는 누가 길수이고 누가 철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반려인이 반려동물에게 자신과 비슷한 이름을 지어준 것이겠지만, 어쩌면 무심코 지어졌을 수도 있는 이름은 감상자에게 ‘동물다운 이름’에 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코코’, ‘럭키’, ‘도도’, ‘흰둥이’와 같은 이름도 물론 반려인이 깊은 고민을 거쳐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담아 지어준 이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동물이 쓸 법한 이름’이라는 기준을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비인간 동물과 인간 사이에 선을 그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을 인간과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대상화’함으로써, 펫샵이나 동물실험, 공장식 축산과 같은 비윤리적인 시스템을 쉽게 용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도시는 생명력이 넘치던가요 - 장용선 작가



김혜정 작가와 윤정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한 후 2층으로 내려가면 참 예쁜 작품이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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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선 <찬란한 잔해>


 

장용선 작가의 <찬란한 잔해>입니다. 서로 다른 높이의 투명한 플라스틱 직육면체들, 그리고 그 속에 갇힌 무엇인가와 환한 불빛은 도시 빌딩 숲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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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된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안에 매달려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강아지풀 뭉텅이입니다. 그리고 그 강아지풀 뭉치 안에는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LED 조명이 들어있지요. 견고히 서 있는 투명한 건물, 그러나 그와 대비되게 천장에 가느다란 실 하나로 매달린 위태로운 강아지풀 더미. 대조적인 두 물체의 혼합은 현대사회 도시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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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생활상은 도시의 생활상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90% 넘는 인구가 도시에 거주합니다. 도시의 모습은 겉에서 보면 화려하고 튼튼한 듯하지만, 그것이 그것을 이루는 존재 하나하나 역시 그러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도시 속 작은 존재들은 거대한 찬란함인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소비되며, 쉽게 버림받기도 하지요. 강아지풀 속 LED 조명이 그러하듯,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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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선 작가는 이러한 도시의 외면을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내면을 위태로운 강아지풀 더미로 표현하며 도시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러한 생각을 거친 후 작품을 다시 감상해보면, 아름답게만 보였던 이 작품이 어딘가 애틋해 보이기도 합니다.

 

 

 

자연을 포장합니다 – 송주형 작가



장용선 작가의 작품을 살핀 후 안쪽 전시실로 들어가면 송주형 작가의 작품 공간이 등장합니다. 송주형 작가의 전시 공간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마 다소 거추장스러운 비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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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작은 CRT 모니터 여러 대가, 마찬가지로 어떤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거대한 화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모니터들 앞에는 만지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낼 듯한 거추장스러운 비닐이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비닐은 뒤에 있는 영상을 투과하기도, 반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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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영상은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의 이미지가 중첩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 앞에 매달린 폐비닐은, 각종 공산품을 포장할 때 사용되는 공업용 비닐이라고 합니다.


영상에 담긴 것과 같은 광활한 자연을 보고 경이로움이나 압도감을 느끼지 않을 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인간은 그토록 찬란한 자연을 계속해서 거추장스러운 공산품들로 덮어내려고 하지요. 송주형 작가의 작품 <流(류)>는 그러한 인간의 뒤틀린 자연관을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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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된 모니터가 이제 더는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CRT 모니터라는 점도 인상 깊습니다. 한때는 ‘가장 멋진’ 기계였을 CRT 모니터는,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겠지요.

 

기술의 발전이 거듭함에 따라 CRT 모니터와 같은 존재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한쪽 구석에 밀려 자연을 포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될 정도로 거대해질 때까지 방치시킨다면,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로부터의 반격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재개발, 그리고 남겨진 것들 – 엄아롱 작가



3층과 2층의 전시실을 거쳐 1층으로 내려가면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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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아롱 작가의 <이사 그리고 이사>입니다. 작품의 주제는 재개발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는 보통 재개발을 통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룰 때, 주인공으로 인간만을 내세우곤 합니다.


그러나 내몰리는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지요. 오히려 인간은 어찌어찌 새로운 살 곳을 찾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원래 그곳에 살던 비인간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후 새로운 서식지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엄아롱 작가의 <이사 그리고 이사>에서는 이러한 동식물의 운명을 보여주는데요, 작품은 시멘트 지지대, 그 위에 꽂힌 철 파이프, 거기에 붙여진 다양한 동식물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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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파이프에 부착된 동물의 이미지는 야생에 가깝지만, 식물의 이미지는 인위적이라는 것입니다. 야생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터전을 잃어 헤매야 하는 동물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한편, 원래 그곳에 살던 식물은 애초에 재개발의 시작과 함께 제거되며 그 이후 도시 미관을 위해 인위적으로 선택된 식물들이 다시 심어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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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선 [Treasure - The Seed Collection] 中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의 작품을 모두 소개하였으나 전시된 모든 작품을 가져온 것은 아니니, 전시가 종료되기 전에 직접 방문하여 감상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별도의 예약은 필요하지 않으며, 관람료는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 그리고 우대 3,000원입니다.


지금까지 금호미술관의 [도시의 불빛 저편에] 전시를 소개해드린 [도슨트 by 푸름], 푸름이었습니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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