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 '서울극장'에서 [영화]

글 입력 2021.08.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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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극장에서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상관없이 '영화관'을 가봤다면 각자 떠오르는 추억이 존재한다. 나에게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와 상영관에 단둘이서만 관람했던 특별한 기억, 성인이 되고 가장 해보고 싶었던 심야 영화를 가족과 연달아 3개를 본 경험이 떠오른다. 영화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들을 옴니버스 방식으로 엮은 영화이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 쪽으로>,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을 한 편의 영화로 감상할 수 있다.


하나로 묶인 단편 영화들은 극장에 온 사람들을 그린다. 내가 극장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으로서의 방문이다. 이 영화의 재밌었던 부분은 세 단편 모두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는 '평범한 관객'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극장에서 만나요'라는 쪽지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하고, 영화 상영 후에 이어진 영화감독과 관객의 대화가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영화관으로 모이기도 한다.


각기 다른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이지만 '영화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만남'을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인연의 기대, 영화 제작자와 소비자의 대화, 한 인물과 영화라는 키워드만 공유한 낯선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요즘은 '혼영'이라는 말과 함께 영화관을 홀로 찾는 관객들이 늘고 있지만, 한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의 존재를 생각해 보는 영화였다. '영화관'을 생각했을 때 쉽게 그려지는 장면들은 아니었지만, 세상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극장에서의 사건들이었다.


세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관도 제각기 다르다. <극장 쪽으로>는 대구 중구에 위치한 '오오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오오극장'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극장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길게 등장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실제로 극장에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극장에서 한 생각>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이봄씨어터'를 배경으로 한다. 다른 두 영화와 달리 인물들이 상영관 안에 있는 상황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실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현장에 있는 듯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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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낙원>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한 인물의 자취를 쫓아 힘들게 찾아다니다가, 유력하게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내의 극장에 도달하자 "뭐야 서울극장이네"라는 인물의 대사와 함께 극장 건물의 전경이 비친다. 세 편의 영화 중에 극장 내 가장 많은 공간이 영상에 담겼다. '서울극장'을 아는 사람들은 반가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고, 아직 가보지 못하고 역사적인 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에게는 낯선 공간이 생각보다 익숙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서울극장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18년 6월에 개봉한 <너와 극장에서>라는 영화를 지난주에 보았다. 영화를 알게 된 계기는 관심을 두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보겠노라 마음에 담아둔 영화를 지금에서야 보게 된 이유는 마지막 단편영화의 배경이 되는, 영화산업 역사에 뚜렷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추억으로만 기억될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극장' 회원이라 7월 초에 메일을 통해 처음 소식을 듣게 되었다. 메일 제목은 '[서울극장] 서울극장 영업 종료 및 멤버십포인트 소멸 안내'였다. 어떤 예고도 없이 맞닥트린 사실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한 멤버십 회원이기는 했어도, 실제로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본 횟수는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지만, 더 자주 방문하지 않은 것에 뒤늦은 아쉬움을 가졌다.


1964년 영화제작을 주력사업으로 시작한 '합동영화사'가 종로 3가에 위치한 '세기극장'을 인수하면서 1979년에 '서울극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종로에는 일제강점기(1907년)에 지어진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현재 CGV 피카디리1958)’이 있었다. 과거 서울 시내에 영화관은 손꼽을 수 있을 만큼 적은 숫자였고 종로는 그 중심에 묵직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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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깊은 공간이지만 '서울극장'은 발전에도 현명하게 움직였다. 1개 관으로만 운영되던 당시 영화관의 모습에서 벗어나 1989년에는 3개 관으로 증축을 하면서 국내 최초로 복합 상영관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복합 상영관이 멀티플렉스 극장의 대표로 인식되지만, 알고 보면 국내 멀티플렉스 시대의 시작은 '서울극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래된 극장은 불편하다'라는 편견을 넘는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2000년대가 되면서 많은 세월이 녹아있는 극장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 사라졌다. 극장이 전국적으로 많아지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시내의 낡은 영화관을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 시기 '서울극장'은 오랜 역사를 함께한 관객들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도 관심을 갖고 찾을 수 있는 극장의 모습으로 변화를 주었다. 2017년 7월 현대적인 감각으로 인테리어를 변혁하고, 상영관의 좌석과 스크린을 새롭게 교체하여 세대에 상관없이 모든 관객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관으로 거듭났다.

 

 


너와 '서울극장'에서



영화관은 많다. '서울극장'이 일상 속에서 사라지더라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는 소수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서울극장'을 자주 찾은 관객은 아니다. 역사를 담고 있는 극장의 폐관에 코로나의 영향이 크리라 추정되지만, 사실 2020년 전에도 나의 영화 관람은 주로 집이나 가까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이뤄졌다. 종로가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던 시절의 '서울극장'에서 추억을 쌓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극장이 품은 세월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서울극장'에서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이 전통 극장을 잃는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서울극장' 건물에는 세 개의 독립적인 영화관이 존재한다. 1979년부터 있던 '서울극장' 말고도,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 위주로 상영 시간표가 짜인 '서울극장'과 달리, 두 영화관은 쉽게 보기 어려운 영화를 상영했기에 내가 '서울극장' 건물을 이용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람도 자주 마주치면 점차 가깝게 느껴지듯 '서울극장'을 이용하지는 않더라도 나에게도 어느 정도 친밀한 공간이 되었다. 개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오래된 공간이 사라지는 현실이 무참하게 느껴진다. '서울극장'의 화려했던 황금기를 경험한 세대에게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는 공간이자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노력을 꾸준히 보인 공간이, 역사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들 또한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허무함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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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극장. '서울극장'이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서울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폐관 소식을 전한 이후, 마지막 기획전인 '[서울극장 굿바이 상영회] 고맙습니다 상영회' 소식을 찾을 수 있다. 기획전은 8월 1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 해당 기간 동안 '서울극장' 1층 매점에서 선착순 인원에 한해서 발권 시 무료로 티켓을 제공한다. 더욱 구체적인 내용은 홈페이지 혹은 SNS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9월이 되면 더 이상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다. 온라인 예매창에서 극장을 선택할 수 없어질 것이고, 매표소 현장 발권과 상영관마다 돌아가던 영사기의 움직임도 멈출 것이다. 그러나 극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추억의 사진 속에, 오래된 기록 속에, 사람들 마음속에 '서울극장'은 이미 두드러진 자취를 남겼다. 시간이 지나서 건물이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새로운 건물이 생기더라도 누군가에게 '서울극장'은 영원히 지금 모습 그대로 남을 것이다.

 

31일까지 진행되는 마지막 기획전은 '서울극장'을 가장 뜨겁게 떠나보낼 수 있는 기회이다. 이달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나와 '서울극장'에서 만나요"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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