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도서/문학]

<소년이 온다>(한강, 2014)
글 입력 2021.08.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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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가 과거에 대한 현재의 대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볼 때 역사소설의 역사는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과거의 역사소설은 보통 전지적인 서술자의 시점에서 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설의 인물은 작가의 의도를 전하기 위한 존재가 된다. 그들의 삶은 세간의 평가와 작가의 생각에 따라 규정되고 대상화된다.

 

누군가의 삶이 박제된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후대의 작가들은 전통적인 역사소설의 문법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김훈은 <칼의 노래>(2001)에서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가 아닌 실존적 고뇌를 그려냈고, 김영하는 <검은 꽃>(2003)에서 역사의 회색지대에서 부유하는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냈다. 이런 시도들은 역사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기억되고 의미를 갖는지, 즉 ‘기억’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내 좋은 평가를 얻었다.

 

5월의 광주 이후로 40년이 흘렀다. 많은 작가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잘못을 저지른 자의 반성을 촉구하고, 광주의 5월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의 5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작품은 ‘80년 5월의 광주’라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하고 불완전한 접근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즉 <소년이 온다>의 핵심은 등장인물의 기억 그 자체다.

 


소년이 온다.jpg

 

 

작품은 6장으로 되어 있지만, 에필로그를 포함해서 7개의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은 시위 중 잃어버린 친구 정대를 찾으러 상무관에 왔다가 시신 수습을 돕게 되며 사람들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 동호의 기억(1장)으로 시작한다.

 

사망자의 입관을 돕던 동호는 합동 추도식에서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누군가가 당연한 듯 “그 군인들은 나라가 아니었으니까”라고 대답했지만, 동호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들은 듯 혼란스러워한다. 동호의 혼란은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삶이 타인에 의해 그 의미를 갖게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강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인물의 삶을 규정하고 대상화했던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이어지는 2장에서 죽은 정대의 혼을 등장시켜 역사소설의 문법을 완전히 비튼다. 죽은 정대의 혼이 자기의 죽음을 사유하는 과정은 인물의 죽음이 타인에 의해 의미를 갖게 되거나 성역화되는 과정이 아니다. 정대는 몸의 기억을 혼의 목소리로 반추하며 자신을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혼이 풀어낸 이야기는 그 무엇으로도 대상화할 수 없고, 우리는 혼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에 의해 대상화된 몸과 규정할 수 없는 영혼 사이의 거리를 인식한다.

 

뒤이은 3~5장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대하는 방식을 다룬다. 각 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한다. 이들이 자신의 기억에 대응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은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애도였다.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거나 역사로 박제되기 전에, 죽은 이들은 산 사람들의 삶 속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살아 있는 것이다.

 

마지막 6장은 죽은 막내아들 동호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작품은 해가 들고 꽃이 핀 쪽으로 어머니를 끌고 가는 막내아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에필로그, 작품의 7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의 기억에서 변주된다. 작품을 위해 5.18의 기록들을 되짚어 나가는 그녀는 동호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듣는다. 여기서 우리는 3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가 기억을 통해 어떤 식으로 만나는지 알게 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길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 p.213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박제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이끌기도 하고, 현재가 과거를 이끌기도 한다. 3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감정은 퇴색될 수 있지만,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말했던 것처럼 ‘과거를 향한 정신의 노력’은 우리가 과거와 함께 사는 법,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 법을 알려준다. 이런 노력을 통해 과거는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살아 움직이는 현재가 된다.

  

한강은 기억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조명함과 동시에, 그 어긋남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강조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갈등 구조는 규정하려는 시도와 그것을 거부하는 존재들의 갈등이다. 그것이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국가 권력과 그에 맞서 자신들을 지키려는 군중의 갈등이든,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하고 분석하려는 이들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갈등이든 말이다.

 

특히나 4장과 5장의 주인공들은 5월의 광주를 기록하고 분석하려는 심리 부검의와 학자를 만나며 인간의 심리와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이 과연 고정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한다. 기록하는 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와 별개로,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누군가의 삶을 정지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등장인물의 고뇌는 5월의 광주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넘어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혹자는 <소년이 온다>가 5월의 광주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식보다는 인간에 대한 작가 본인의 문제의식을 다루기 위해 5월의 광주라는 소재를 선택했다고 비판하지만, 어쩌면 이런 시도야말로 ‘5월의 광주’라는 담론이,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표하고 서로 갈등하며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의 역사로 규정하려고 하는 지금의 현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숫자와 사진 속에 박제된 사람들이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강은 누군가의 죽음이 기억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며 인간은 투쟁의 주체이기 전에 하나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

 

작품의 주제 의식은 작가의 전작 <채식주의자> 연작을 생각나게 하지만, 두 작품의 방향은 미묘하게 다르다. 작가의 전작이 인간을 규정하려는 시도에서 오는 인간성의 파멸을 다루고 있다면, <소년이 온다>는 인간을 규정하려는 시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다각도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이 온다>는 작가 스스로가 치열하게 고민해 온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으로도 읽힌다. 작가는 규정하려는 시도와 그것을 거부하는 인간 사이의 갈등이라는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다뤄 온 문제의식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도 가깝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로 규정하고 연대를 강요하거나 폭력을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는, 규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세상에서 작가 한강이 다음으로 내놓을 답은 무엇일까. 존재의 비애와 균열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그녀의 글이 어느 때보다도 기다려진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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