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악기에 대한 종합적 이해 - 이은호 바순 리사이틀

무겁고 부드러운 악기, 바순
글 입력 2021.08.0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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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순도 처음이고 리사이틀홀도 처음이었다. 최근에 클래식 공연을 정말 많이 다닌 지라 갈 때마다 악기나 연주자의 서로 다른 느낌을 비교하고, 새로 가보는 홀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재미를 알아가던 차에 바순 독주회라는 생소한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참 좋았다.

 


 

1.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은 내가 가본 공연장 중에서 가장 ‘오붓한’ 공연장이었다. 객석의 규모와 무대의 크기가 작고 연주자를 거의 코 앞에서 보는 듯해 사적인 연주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는 연주자의 퍼포먼스가 객석에 잘 전달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객석의 소리나 움직임이 연주자에게 잘 전달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물론 안 그런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다른 홀들보다도 더 관람 매너를 신경 써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며 음악을 들었다.

 

반주와 연주는 다른 것이다. 반주를 잘 하는 사람과 연주를 잘 하는 사람도 다르다. 독주 악기로서의 바순은 처음이라 지난 16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과 스티븐 허프의 협연 때 바순이라는 악기에 집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바순이 안 들렸다는 뜻이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에서 반주를 담당하는 관현악단 중에서도 일부분인 바순에 집중해 멜로디를 캐치하는 게 어려웠다는 뜻이다. 분명히 리드자로서 멜로디를 구사하는 바순과는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리사이틀 홀에서의 바순 연주는 반주로 접했던 바순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YTN 뉴스 인터뷰에서 바수니스트 이은호 님은 독주 악기로서의 바순에 대해 “플루트나 오보에, 클라리넷 등 주로 고음을 담당하는 다른 목관 악기들에 비해서 조금 더 낮은 음역대에서 굉장히 따뜻하고 목가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 매력” 이라 답했다.

 

전체적인 인상을 단순하고 거칠게 정리한다면, 나에게 바순은 ‘무겁고 부드러운’ 악기다. 무게라는 것은 단순히 악기의 물리적인 무게 뿐만이 아니라 연주자가 연주하기 위해 악기에 들이는 힘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객석과 무대가 가까워서 이은호 연주자의 표정이 너무 잘 보였는데, 정말로 바순을 연주하는 순간 연주자는 온 힘을 다해 바람을 불어넣는 것처럼 보였다.

 

목이 크게 부풀어 올라 연주자 자체가 하나의 관이 된 것 같았고 음의 중간중간 숨을 들이쉴 때의 숨소리가 참 리드미컬하게 들렸다. 70분 동안 연주자는 온몸으로 바순을 살아내야 하고, 그렇게 큰 힘으로 바람을 불어넣을 때마다 바순 끝에서는 거칠고 터프한 소리가 아니라 너무나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바순의 ‘무겁고 부드러운’ 매력에 대해 너무 잘 알아갈 수 있는 공연이었다.

 

 [프로그램]

 

F. Devienne / Sonata in g minor for Bassoon and Basso continuo, Op.24 No.5

프랑수아 드비엔느 / 바순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사단조, 작품24-5


J.S Bach / Viola da gamba Sonata in G Major, BWV 1027

요한 세바스찬 바흐 /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027


-Intermisson-


H. Holliger / Three Pieces for Bassoon Solo, III.Klaus-Ur

하인츠 홀리거 /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


C. Saint-Saëns / Sonata for Bassoon and Piano in G Major, Op.168

카미유 생상스 /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68


M. Bitsch / Concertino for Bassoon and Piano

마르셀 비쉬 /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은 1부의 두번 째 곡인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027> 와 2부의 첫 번째 곡인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이었다.

 

 

 

 

 

2.



2부 보다 1부를 더 많이 기대하고 간 공연 이었다. 연주회를 많이 다녀 보았지만 정작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은 실황으로 접할 기회가 한번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부의 두 번째 곡인 바흐 작품번호 1027번은 이전부터 하프시코드와 첼로의 조합으로 수도 없이 들었던 곡이라 큰 기대감이 있었다.

 

피아노와 바순의 조합으로 듣는 익숙한 곡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하프시코드는 강약 조절이 불가능한 건반악기이기에 음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피아노와는 많이 다르다. 강약 조절이 없는 버전으로 익숙했던 멜로디를 김재원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피아노 연주로 들으니 바순 뿐만 아니라 피아노에도 집중하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3악장 안단테의 도입 부분을 페이드 인 하듯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피아노 연주에 감탄했던 것 같다. 4악장에서 속도가 빨라지는 부분이 나에겐 공연 전체에서 피아노와 바순이 가장 조화로운 순간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과 바수니스트가 그 크고 무거운 악기를 안고 몸을 흔들흔들하는 제스쳐까지도 정말 멋진 협연이었다.

 

 


 

 

 

3.


 

2부의 첫 번째 곡인 하인츠 홀리거의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은 처음에 살짝 놀라 적응을 하는 데 시간이 좀 들었다. 1부는 바순이라는 새로운 악기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면, 2부는 바순이라는 악기로 낼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종류의 소리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악기 소리’ 라고 생각하는 선형적인 멜로디가 아니라 연주자 리드 부분에 뽀뽀를 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삑사리 같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는 등 상당히 난해한 곡이었다.

 

미술이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마주쳤을 때 새로운 감상법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이 작품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 음이 없으니 음에 집중할 수도 없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곡을 들으며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바순이라는 악기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하고 바순이 리드악기로서 선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은호 연주자는 단순히 바순을 무겁게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예쁜 관악기로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험적인 곡을 연주한다. 이때 바순은 관악기뿐만 아니라 타악기가 되기도 하며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 들이 열린다. 음이 아니라 소리다. 선형적 멜로디로서의 연속적인 음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운드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70분 안에 참 다이나믹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공연장을 나서며 팜플렛을 다시 보니 이번 리사이틀의 부제였던 바로크 투 모던이 이해가 갔다. 바로크에서 모던 까지, 음악의 역사와 바순의 역사를 함께 들여다봄으로써 바순이라는 악기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케 해준 프로그램 구성이었던 것이다.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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